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지선으로 여겨지는 1480원선을 위협하자 정부가 휴일에 긴급 회의를 소집하며 환율 방어에 나섰다. 외환시장의 ‘구원투수’로 불리는 국민연금이 전략적 환헤지를 가동했음에도 원화 약세가 진정되지 않자, 당국의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4일 오후 4시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기관 합동 ‘긴급 경제장관 간담회’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휴일 오후에 열린 이번 회의에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융감독원장 등 재정·통화·금융 당국 수장이 모두 모였다.
대통령실에서는 하준경 경제성장수석이, 관계 부처에서는 이스란 보건복지부 1차관과 박동일 산업통상자원부 산업정책실장이 참석했다. 외환·금융 당국을 넘어 복지부와 산업부까지 참여한 것은 외환시장 주요 수급 주체인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와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분까지 포괄적으로 점검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가 휴일 긴급 회의까지 열게 된 배경에는 최근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가 있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12일 원·달러 환율 주간거래 종가는 1473.7원을 기록했고, 야간거래에서는 장중 한때 1479.9원까지 오르며 1480원 선에 근접했다. 야간 종가는 1477.0원으로 마감했다.
12월 들어 원·달러 환율의 월평균은 1470원을 넘어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달 평균 환율 역시 1460.44원으로, 1998년 3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달러인덱스가 하락하며 주요 선진국 통화가 달러 대비 강세를 보이는 가운데, 원화만 약세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도 시장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은 최근 전략적 환헤지를 전격 발동했다. 전략적 환헤지는 환율이 정상 범위를 벗어났다고 판단될 경우 해외 자산의 5~10% 범위에서 선물환 매도를 통해 환율 변동 위험을 줄이는 제도로, 강력한 시장 안정 수단으로 평가된다. 시장에서는 발동 기준선을 1480원 안팎으로 예상했으나, 당국은 1473원 수준에서 선제 대응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환율 상승세가 이어지자 정부는 보다 종합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환율 상승 요인의 약 70%는 국민연금과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투자 확대 등 수급 요인에서 비롯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개인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는 지난달과 이달에도 큰 규모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회의에서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하고, 향후 변동성 확대에 대비한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회의 결과에 대한 구체적인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외환 수급 관리와 정책 공조를 중심으로 한 추가 안정 조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당국 안팎에서는 해외 투자 수요가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큰 만큼 고환율 기조 역시 쉽게 꺾이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에 따라 정부의 환율 방어 의지와 정책 대응이 향후 외환시장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뉴스로드] 강동준 기자 newsroad01@newsroa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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