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급여 개혁, '재정 통제' 아닌 '건강권 보장'에서 출발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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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급여 개혁, '재정 통제' 아닌 '건강권 보장'에서 출발해야

프레시안 2025-12-15 08:31:16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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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이하 복지부)는 지난 9일 중앙의료급여심의위원회를 개최하고, 2026년 의료급여 예산안과 함께 제도 개편의 주요 내용을 발표했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이번 발표에서 복지부는 간주 부양비 폐지를 핵심 성과로 내세웠고, 이와 함께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 도입, 의료급여 수가개선 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보도자료 제목으로 강조할 만큼 간주 부양비 폐지는 의미 있는 변화임은 분명하다. 의료급여는 신청자의 소득과 재산뿐 아니라 부양의무자의 부양능력을 함께 고려해 수급권자 여부를 판단한다.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이 일정 기준 이상이면 부양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수급권자로 인정하지 않고,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양능력이 없다고 판단하여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 문제는 그 중간 구간, 즉 부양능력이 '미약'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였다. 이 경우 부양의무자가 실제로 금전적 지원을 하지 않더라도 소득의 일정 비율을 부양비로 산정해 수급권자의 소득으로 간주해 왔다. 근데 내년부터는 이 '미약' 구간의 부양비를 폐지함으로써 복지부가 언급한 대로 "실제로는 지원받지 않고 있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때문에 수급 대상에서 제외되었던 불합리함이 개선"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사회에서는 오랜 기간 부양의무자기준 자체의 전면 폐지를 주장해 왔고, 문재인 정부 때 이미 그 폐지를 약속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26년 만에' 이뤄낸 성과로 자화자찬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번 부양비 폐지로 내년 증가할 의료급여 수급자는 5000명 이상(수급 신청했지만 부양비로 인해 수급권이 제한된 사람 수)으로 추산하는데, 이는 2024년 수급자 156만 명의 0.3%에 불과하며 2023년에서 2024년 사이 증가한 수(4만 3000여 명)에 비해도 한참 떨어진다. 또한 복지부는 보도자료를 통하여 현 기준으로는 수급자가 되지 못하는 노인이 부양비 폐지 이후에는 연락을 끊고 사는 아들 부부의 소득이 본인의 소득으로 간주되지 않아 수급권자가 될 수 있다는 사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는 '미약' 구간에 한정된 이야기일 뿐이다. '연락을 끊고 사는' 노인이라면 아들 부부에게 부양능력이 있더라도 수급권이 보장되는 것이 마땅하지만, 개편된 제도에서도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발표된 내용에서 또 하나의 핵심인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이후 차등제)는 '개악'이다. 이는 연간 외래진료 이용 횟수가 365회를 초과하는 경우 초과되는 외래진료에 대해 본인부담률 30%를 적용하는 제도로, 복지부는 "과다 외래 이용을 관리하고 합리적 의료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비합리적으로 '과다' 이용을 하는 것인지, 실제 복합 질환 등 질병 특성상 불가피한 의료이용을 하는 것인지는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 것인가. 1년에 365회를 넘는 외래 진료를 일률적으로 비합리적인 과다 의료 이용으로 치부하는 것은 근거가 빈약하고 자의적이다. 시술, 투약, 검사 등의 의료 행위에는 항상 위험과 편익이 공존한다. 편익이 위험을 웃돌지 못한다면 365회보다 훨씬 적은 이용도 과잉일 수 있고, 반대로 그만한 의학적 필요가 명확하다면 365회를 넘는 이용도 과소 이용일 수 있다. 일부 건강 취약계층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의학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예외를 두겠다고 하지만, 결국 횟수 기준을 전면에 세운다는 점에서 이 제도는 환자의 필요보다 재정 통제 논리가 앞서 있음을 드러낸다.

이번 발표는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 지난 4월에 발표한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의료급여 개선방안'의 연장선에 있다(☞보도자료 바로가기). 차등제 역시 당시 '외래 본인부담체계 개선'이라는 과제에서, 외래와 약국의 본인부담을 정액제에서 정률제로 개편하는 '이용비례 본인부담'(이후 정률제)과 함께 제시된 방안이었다.

이번 정률제 개편 논의의 시작은 작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윤석열 정부에서 발표된 이후, 시민사회는 정률제가 수급권자의 의료이용 장벽을 더욱 높이는 데다 재정절감 효과도 미미할 것이라며 줄곧 반대했다. 그 사이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였고, 제도 도입 추진의 시계는 멈췄다. 그 상태로 새 정부 출범까지 지속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복지부는 대통령이 부재한 상태에서도 정률제를 포함한 의료급여 개선방안을 발표했고, 불과 대선 이틀 후에는 관련 입법예고까지 했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는 일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7월에 열린 복지부와 시민사회, 의료급여 수급 당사자 간 집담회에서 결국 복지부가 정률제 개편을 위한 모든 법적 절차를 중단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 차등제 발표는 그때 멈춘 정률제 개악이 다시 돌아온 셈이다. 복지부는 정률제를 넣지 않았다고 항변할지 모르겠으나 차등제 역시 정률제와 동일한 문제의식과 통제 논리에 기반한 의료급여 개악이다. 건강보험은 이미 작년부터 본인부담 차등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참고로' 밝히면서, 의료급여에도 적용하는 것이 마치 형평성에 맞는 것처럼 하지만, 건강보험 역시 애초에 차등제를 적용한 것이 문제다. 의료 이용에는 의료 공급자의 영향이 강력하다. 환자로서는 아플 때 얼마나 자주 의료 이용을 해야 할지 정해놓고 의사를 만나는 경우는 거의 없지 않은가. 오히려 어느 의료 기관, 어느 진료과를 찾아야 할지 막막한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의 건강을 걱정해 적정 의료 이용을 유도하겠다면, 더 이상 환자에게 일방적으로 그 책임을 떠넘기기보다는 공급자 통제 방안이나 주치의제 도입을 적극 추진해야 하지 않을까.

설령 156만 명 중 550여 명 정도가(의료급여 외래 본인부담 차등제 예상 적용대상, 0.03%) 명백하게 의료적 필요가 적으면서 압도적인 이용자 요인으로 과다 의료 이용을 하고, 그에 대한 개입의 필요를 인정하더라도 일방적으로 비용부담을 늘리기 전에 고려해야 할 것이 있다. 이들은 왜 그토록 의료 이용을 자주 하는 것일까. 혹시 의료적 필요는 아니지만 살아가는 데 중요한 요인 중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채워줄 수 있을지 하는 것들 말이다. 최소한 550명에 대한 구체적인 실태조사를 통해 맥락과 구조를 파악하는 작업과 건강보험에서는 차등제 도입 후 어떤 영향이 있었는지부터 파악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가 아닐까.

정권이 교체된 후 정률제 추진이 한 차례 멈춘 것은 분명 의미 있는 일이었다. 이는 윤석열 정부에서는 어려웠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통령의 부재 속에서도 관료 주도로 밀어붙이던 작업 아닌가. 그러나 의료급여 정률제만 잠시 멈춰 세운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제도의 지속성을 말하지만, 효과도 불확실하고 제도의 취지를 훼손하는 개악은 완전히 철회되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시작된 의료급여 개악이, 보장성 강화를 표방하는 새 정부에서 완성되는 것은 스스로 정체성을 부정하는 일이다. 의료급여의 지속성은 재정 통제가 아니라, 가장 취약한 이들의 건강권이 흔들리지 않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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