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산 칼럼] 19세기 유럽에서 여성 화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전략① 베르트 모리조에 이어
[문화매거진=강산 작가] 로자 보뇌르는 1822년 프랑스 보르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레몽 보뇌르는 화가이자 생시몽주의(Saint-Simonianism, 생시몽주의는 귀족이 아닌, 일하는 사람들이 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사상이었고, 이 생각은 여성에게도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사상가였고, 여성에게도 교육과 직업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자란 로자는 어린 시절부터 미술 교육을 받았고, 이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녀는 동물을 소재로 그렸다. 그에게 동물은 가장 먼저 익힌 언어에 가까웠다. 여섯 살 무렵 파리로 이주한 뒤, 읽기와 쓰기에 어려움을 겪던 보뇌르에게 어머니는 알파벳의 각 글자를 동물과 연결해 가르쳤다.
문자를 배우기 전, 그는 이미 연필과 종이로 몇 시간씩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그 대상은 늘 동물이었다. 그는 학교에서 잦은 소란과 문제 행동으로 여러 차례 퇴학을 당했다. 결국 아버지는 딸을 ‘교정’하는 대신 화가로 훈련시키는 쪽을 택했다. 그는 딸이 동물을 그릴 수 있도록 작업실에 살아 있는 동물들을 들여와 관찰하게 했고, 보뇌르는 이런 환경 속에서 본격적인 화가의 훈련을 시작했다.
파리 외곽의 들판과 목초지, 아직 야생이었던 불로뉴 숲에서 말과 소, 양을 관찰했고, 열네 살에는 루브르에서 고전 회화를 베끼며 회화적 구조를 익혔다. 그의 집요함은 파리 도축장과 국립 수의학 학교로 이어졌다. 보뇌르는 동물의 해부학과 골학을 직접 공부했고, 동물을 해부하며 근육과 관절의 구조를 기록했다.
이 시기의 연구는 훗날 그녀의 회화와 조각의 기초가 되었으며, 비교해부학자 제오프루아 생틸레르 부자와의 교류로까지 확장되었다.
하지만 19세기 프랑스에서 여성은 여전히 공적 공간에 접근할 수 없었고, 특히 로자가 관심을 가졌던 영역인 가축 시장, 도축장, 농장은 여성의 출입이 사실상 불가능한 장소였다. 그러나 그는 동물을 계속해서 그려야 했기 때문에 보뇌르는 파리 경찰청에 공식적으로 남성복 착용 허가증을 신청했다.
의학적·직업적 사유가 있을 때만 발급되던 이 허가증은 그녀가 화가로서 작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다. 그의 남장 선택은 정체성의 선언이라거나 저항의 상징이 아닌, 단지 동물을 그리기 위한 도구였을 뿐이다. 다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제한되는 모든 조건을 없애기 위해 직업적 필요라는 언어로 무력화시켰을 뿐이다. 이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말 시장’을 비롯한 대형 동물화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훈했다. 이는 19세기 여성 화가로서는 거의 전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성공은 또 다른 대가를 요구했다.
보뇌르의 그림에는 여성의 일상도, 사적인 세계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그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그림의 주제로 삼지 않았다. 대신 자연과 동물이라는, 성별이 지워진 영역에 머물렀다. 당시 사회는 그녀를 존경했지만, 동시에 예외로 취급했다.
로자 보뇌르는 ‘여성 화가’라기보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화가’로 불렸다. 그의 삶은 하나의 가능성이라기보다, 특수한 사례로 소비되었다. 로자 보뇌르는 여성이 화가로 살아남기 위해 여성성을 내려놓는 전략을 선택했다. 그 선택은 현실적이었고 성공적이었지만, 아마도 지독히 고독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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