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밥상에 오르면 언제나 먼저 손이 가는 음식이 있다. 바로 고추씨의 은은한 매운 향이 배어든 무짠지다.
무짠지는 겨울철 저장 음식 중에서도 손이 가장 많이 가지만, 그만큼 깊고 안정된 맛을 준다. 특히 고추씨를 활용하면 매운맛이 지나치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고소한 향이 무 깊숙이 스며들어 입맛을 돋운다. 고추씨의 향과 기름 성분이 무의 수분과 만나 숙성 과정까지 부드럽게 도와주는 것이 특징이며, 이런 조합은 겨울 반찬에서 무짠지를 독보적인 존재로 만든다.
겨울 무가 유난히 달고 아삭한 이유는 급격한 기온 변화에 있다. 날씨가 차가워지면 무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더 많은 당분과 수분을 저장해 조직이 단단해지고 맛이 깊어진다. 이 시기에 담근 무짠지는 식감이 아삭하게 유지되며, 고추씨의 은근한 열이 더해져 풍미에 층이 생긴다. 자연스럽게 짠지 한 조각만으로도 밥 한 그릇을 비울 수 있는 깊은 맛이 완성된다.
유튜브 '[윤이련]50년 요리비결'
고추씨 무짠지는 향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이 핵심이다. 무를 두툼하게 썰어 용기에 차곡차곡 채워 넣을 때 고추씨를 충분히 뿌려줘야 은은한 매운맛이 골고루 퍼진다. 고추씨가 적으면 풍미가 밋밋해지고, 과하면 무 특유의 단맛이 묻히기 때문에 비율 맞추기가 중요하다. 적절한 비율을 유지해 담가두면 숙성 한 달 후에는 무의 단맛과 고추씨의 향이 어우러져 깊은 맛을 내게 된다.
고추씨에는 겨울철 건강에 유용한 천연 항산화 성분이 풍부하다. 기온이 낮아지면 대사가 느려지고 몸이 쉽게 무거워지는데, 고추씨 속 성분들이 이를 자연스럽게 돕는다. 무 또한 소화를 돕는 효소가 풍부해 짠지 형태로 먹으면 겨울철 묵직한 속을 편안하게 정리해준다. 두 재료가 발효 과정에서 만나면 감칠맛이 살아나고, 자연숙성 특유의 깊은 풍미가 더해져 겨울철 집집마다 찾게 되는 대표 저장 음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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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성된 무짠지를 오래 즐기기 위해서는 꺼내 먹는 방법에도 작은 요령이 필요하다. 단면이 오랫동안 공기에 노출되면 풍미가 빠르게 약해지므로 필요한 만큼만 꺼내어 빠르게 소비하는 것이 좋다. 남은 무짠지는 조리용으로도 훌륭한데, 특히 돼지고기 수육이나 들기름에 볶은 시래기, 돼지찌개 같은 겨울 메뉴에 더하면 특유의 숙성 향이 음식 전체의 맛을 끌어올린다.
예전처럼 집집마다 고추씨를 따로 모아 무짠지를 담그는 일은 줄었지만, 오히려 이 전통 방식의 가치는 더 높아지고 있다. 단순한 저장식이 아니라 겨울의 풍미와 건강을 함께 챙길 수 있는 자연 발효 음식이기 때문이다. 무의 달큰한 맛, 고추씨의 은근한 열, 그리고 발효가 더해주는 깊이는 겨울을 든든하게 버티게 해주는 힘 같은 것이다. 고추씨 무짠지는 그래서 해마다 겨울이면 다시 찾게 되는 오래된 미래의 맛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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