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뮬러 원(F1)을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계약은 드라이버도, 엔진 공급 계약도 아니다.
바로 ‘콩코드 협약’이다. 이 협약은 F1이 어떤 규칙으로 운영되고, 누가 권한을 가지며, 수익과 책임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규정하는 사실상의 ‘헌법’으로 챔피언십의 안정성과 권력 구조를 동시에 결정해 왔다.
콩코드 협약은 1981년 당시 FIA와 팀들 간의 권력 다툼을 조정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치며 F1의 성장 단계마다 다른 역할을 수행해 왔다. 초기에는 스포츠 운영의 통일성과 분쟁 방지가 핵심이었고, 상업적 가치가 폭발적으로 커진 2000년대 이후에는 수익 배분과 팀 생존 구조를 조율하는 장치로 기능했다.
현재 적용되고 있는 제9차 콩코드 협약은 과거와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가장 큰 변화는 거버넌스(F1이 공정하고 예측 가능하게 운영되도록, 권한·절차·책임을 계약으로 고정한 최상위 법에 해당)의 명문화와 장기 안정성이다. FIA는 규제와 스포츠 운영의 최종 권한자로서의 지위를 명확히 했고, F1 그룹은 상업적 권리와 글로벌 확장의 책임을 다한다. 팀들은 이 구조 안에서 경쟁 주체이자 공동 이해관계자로 자리 잡는다. 이전처럼 정치적 협상과 비공식 합의에 의존하던 시대에서 계약과 절차 중심의 운영으로 전환됐다는 점이 핵심이다.
거버넌스 협약은 특히 규정 변경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기술 규정이나 스포팅 규정이 어떻게 제안되고 어떤 절차를 거쳐 확정되는지를 명확히 규정해 갑작스럽고 일방적인 변경 가능성을 낮췄기 때문이다. 이는 팀들의 장기 투자 전략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파워 유닛 개발, 공기역학 개념, 인력 구성 등 수년 단위의 프로젝트가 가능해진 배경에는 콩코드 협약이 제공하는 예측 가능성이 있어서다.
또 하나 주목할 부분은 레이스 운영과 심판 시스템의 독립성 강화다. FIA는 이번 협약을 통해 레이스 디렉션, 스튜어드 운영, 기술 검증 인력에 대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확보했다. 이는 상업적 압력이나 팀 간 정치적 이해관계로부터 판정을 분리하려는 시도로 최근 몇 시즌 동안 논란이 이어졌던 판정 일관성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가 반영된 결과다.
상업적 측면에서도 콩코드 협약은 F1의 성장 전략과 직결된다. 팀들은 안정적인 수익 분배 구조를 기반으로 운영 계획을 세울 수 있고, 방송사와 스폰서는 장기 계약을 통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신규 참가 팀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캐딜락 F1 팀의 합류가 가능했던 배경도 2030년까지 이어지는 안정적인 콩코드 체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2026년 대규모 기술 규정 개편과 콩코드 협약은 분리된 사안이 아니다. 새로운 파워 유닛 규정, 지속 가능 연료, 에너지 회수 비중 확대 등은 모두 장기적인 규제 안정성을 전제로 한다. 콩코드 협약이 없었다면 이러한 대전환은 팀과 제조사에게 과도한 리스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즉, 콩코드 협약은 기술 혁신을 억제하는 장치가 아니라 혁신이 가능하도록 환경을 만드는 계약에 가깝다.
결국 콩코드 협약의 본질은 ‘통제’가 아니라 ‘균형’이다. FIA, F1 그룹, 팀들 사이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고, 스포츠적 공정성과 상업적 성장을 동시에 유지하려는 시도다. 제9차 콩코드 협약은 F1이 더 이상 불안정한 정치적 연합체가 아니라 하나의 성숙한 글로벌 스포츠 산업으로 진입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결과물이다.
F1이 75년의 역사를 넘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지금, 콩코드 협약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챔피언십의 방향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문서로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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