만약 국보법이 폐지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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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국보법이 폐지된다면…

일요시사 2025-12-15 12:20:1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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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국가보안법 폐지’ 논쟁이 재점화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과거 노무현정부 시절 무산됐던 국보법 폐지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국보법은 77년 동안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지만 폐지까지 이어진 적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반대 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범여권 의원 31명이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공동 발의하면서 논쟁이 다시 확산되고 있다. 해당 법률안은 지난 4일 국회 입법 예고 사이트에 게시됐고, 사흘 만에 반대 의견 8만건을 넘겼다. 

갑론을박

입법예고 게시판에는 휴전 체제와 최근 안보 사건 등을 이유로 폐지에 반대하는 의견이 쏟아졌다. 국보법은 제정 이후 지속적으로 폐지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 이들이 폐지를 주장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국보법은 1948년 여수·순천 사건 직후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형법도 완전히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정부는 폭동이나 반정부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긴급히 법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조항이 넓고 모호하게 적힌 부분이 많았고, 어떤 행동이 위반인지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지적이 이어져 왔다.

또 형법보다 먼저 제정되면서 두 법의 역할이 겹치는 부분도 생겼다. 당시 수사와 재판 제도도 안정되지 않아, 법이 필요 이상으로 넓게 적용될 수 있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폐지를 주장하는 쪽에서는 국가보안법이 과거 여러 사건에 잘못 적용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국보법으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한 경우도 있다.

김선명씨는 1950년대에 북에서 내려온 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잡혀 감옥에 수감됐다. 그는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바꾸지 않았다는 이유로 석방되지 못했고, 이런 이유로 감옥 생활이 40년을 넘도록 장기수로 복역했다.

실제 수감 기간은 약 45년에 이른다. 김씨는 2000년 남북이 합의해 진행한 ‘비전향 장기수 송환’에 포함돼 북으로 돌아갔다.

국가정보원도 국보법 사건에서 무죄가 확정된 인물들에게 사과한 일이 있다. ‘민주노총 간첩단’ 사건과 신동훈 제주평화쉼터 대표 사건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국정원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은 국보법이 실제 간첩 활동보다 개인의 말과 활동을 처벌하는 데 사용된 적이 있었다는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범여권 입법 예고로 논쟁 재점화
반대 의견 사흘 만에 8만건 돌파

최근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지난 10월, 노동자 단체 ‘민주노동자 전국회의’ 관계자들은 ‘찬양·고무’ 혐의로 기소됐지만 1심에서 무죄가 나왔다. 재판부는 “증거 수집이 위법했고, 표현을 처벌할 기준이 모호하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법의 적용 범위가 과도하게 넓다는 비판은 지속적으로 존재해 왔다. 제정 당시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참고해 만들어졌다는 점도 지적받아왔다. 치안유지법은 일제강점기 때 정치·사상 활동을 광범위하게 규제했던 법으로 ‘국체 변경’이나 ‘사상 전파’처럼 범위가 넓은 개념을 처벌 대상으로 삼았다.

국보법 초기 조항에서도 ‘국가의 안전을 해칠 우려가 있는 행위’와 같은 추상적 표현이 사용되면서, 일제 치안유지법의 규정 방식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배경 때문에라도 폐지를 주장하는 진영에서는 “국보법 자체가 민주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국보법은 제정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쳤다. 단심제·사형제 도입, 이른바 ‘보안법 파동’, 1980년 반공법 통합 등 굵직한 변화를 거치며 수정돼왔다. 1990년대에는 헌법재판소가 일부 조항에 대해 제한적 해석을 내려, 법 적용이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국제기구 역시 반복적으로 국보법 일부 조항 삭제를 권고했는데,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와 사회권규약위원회는 ‘찬양·고무’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

폐지 주장 측은 남북관계 변화도 이유로 든다. 과거와 달리 북한의 경제·사회 수준이 한국과 큰 격차를 보이고 있어 선전·선동 효과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과 개방적 정보 환경에서 특정 사상이 대중을 위협할 가능성은 제한적이며, 실제 간첩 사건 상당수가 통신장비·금전 전달 등 구체적 활동과 관련돼있어 형법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한다.

반면 국보법을 유지해야 한다는 쪽은 최근에도 간첩 활동이 적발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충북동지회 사건이다.

이 단체는 북한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국내에서 국가기밀 탐지, 정세 보고 등을 했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재판에서 징역형이 확정됐다. 이들은 국보법이 없었다면 일부 행위는 처벌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북한의 해킹 문제도 거론된다. 금융기관에서 자산이 탈취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들이 보고되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새로운 형태의 안보 위협을 다루려면 기존 법체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런 사건들은 기존 형법만으로 대응하기 어렵고, 북한과 연계된 조직 활동을 규제하는 국가보안법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쪽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찬 “국보법 아니라도 처벌”
반 “형법만으로는 어려워”

현재 국회에서는 형법 제98조, 이른바 간첩법 개정안도 논의되고 있는데 개정안은 간첩죄의 대상이 되는 ‘적국’을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히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경우 북한 외 국가의 스파이 활동도 처벌할 수 있게 된다. 폐지 측은 “형법을 이렇게 넓히면 국보법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존치 측은 “국보법은 접촉, 단체활동, 여론조작 등 더 넓은 활동을 다룬다”며 “형법만으로는 대응이 부족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국보법 폐지에 대한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노무현정부 때도 큰 논쟁이 있었다. 당시 여당이 폐지를 추진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폐지를 권고했다.

하지만 북한 핵 개발과 군사력 강화가 이어지던 시기여서 국회에서는 폐지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결국 폐지는 이뤄지지 않았고, 일부 조항을 정비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바뀌었다.

핵심은 실효성이다. 결국 ‘국가보안법이 지금도 필요한가’를 따져봐야 한다. 폐지 옹호측은 법이 제정된 시기의 안보 환경과 현재의 상황이 크게 다르다고 본다. 냉전 체제가 해체되고 정보·통신 환경이 변화한 만큼, 과거처럼 사상이나 표현을 규제하는 방식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실제 간첩 사건들도 대부분 통신 장비 전달, 금전 지원, 정보 수집 등 구체적 활동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어, 이를 다루기 위해서는 형법과 별도의 특별법을 정비하는 방식이 더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들은 “국보법이 아니라도 처벌이 가능한 범죄들이 많다”며 “국보법은 실제 안보 위협을 다루기보다 표현이나 단체활동에 대한 규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반면 유지 주장 측은 국보법이 형벌 규정을 넘어 ‘특정한 상황을 겨냥한 법적 장치’라는 점을 강조한다. 북한과 대치하는 특수한 안보 환경에서는 접촉이나 지령 수수, 단체 가입과 같은 초기 단계 활동을 규제하는 것이 필요하며, 형법만으로는 이 같은 사전 단계 행위를 모두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

조항 정비만?

특히 사이버 공간을 이용한 여론조작이나 온라인 접촉처럼 새로운 형태의 활동이 늘어나는 점을 고려하면, 국보법이 갖고 있는 포괄적 구조가 오히려 현실에 맞는 측면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은 “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조항만 남기고 정비하는 방식이 더 현실적”이라고 강조한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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