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NEWS=배준철 기자] 제약바이오 업계에서 보령(구 보령제약)의 김정균 대표는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대다수의 오너 3세들이 신약 개발이나 바이오시밀러, 혹은 디지털 헬스케어에 집중할 때, 그는 고개를 들어 하늘, 아니 '우주'를 보았다. 그가 주창한 'CIS(Care In Space)' 프로젝트는 보수적인 제약 업계에 신선한 충격이자 동시에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아왔다. 지난해 매출 1조 원 클럽 가입이라는 상징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영업이익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시장의 화살은 곧장 그의 우주 사업을 향했다. "본업의 수익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불확실한 미래에 베팅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2024년 3분기, 보령은 보란 듯이 숫자로 대답했다. 이번 실적 발표와 최근 경영 행보를 종합해 볼 때, 김정균 대표의 전략은 단순한 '우주 올인'이 아닌 철저한 '양손잡이 경영(Ambidextrous Management)'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그의 우주를 향한 항해는 순항할 수 있을까. 세 가지 핵심 관전 포인트를 통해 분석해 본다.
■'캐시카우'의 재발견, LBA와 카나브의 쌍끌이 전략
김 대표가 우주를 꿈꿀 수 있는 자신감의 원천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현실적인 '제약 본업'의 탄탄함에서 나온다. 14일 공시된 보령의 3분기 성적표가 이를 증명한다. 3분기 영업이익 294억 원, 전년 동기 대비 51.3% 급증이라는 수치는 단순히 비용을 줄여서 만든 '불황형 흑자'가 아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LBA(Legacy Brand Acquisition) 전략의 성공적 안착이다. 글로벌 제약사로부터 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국내 권리를 인수해 생산·판매하는 이 전략은 김정균 대표의 승부수였다. 릴리로부터 인수한 항암제 '젬자', 조현병 치료제 '자이프렉사', 그리고 '알림타'는 인수 후 매출이 급성장했다. 젬자의 처방액이 인수 전 대비 2배 이상 뛴 것은 보령의 영업력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여기에 국산 신약의 자존심인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 패밀리'가 분기 매출 425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자체 개발 신약과 인수한 오리지널 명약이라는 두 개의 강력한 엔진이 돌아가고 있기에, 보령은 외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현금 창출 능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인 미래 투자를 가능케 하는 '지구의 중력'이자 버팀목이다.
■우주 사업, '무모한 올인'에서 '숨고르기 전략'으로
시장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우주 사업에 대한 과도한 자본 유출이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올해 초부터 유연한 태도 변화를 보였다. "올해 우주 사업 추가 투자는 보류하겠다"는 선언과 "수동적 자본 투자에서 프로젝트 주도형으로 전환하겠다"는 발언은 그가 시장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우주 사업의 축소가 아니냐고 반문하지만, 분석가적 시각에서는 'R&D의 고도화'로 해석된다. 초기에는 단순히 우주 관련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실제로 우주 공간에서 인체에 일어나는 변화를 연구하고 이에 대응하는 헬스케어 솔루션을 찾는 실질적인 프로젝트로 방향을 틀었다는 것이다. 우주 의학은 단순히 우주비행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무중력 상태에서의 근손실, 골밀도 감소, 노화 가속화 연구는 고령화 사회인 지구의 헬스케어 시장과 직결된다. 김 대표가 노리는 지점은 바로 이 '스핀오프(Spin-off)' 기술이다. 당장의 대규모 자본 투입을 줄이면서 내실을 다지는 전략 수정은, 그가 꿈과 현실의 균형을 맞출 줄 아는 CEO임을 보여준다.
■구조적 효율화, CSO 도입과 글로벌 확장
올해 보령의 수익성 개선에는 CSO(영업대행조직) 체계 도입이라는 과감한 결단도 한몫했다. 전문의약품 약 50개 품목을 자회사 보령컨슈머헬스케어 등에 위탁함으로써, 본사의 핵심 영업 인력은 카나브나 LBA 품목 등 고수익 제품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이는 판매관리비를 효율화하고 영업이익률을 8.5%까지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또한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동남아 시장으로 눈을 돌린 점도 긍정적이다. 쥴릭파마와의 알림타 CDMO 계약 체결은 보령의 예산 생산 시설을 활용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알짜 사업이 될 전망이다. LBA로 인수한 약을 국내에서만 파는 것이 아니라 해외로 다시 수출하는 구조를 만든 셈이다. 이는 LBA 전략의 확장성을 보여주는 영리한 플레이라 할 수 있다.
■'오너 3세'의 꼬리표를 떼고 '비전가'로 가는 길
결론적으로, 김정균 대표의 우주 사업 전략이 장기적으로 실적을 발휘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필자는 "조건부 긍정"표를 던진다. 그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본업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과거 일부 기업들이 무리한 신사업 확장으로 그룹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사례와 달리, 보령은 제약 본업에서 역대급 퍼포먼스를 내며 체력을 비축하고 있다. 둘째, 전략 수정의 유연성이다. 고금리·고환율 시대에 맞춰 우주 사업 투자의 속도를 조절하고 수익성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한 위기관리 능력은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셋째, 명확한 로드맵이 보인다. LBA를 통해 현금을 확보하고, CDMO로 글로벌 판로를 뚫은 뒤, 그 자본과 기술력으로 우주 헬스케어라는 초격차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시나리오는 논리적이다. 다만 위험 요소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주 사업은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기까지 10년, 20년이 걸릴지 모르는 초장기 프로젝트다. 주주들은 당장의 배당과 주가 상승을 원한다. 김 대표의 과제는 3분기와 같은 호실적을 지속적으로 증명하여 "우주 사업 때문에 회사가 어렵다"는 인식을 불식시키는 것이다.
보령의 우주선은 이제 막 카운트다운을 멈추고 연료를 재주입했다. '지구(제약)'에서 번 돈으로 '우주(미래)'를 산다는 그의 담대한 실험이 한국 제약 산업의 지평을 지구 밖으로 넓히는 '퍼스트 펭귄'의 성공 사례로 남을지, 아니면 일장춘몽으로 끝날지 업계는 숨죽여 지켜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김정균 대표는 현실의 땅을 단단히 딛고 서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Copyright ⓒ CEO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