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비료 시장을 흔드는 벨라루스산 칼륨
국제 '비료 시장'에 예상치 못한 파문이 일었다. 미국 재무부가 벨라루스의 주요 국영기업 벨아루스칼리(Belaruskali)에 대한 일부 제재를 조건부로 해제하면서, 벨라루스 정치 수감자 중 가장 유명한 인물, 노벨평화상 수상자 알레스 비알랴츠키(Ales Bialiatski·63)가 갑작스럽게 석방됐다. 인권과 경제, 국제 제재와 글로벌 식량 안보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일어난 이 사건은 단순한 인도적 조치로 보기엔 그 함의가 너무 크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국가 벨라루스
비료는 단지 농업의 문제만이 아니다. 그것은 국제 외교의 칩이며, 때로는 억압 체제의 생명줄이기도 하다. 벨라루스산 칼륨 비료는 세계 공급량의 약 20%를 차지하며, 이 작은 동유럽 국가는 의외의 방식으로 세계 농업과 연결되어 있다. 그간 미국과 유럽연합은 루카셴코 정권의 지속적인 인권 탄압과 정치적 억압에 대응해 칼륨 수출을 제한해 왔고, 이는 전 세계 비료 가격의 급등을 부추겼다. 특히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와 벨라루스를 동시에 제재 대상으로 삼은 국제사회는 그에 따른 부메랑을 식량 시장에서 고스란히 맞았다.
벨라루스 정권은 이같은 국제적 압박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들의 통치 방식을 유지했었다. 하지만 미국이 칼륨 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며 ‘인도주의적 식량 안정’을 명분으로 내세우자, 루카셴코는 반응을 내놓았다.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인비알랴츠키를 포함한 정치범 123명을 석방한 것이다.
인권의 얼굴, 경제의 도구가 되다
비알랴츠키는 202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벨라루스 인권단체 ‘비아스나’의 설립자다. 그는 수년간 루카셴코 정권의 독재를 비판하며 국내외 인권 단체들과 연대했으며, 정권에 의해 ‘세금 포탈’이라는 정치적 구실로 체포됐다. 그가 수감되던 시기, 국제사회는 지속적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했고, 유럽의회는 그를 ‘정치적 양심수’로 규정했다.
그러나 루카셴코는 그 어떤 국제 압력에도 요지부동이었다. 그러던 중 미국 정부가 벨아루스칼리를 비롯한 3개 비료 기업에 대한 제재 완화를 검토한다는 보도가 나오고, 이에 대한 협상이 비밀리에 진행됐다는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 뒤따랐다. 곧이어 벨라루스 정부는 비알랴츠키를 조건 없이 석방했다.
러시아 독립 언론 *메두자(Meduza)*는 유럽 외교 관계자를 인용해 다음과 같이 전했다.
“미국은 인도주의적 비료 수급 안정을 위해 제재를 부분적으로 해제했고, 벨라루스는 이에 상응하는 신호로 비알랴츠키 석방을 택한 것이다. 이는 철저히 정치적 거래이며, 양측 모두 외교적 명분을 확보한 셈이다.”
경제적 유인과 인권의 등가 교환
벨라루스의 칼륨 산업은 자국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며, 특히 벨아루스칼리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비료 생산 기업 중 하나다. 제재가 가해지기 전, 이 기업의 연간 수출액은 약 30억 달러(한화 약 3조 9,000억 원)에 달했다. 제재 이후 해당 수익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벨라루스 경제는 뚜렷한 위축세를 보였다.
하지만 비료 제재는 벨라루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와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는 2023년부터 ‘비료 공급 불균형이 곧 식량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를 반복해 왔다. 특히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 저소득 농업 국가들의 피해가 심각했고, 일부 국가는 칼륨 비료의 부족으로 곡물 생산량이 10%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글로벌 식량 안보 확보’를 명분으로 칼륨 제재 일부를 유예했고, 이는 유엔 사무총장이 공개적으로 촉구했던 방향과도 일치한다. 안토니우 구테흐스는 2023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비료에 대한 제재는 인권보다 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와 인권 사이에서, 한 정치범의 석방은 국제 거래의 일부로 간주됐고, 이는 국제사회가 인권과 경제를 어떻게 맞바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제재의 균열, 루카셴코의 전략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벨라루스 대통령 알렉산드르 루카셴코(71)는 지난 30년간 흔들림 없는 독재를 유지해 왔다. 그는 정권에 위협이 되는 모든 정치적 인물들을 제거했고, 2020년 대선에서 대규모 부정 의혹이 제기된 이후에는 반정부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비알랴츠키 석방은 그가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략적으로 ‘인권 카드’를 사용한 것이라는 분석이 유력하다. 실제로 2016년에도 벨라루스는 다수의 정치범을 석방하면서 유럽연합의 제재 일부 해제를 이끌어낸 전력이 있다.
국제정책 분석가 알렉산드르 카자르스키는 “벨라루스는 반복적으로 정치범을 ‘교환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이 방식은 유럽이나 미국에게도 정치적으로 유리한 명분을 제공하기 때문에 쉽게 반복된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번 석방은 이전보다 훨씬 더 국제적 주목을 받았다. 비알랴츠키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상징적 인물이었고, 그의 석방은 벨라루스가 자발적 변화보다는 외부 압력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비료 공급과 식량 위기, 세계는 무엇을 선택했나
전문가들은 미국의 선택을 ‘현실적인 타협’이라고 해석한다. 미국은 루카셴코를 지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기후 변화, 국제 물류망 위기 등이 겹친 상황에서, 칼륨 공급 부족은 곧 식량 가격의 폭등과 저소득 국가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 유엔 관계자는 익명을 조건으로 “미국은 비료 문제를 인권보다 더 급한 문제로 본다. 식량 위기는 단기간 내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 비알랴츠키의 석방은 이같은 현실을 가리는 장막이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한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벨라루스를 경제적으로 완전히 고립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만약 벨라루스의 칼륨 수출이 막히고 러시아가 이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장악한다면, 미국은 또 다른 지정학적 리스크를 맞이하게 된다.
노벨상 수상자의 자유, 그리고 국제 정치의 냉정함
비알랴츠키는 석방 직후 짧은 인터뷰에서 “내가 석방된 이유를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개인의 승리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벨라루스에는 수십 명의 정치범이 남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석방이 전 세계의 언론 헤드라인을 장식했지만, 실제로 바뀐 것은 거의 없다. 루카셴코는 여전히 권좌에 있으며, 야권 지도자들과 언론인들은 여전히 망명 중이거나 구금 상태다.
벨라루스는 다시금 국제 무대에서 자신을 유용한 존재로 입증했다. 칼륨이라는 비료가 노벨상 수상자의 자유와 맞바뀐 현실 속에서, 국제사회는 ‘인권의 보편성’이라는 신념과 ‘식량 안보’라는 필요 사이에서 조용히 균형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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