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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 세브란스병원 영상의학과에서 만난 김만득 교수는 통증 색전술 분야에서 판을 바꾸고 있는 기술로 넥스트바이오메디컬(389650)이 개발한 국산 흡수성 색전물질 ‘넥스피어-F(Nexsphere-F)’를 꼽았다. 그는 자궁근종 색전술의 세계적인 권위자이자 넥스피어-F 임상 총괄 책임자이기도 하다.
넥스피어-F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내에서 분해·흡수되는 물질을 혈관 형태에 맞춘 둥근(라운드) 입자 형태로 구현했다. 색전술의 핵심 조건인 ‘원하는 혈관만 정확히 막되 필요 이상으로 오래 남지 않는 것’을 동시에 만족시키겠다는 발상이다.
김 교수는 “둥근 입자이면서 시간이 지나면 깔끔하게 흡수되는 비드를 만들어낸 것 자체가 기술”이라며 “이런 콘셉트의 흡수성 색전물질은 세계적으로도 넥스피어-F가 최초”라고 평가했다.
색전술은 카테터를 혈관 안으로 넣어 비정상 혈류가 공급되는 혈관을 선택적으로 막아 근종이나 통증을 치료하는 시술이다. 자궁근종 색전술은 자궁을 절제하지 않고 근종에 가는 혈류만 차단해 ‘굶겨 죽이는’ 대표적인 비수술 치료법으로 자리잡았다.
이때 가장 널리 쓰이며 현재 표준치료재로 인정받는 물질이 미국 메릿메디컬의 엠보스피어(Embosphere)다. 불규칙한 모양의 미세 입자가 목표 혈관에 들어가 색전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이 물질이 이름 그대로 영구 색전물질이라는 점이다.
그는 “엠보스피어는 수십 년간 전 세계에서 쓰이며 안전성이 상당 부분 입증된 물질이지만 한 번 들어가면 혈관이 영구적으로 막힌다”며 “플라스틱 같은 입자가 평생 몸 안에 남는다는 사실이 환자와 의사 모두에게 심리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이런 불안을 자주 마주한다. 김 교수는 “엠보스피어로 시술받은 환자들이 몇 년 뒤 ‘나중에 이거 빼낼 수는 없냐’, ‘날씨가 흐리면 몸이 안 좋은데 그때 막았던 입자 때문은 아니냐’고 묻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빈도는 매우 낮지만 피부 변색, 피부·뼈 괴사 같은 부작용 보고도 있다”고 설명했다.
넥스피어-F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겨냥한다. 혈관을 막아 치료 효과는 내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입자가 체내에서 자연스럽게 분해·흡수되도록 설계한 것이다.
그는 “환자분이 ‘이 물질은 나중에 어떻게 되냐’고 물으면 ‘시간이 지나면 몸 안에서 다 녹아 없어지는 물질’이라고 설명해 드릴 수 있다”며 “그 설명을 듣는 순간 환자 표정이 확 편안해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물론 처음부터 넥스피어-F에 확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자궁근종 색전술 국내 도입 1세대로 25년 넘게 시술해온 김 교수에게 이미 표준치료재로 자리잡은 영구 색전물질 엠보스피어를 내려놓고 새로운 국산 흡수성 색전물질을 실제 환자에게 쓰는 결정은 쉽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초반에는 많이 망설였다. 전 세계적으로 표준처럼 쓰이는 물질이 있는데, 그걸 굳이 바꿔야 하나, 정말 안전할까 하는 고민이 컸다”고 회상했다. 그럼에도 극히 제한된 환자군에서 먼저 적용해 보기로 했고 결과는 예상보다 좋았다.
기존 엠보스피어를 사용했을 때 자궁근종 색전술의 임상적 성공률은 약 95% 수준으로 전해진다. 넥스피어-F로 바꿔 시술했을 때도 임상 성공률은 95~97%로 비슷하게 나왔다. 종양(근종) 크기 감소, 통증·출혈 등 증상 호전 정도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
현재 세브란스병원의 자궁근종 색전술에서 활용되는 색전물질은 사실상 넥스피어-F가 ‘메인’이 됐다. 김 교수는 “이제 자궁근종 색전술에는 넥스피어-F만 쓰고 있다”며 “성과도 좋고 평생 남는 이물질에 대한 환자의 심리적 부담도 줄여줘 자연스럽게 선택지가 넥스피어-F로 옮겨갔다”고 말했다.
이후 김 교수는 넥스트바이오메디컬과 함께 정부 연구비 지원을 받아 자궁근종 색전술에서 넥스피어-F와 엠보스피어를 비교하는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엠보스피어군 28명, 넥스피어-F군 28명 등 총 56명을 1대 1로 나눠 시술한 결과는 영상의학 분야 최고 권위지 가운데 하나인 래디올로지(Radiology)에 게재됐다.
그는 “임상적 성공률은 두 그룹 모두 동일했다”며 “근종이 얼마나 잘 괴사하는지, 환자 증상이 얼마나 좋아지는지 모든 지표에서 넥스피어-F가 기존 표준치료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두 제품의 차이는 추적 MRI에서 명확히 드러났다. 영구 색전물질로 치료받은 환자의 자궁동맥은 시간이 지나도 막힌 상태로 남아 있었던 반면, 넥스피어-F로 시술받은 환자의 혈관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재개통됐다.
김 교수는 “여성의 자궁근종은 시간이 지나 재발할 수 있다. 처음부터 영구 색전물질로 혈관을 완전히 막아버리면 재발 시 재시술이 훨씬 어렵고 결과도 떨어질 수 있다”며 “반대로 넥스피어-F로 막았다가 혈관이 다시 열린다면 필요할 때 재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효과는 유지하면서 혈관의 ‘미래 옵션’을 남겨두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 임상 결과를 검토한 미국 조지타운대학교 의과대학·메드스타 조지타운대학병원(MedStar Georgetown University Hospital) 영상의학과 제임스 B. 스피스(James B. Spies)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검토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 요건을 갖춘 데이터라는 취지로 평가 의견을 남겼다. 넥스트바이오메디컬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미국에서는 별도의 대규모 임상 없이 인허가에 도전하고 있다.
넥스피어-F의 잠재력은 자궁근종을 넘어선다. 일본에서 시작돼 전 세계로 확산 중인 근골격계 통증 색전술 분야에서도 핵심 도구로 부상하고 있다. 근골격계 색전술은 무릎 관절염, 오십견, 테니스엘보, 족저근막염, 골반·햄스트링 손상, 아킬레스건 주변 통증 등에서 만성 통증을 유발하는 비정상 혈관을 선택적으로 찾아가 색전물질로 잠시 막는 시술이다. 기존 치료가 '약·물리치료→관절 주사→인공관절 수술'로 곧장 이어지던 흐름 속에서 수술을 미루거나 대체할 수 있는 중간 옵션으로 자리잡는 추세다.
초기 근골격계 색전술에서는 항생제 이미페넴을 혈관 내에 주입해 잠시 결정(crystal)처럼 굳었다가 녹는 성질을 이용해 색전 효과를 냈다. 이후 넥스피어-F처럼 통증 색전술에 특화된 흡수성 색전물질이 등장하면서 효과와 재현성 모두 한층 높아졌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근골격계 통증 색전술 개념을 처음 체계화한 인물은 일본 도쿄 오쿠노클리닉(Okuno Clinic)의 유지 오쿠노(Yuji Okuno) 원장이다. 그는 통증을 유발하는 병적 혈관을 표적 삼는 운동기 카테터 치료를 제시하며 혈관 색전을 통한 통증 치료라는 새로운 축을 열었다. 최근에는 염증과 통증을 표적하는 혈관 색전 및 신경 중재를 키워드로 국제학회 벤티(VENTI)를 창립해 관련 논의의 허브 역할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유럽에서는 이미 시장이 크게 둘로 나뉘고 있다. 기존 영구 색전물질 엠보스피어를 쓰는 그룹과, 흡수성 색전물질 넥스피어-F를 쓰는 그룹이 공존하는 구조”라며 “흡수성 색전 쪽에서는 넥스피어-F가 사실상 표준치료재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이어 “근골격계 통증 색전술을 이끌어온 오쿠노 원장이 최근 설립한 국제학회 VENTI에서는 넥스피어-F를 둘러싼 다양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학회에 가보니 전 세계에서 신청이 몰려 중간에 등록을 막았을 정도였고 학회장에 앉을 자리가 없을 만큼 열기가 뜨거웠다”며 “특히 스포츠 손상 환자나 운동선수 치료에서 넥스피어-F가 지닌 가능성에 전 세계 전문가들이 주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넥스피어-F는 색전술을 영구 색전물질 중심의 시대에서 흡수성 물질 중심 시대로 전환시키는 패러다임을 제시한 제품”이라며 “자궁근종 색전술이라는 성숙한 영역에서 기존 표준치료와 동등한 임상 성적을 입증했고, 혈관 재개통이라는 새로운 강점을 보여줬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근골격계 통증 색전술이라는 성장 시장에서도 흡수성 색전물질 분야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다”며 “무엇보다 ‘평생 몸에 남지 않는 색전물질’이라는 콘셉트가 의료진과 환자 모두의 경험의 질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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