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와 초록우산은 우리 사회에서 성장하는 모든 아이들이 차별 없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이주배경아동, 함께 키워요’ 연속 기고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연재는 언어·문화 장벽과 불안정한 법적 지위로 인해 여전히 교육과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주배경아동들의 실태를 조명하고 제도적 개선 방향을 모색합니다. 모든 아동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포용적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공감과 연대의 마음이 확산되길 바랍니다. - 편집자 말
2025년 11월, 초록우산 광주지역본부가 다어울림 이주배경아동 권리 증진 포럼을 개최했다. ⓒ초록우산
“한국에서 태어난 아이는, 최소한 한국 아이들처럼 생활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얼마 전 이주배경아동 지원기관에서 만난 한 수녀님께서 하신 말이다. 이 말은 미등록 아동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국적이나 부모의 체류 자격이 아니라, ‘아이의 존재 자체’가 보호의 출발점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주민이 증가하면서 출생 직후부터 미등록 상태에 놓이는 아동도 꾸준히 늘고 있다. 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격차와 권리 침해’를 경험한다. 문제는 이 현상이 더 이상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안고 가야 할 구조적 위험이라는 데 있다.
미등록 아동이란 출생신고를 하지 못했거나, 부모가 체류 자격을 취득하지 못해 법적으로 등록되지 못한 아동을 말한다.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 이들은 공적 보호 체계 밖으로 밀려나 ‘투명 인간’으로 존재하게 된다. 법적 신분이 없다는 이유로 의료·복지·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접근조차 박탈되며,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 전체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가장 심각한 것은 권리 침해가 아동의 생존 영역에서부터 이미 시작된다는 사실이다. 출산 의료비 부담으로 인해 산전·산후 관리를 제대로 받기 어렵고, 감기 같은 경증 외래 진료조차 제때 이용하기 어렵다. 건강보험이나 국가 의료지원은 애초에 적용 대상조차 아니다. 법적으로 예방접종이 가능함에도 부모의 체류 불안정성과 기관 간 정보 연계 부족 등으로 실제 접종률은 매우 낮은 실정이다.
초등학교 입학은 가능하지만, 취학통지서를 받지 못해 뒤늦게 학교에 들어가기도 한다. 학교에 다니더라도 수업만 가능할 뿐, 신분 확인이나 보호자 동의가 필요한 수학여행, 체험학습 등은 사실상 참여가 제한되어 또래와의 경험 격차가 더욱 심화된다. 병원이나 치과 치료 역시 비용 부담 때문에 접근이 매우 어렵다. 이처럼 조각난 권리 보장 체계로는 근본적인 격차와 위험을 해소할 수 없다.
초록우산 광주지역본부 이해성 과장. ⓒ초록우산
현장의 사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보여준다. 필자가 현장에서 만난 한 가족의 경우, 어머니는 임신으로 학업을 중단하면서 비자 유지가 어려워졌고, 아버지도 근무처 변경으로 체류 자격을 잃어 결국 아동까지 미등록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들은 위급 상황에서도 신분 문제 때문에 병원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없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 행정적 신분 부재로 인해 아동의 건강과 안전이 직접적으로 위협받게 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국가 차원의 공적 발굴과 지원 근거, 체계가 사실상 전무하다는 데 있다. 미등록 상태이기에 이들의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지원은 결국 지역 현장에서 활동하는 기관 종사자나 민간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헌신적인 시민사회가 버티고 있을 뿐, 제도는 텅 비어 있다. 일부 지자체가 외국인 진료소 운영이나 미등록 아동에 대한 공적 확인 절차를 조례로 마련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상위법과의 충돌 가능성 등 구조적 한계에 부딪혀 근본적 해결에는 역부족이다. 나아가 지역 기관 간 정보 연계조차 원활하지 않아, 발굴된 아동을 포괄적으로 지원하는 데 큰 장벽이 된다.
이주배경아동의 권리 보장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NGO 및 민간 복지단체의 종합적인 노력과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다. 중앙정부는 미등록 아동에 대한 법적·재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는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지원과 정책을 실행해야 한다. NGO 및 민간 복지단체는 현장에서 아동을 가장 빠르게 발굴하고, 지원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세 주체가 유기적으로 정보를 공유하며 협력할 때, 비로소 미등록 아동이 그림자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사회 통합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품어야 할 ‘미래 시민’이며, 보호받아야 할 ‘현재의 아이들’이다. 존재를 인정받을 권리조차 누리지 못한 채 살도록 방치하는 사회에 미래는 없다. 이제는 국가가 응답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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