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연 사진제공 | TV조선
낭만이 아니라 생활자로 남은 배우의 선택
[스포츠동아 ｜ 양형모 기자] 제주로 내려간 사람은 많았지만, 제주에 남은 사람은 많지 않다. 제주에서 오래 산다는 건 풍경을 즐기는 문제가 아니라, 태도를 고치는 일에 가깝다.
배우 진서연의 제주살이 3년 차가 눈에 띄는 이유는 집 마당에서 보이는 산방산 때문만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제주 정착이 반복해서 좌절되는 상황에서, 그는 비교적 빠르게 생활자로 자리를 잡았다. TV조선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서 드러난 진서연의 일상은 제주에 적응하는 방식이 무엇인지 분명한 힌트를 남긴다.
첫 번째 이유는 제주를 ‘도피처’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진서연은 서울과 제주의 역할을 분명히 나눴다. 서울은 일하는 공간이고, 제주는 살아가는 공간이다.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 내려가며 삶 전체를 바꾸려 한다. 일도, 인간관계도, 생활 리듬도 한 번에 옮기려다 보니 부담이 커진다.
반면 진서연은 서울에서 ‘벌고’ 제주에서 ‘산다’. 이 단순한 구분이 제주살이의 난도를 크게 낮춘다. 제주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지 않고, 생활의 한 축으로 둔 선택이다.
두 번째는 제주에서 ‘연예인’의 위치를 고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트럭을 타고 다니고, 트레이닝복에 맨얼굴로 동네를 오간다. 사우나에서 만난 ‘삼춘’들에게 고사리를 얻어온다는 이야기는 친근한 에피소드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스스로를 특별한 존재로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가 묻어 있다.
제주에서 외지인이 가장 먼저 부딪히는 건 자연이 아니라 시선이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사람과 굳이 눈에 띄려는 사람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다르게 읽힌다. 진서연은 조용한 쪽을 택했다.
세 번째는 제주를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는 점이다. 방송에서 단골집 이야기를 하며 “카메라 꺼지면 말해주겠다”고 한 말은 물론 농담에 가깝다. 다만 그 농담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었던 배경은 분명하다. 진서연의 제주 생활에는 ‘보여주기 위한 제주’가 없다. 일부러 숨기지도 않고, 일부러 드러내지도 않는다. 이 무심함이 제주살이를 편하게 만든다.
앞의 세 가지가 태도의 문제라면, 마지막은 생활 방식의 문제다. 네 번째 이유는 제주를 ‘즐기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매일 운동하고, 해양 쓰레기를 줍고, 유명 맛집을 찾아 멀리 이동하기보다 동네 식당을 이용한다. 제주를 체험의 대상으로 두지 않으면 실망도 줄어든다. 기대가 낮을수록 불편함은 생활의 일부가 된다. 진서연의 일상은 제주를 이상화하지 않은 쪽에 가깝다.
그래서 제주에 산 지 3년이 지나서야 흑우를 처음 먹고 들뜬 모습도 인상적이다. 일부러 찾아다니지 않았고, 뒤늦게 알게 된 즐거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제주에서 뭘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장면이다.
진서연의 제주살이 비법은 거창하지 않다. 제주에 맞추되, 제주에 기대지 않았다. 특별해지려 하지 않았고, 앞서가지 않았고, 서두르지 않았다.
제주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은 풍경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신 생활 이야기를 한다. 진서연이 3년을 버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제주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서의 삶 역시 과장될 필요가 없었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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