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신문 = 태국 방콕/ 박수연 기자] 수많은 국제 대회 트로피를 진열장에 채워 넣으면서도, 정작 가장 중요한 자리의 주인은 되지 못했던 설움. 그 길고 긴 'PMGC 징크스'가 마침내 깨졌다. 브라질의 강호 알파세븐 이스포츠(Alpha7 Esports, 이하 A7)가 압도적인 교전력을 앞세워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e스포츠의 정점에 섰다.
특히 팀의 정신적 지주인 레보(Revo) 선수는 대회 기간 중 모친상을 당하는 큰 슬픔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경기력으로 팀의 중심을 잡으며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현지 시각 14일 태국 방콕 시암 파라곤에서 열린 '2025 펍지 모바일 글로벌 챔피언십(PMGC)' 그랜드 파이널 최종일 경기에서 A7은 최종 합계 142점(76킬, 2치킨)을 기록하며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이번 우승은 A7에게 단순한 1승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동안 A7은 '펍지 모바일 월드컵(PMWC)'을 비롯한 굵직한 국제 대회에서 정상에 오르며 세계 최강의 전력으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유독 한 해를 마무리하는 최고 권위의 대회, PMGC와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매번 강력한 우승 후보로 거론되고도 결정적인 순간 미끄러지며 '무관의 제왕'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 대회는 달랐다. A7은 '한'을 풀기 위해 작정한 듯 매서웠다. 시작은 불안했다. 1일 차 경기에서 A7은 45점(30킬)을 기록하며 4위에 머물렀다. 선두권 도약은 가능해 보였으나, 압도적인 우승 후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2일 차부터 A7의 '우승 본능'이 깨어났다.
2일 차 경기에서 A7은 하루에만 2번의 치킨을 뜯으며 무려 70점을 쓸어 담았다. 순식간에 누적 115점(64킬) 고지를 밟으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경쟁 팀들이 치열한 순위 싸움을 벌이는 동안 A7은 자신들만의 템포로 전장을 지배했다.
운명의 최종일, A7은 방심하지 않았다. 2위권 팀들의 거센 추격 속에서도 꾸준히 포인트를 쌓으며 격차를 유지했다.
그리고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 A7 선수들은 서로를 얼싸안으며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털어냈다. 경기장에는 황금비가 쏟아졌고, 선수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트로피를 바라보며 감격을 누렸다.
이에, 우승 직후 이어진 공식 인터뷰는 현장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카릴류(Carrilho)는 "6년 동안 PMGC에서 싸워온 꿈을 드디어 이뤘다"며 그간의 간절함을 전했다.
무엇보다 레보의 사연이 전 세계 팬들의 가슴을 울렸다. 그는 인터뷰에서 "결승 기간 중 어머니를 잃었다"고 고백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 우승을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바친다"는 헌사를 남겨 현장을 숙연하게 했다. 가장 기쁜 순간에 가장 슬픈 소식을 전해야 했던 챔피언의 눈물에 관중들도 함께 울었다.
국경을 넘은 뜨거운 동료애도 빛났다. 치열하게 경쟁했던 한국 디플러스 기아의 '오살(OSAL)' 고한빈 선수는 레보를 직접 찾아가 격려와 축하를 건넸다. 승패를 떠나 오살의 스포츠맨십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과 팬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PMWC 우승에 이어 마지막 퍼즐 조각이었던 PMGC 트로피까지 수집하며 세계 최강의 위업을 달성하는 순간, 그들은 단순한 챔피언을 넘어 감동의 드라마 주인공이 됐다.
현장에서 만난 A7의 한 팬은 "그동안 우리 팀은 늘 최고였지만, PMGC 트로피가 없어 완벽하다고 말하기 힘들었다"며, "오늘에서야 비로소 알파세븐이 세계의 진정한 주인임을 증명했다"고 감격스러워했다.
한편, 한국 팀들은 디플러스 기아가 매치 18 치킨으로 마지막 매치까지 분전하며 115점(75킬)으로 5위를 기록했다. 첫날 25점 13위로 부진하게 출발했음에도 '디펜딩 챔피언'으로서의 저력을 선보였다.
반면 DRX는 2일 차 2위까지 오르며 우승 기대감을 높였지만 이날 여섯 매치에서 단 18점 추가에 그치며 6위에 머물렀다.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한 것이 짙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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