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는 나를 ‘좋은 여자’ 로 기억할까

나는 정말 좋은 여자 였을까?

이별의 순간, 상대방 입에서 나오는 말 중 가장 비참한 문장이 있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야.” 혹은 “나한테 과분한 사람이야.” 이 말은 위로가 아니다. 그것은 사형 선고다. 당신이라는 존재가 그의 인생에서 더 이상 ‘여자’나 ‘연인’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가장 부드럽고 예의 바른 통보다.

우리는 흔히 착하고, 배려심 깊고, 헌신적인 태도가 사랑을 지속시키는 연료라고 믿는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의 연애, 특히 남녀 관계의 역학에서 ‘착함’은 종종 ‘지루함’의 동의어로 전락한다. 당신이 그에게 쏟아부은 그 모든 이해와 용서, 기다림은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는 안전한 카테고리에 가두어버렸다.

그는 왜 당신을 나쁜 년이라고 욕하지 않고, 굳이 ‘좋은 사람’이라고 기억하려 드는가. 그 칭찬 뒤에 숨겨진 남성 심리의 비겁한 기제와, 착한 여자가 필연적으로 맞이하게 되는 성적 매력의 거세 과정을 해부해보려 한다.

이것은 당신의 도덕성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당신이 더 이상 그를 설레게 하지 못한다는 슬픈 자백이다.

예측 가능한 천사는 지루하다

인간의 뇌는 본능적으로 패턴을 찾고, 그 패턴이 파악되는 순간 흥미를 잃는다. 진화심리학적으로 우리는 생존을 위해 불확실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설계되었다.

풀숲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토끼인지 호랑이인지 모를 때, 우리의 뇌는 가장 활발하게 깨어난다. 연애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늘 연락이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 미묘한 불확실성이야말로 도파민이라는 강력한 신경전달물질을 펌프질하는 원동력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신은 너무나 예측 가능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연락을 늦게 해도 당신은 이해해줬다. 그가 약속을 어겨도 당신은 웃으며 넘어갔다. 당신의 반응은 언제나 고정값인 ‘상수’였다. 변수가 사라진 함수는 더 이상 풀 가치가 없는 문제집과 같다.

그는 당신이 화를 낼 타이밍에 화를 내지 않고, 요구해야 할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을 보며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편안함은 치명적인 독이다. 편안함이 극대화되면 긴장감이 사라지고, 긴장감이 사라지면 성적 매력, 즉 ‘텐션’이 소멸한다.

심리학 행동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강화 스케줄’을 떠올려보자. 레버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나오는 상자 안의 쥐는 배가 부르면 더 이상 레버를 누르지 않는다.

하지만 레버를 눌러도 먹이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즉 보상이 불규칙한 상황에서 쥐는 죽을 때까지 레버에 집착한다. 당신은 그에게 ‘누르면 무조건 나오는 먹이’였다. 당신의 헌신은 그에게 보상이 아니라, 당연한 권리가 되어버렸다.

그가 당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칭하는 것은, 당신이 그에게 어떠한 도전 과제도 던져주지 않았다는 뜻이다. 당신은 정복해야 할 산이 아니라, 언제든 누워 쉴 수 있는 낡은 소파였다.

소파는 편안하고 안락하지만, 우리는 소파를 열렬히 욕망하거나 사랑하지 않는다. 그저 필요할 때 쓰고, 낡으면 버릴 뿐이다. 그가 당신을 좋게 기억한다는 건, 당신이 그에게 아무런 위협도, 자극도 되지 않는 무해한 존재가 되었다는 서글픈 증명이다.

마돈나-창녀 콤플렉스와 성적 대상화의 실패

남성 심리의 기저에는 프로이트가 지적한 ‘마돈나-창녀 콤플렉스(Madonna-Whore Complex)‘가 뿌리 깊게 박혀 있다. 이는 여성을 ‘성녀(어머니, 아내, 순결한 존재)’와 ‘창녀(성적 대상, 쾌락의 도구)’라는 이분법적 틀로 나누어 인식하는 심리적 기제다.

남성들은 종종 자신이 존경하고 아끼는 ‘좋은 여자’에게서는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고, 반대로 함부로 대할 수 있거나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어 보이는 여자에게서 강렬한 성적 욕망을 느낀다.

당신이 그에게 헌신적이고 도덕적으로 완벽한 모습을 보일수록, 당신은 그의 무의식 속에서 ‘마돈나’의 위치로 상승한다. 당신은 지켜줘야 할 존재, 더럽혀서는 안 될 존재,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머니’와 같은 존재가 된다.

남자는 어머니와 섹스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신이 그에게 엄마처럼 밥을 챙겨주고, 잔소리를 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을 베풀 때마다 당신의 성적 매력은 거세당하고 있었다.

그는 당신을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랑은 연인에 대한 에로틱한 사랑이라기보다, 가족이나 성직자에 대한 경외심 섞인 애정에 가까워졌을 확률이 높다. 이별 후 그가 당신을 “정말 좋은 여자였지”라고 회상하는 것은, 당신을 박물관의 전시품처럼 유리관 안에 넣어두겠다는 뜻이다.

“너는 나 같은 쓰레기가 만나기엔 너무 고귀해”라는 말은 핑계가 아니다. 자신의 더러운 욕망을 투영하기엔 당신이라는 캔버스가 너무 하얗고 깨끗해서 부담스럽다는 솔직한 고백이다.

당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순간, 당신은 인간으로서의 입체성을 잃어버린다. 질투도 하고, 욕망도 있고, 때로는 이기적인 모습도 보여야 살아있는 인간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당신은 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그림자를 숨기고 빛나는 모습만 보여주려 애썼다. 그 결과 당신은 그에게 살아 숨 쉬는 여자가 아니라, 도덕교과서에 나오는 평면적인 캐릭터가 되어버렸다. 캐릭터는 존경받을 수는 있어도, 밤새 그를 잠 못 이루게 만들 수는 없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그들만의 면죄부

그가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야만 하는 또 다른, 그리고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자기 방어’ 때문이다. 이별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는 잔인한 게임이다. 이별을 통보하는 쪽은 필연적으로 죄책감을 떠안게 된다. 이때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규정해두는 것은 그에게 훌륭한 면죄부가 된다.

만약 그가 당신을 나쁜 사람이라고 욕한다면, 그는 “왜 그런 여자를 만났느냐”는 자기 선택의 실패를 인정해야 한다. 반대로 당신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면, 이별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성격 차이’나 ‘상황의 문제’로 포장될 수 있다.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지만, 우리가 너무 달랐어”라는 말은 얼마나 깔끔하고 신사적인가. 그는 이 문장 하나로 자신의 변심을 합리화하고, 자신을 ‘좋은 여자를 놓아준 사연 있는 남자’로 연출할 수 있다.

또한, 당신을 좋은 사람으로 남겨두어야만 그는 나중에 혹시 모를 재회의 가능성, 혹은 ‘보험’을 들어둘 수 있다. 좋은 사람은 거절을 잘 못한다. 그는 알고 있다.

자신이 언젠가 힘들고 외로울 때 연락하면, 그 ‘좋은 사람’이었던 당신은 또다시 친절하게 받아줄 것이라는 사실을. 당신을 악녀로 만들면 다시는 연락할 명분이 사라지지만, 좋은 사람으로 남겨두면 언제든 “잘 지내?”라며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즉, 그가 당신을 좋게 기억하는 것은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다. 철저히 자신의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 그리고 미래의 편의를 위해서다. 당신의 착함은 그가 이별 후 겪어야 할 후폭풍을 최소화시켜주는 쿠션 역할을 했을 뿐이다. 그는 당신 덕분에 죄책감 없이, 아주 안락하게 당신을 떠날 수 있었다.

착한 여자는 천국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어디든 간다

“너는 좋은 사람이야.” 이 말을 듣고 안도하거나 슬퍼하지 마라. 대신 분노해야 한다. 그 말은 당신이 관계 속에서 당신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주장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상대방에게 긴장감을 주는 데 실패했다는 성적표다.

사랑은 도덕 경연 대회가 아니다. 누가 더 희생하고 참느냐로 점수를 매겨 상을 주는 곳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권력 투쟁에 가깝다.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고, 타협하고, 때로는 상처 입히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꽃이 관계를 지탱한다. ‘좋은 사람’이라는 칭호는 그 치열한 전장에서 일찍 항복한 자에게 주어지는 위로상 같은 것이다.

이제 그 ‘좋은 사람’이라는 껍질을 깨고 나와야 한다. 이해심 넓은 여자 친구, 착한 딸, 순종적인 파트너의 가면을 벗어 던져야 한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면, 이기적인 면, 욕망하는 면을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라.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그를 불안하게 만들며, 자신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두는 여자. 그런 여자가 되었을 때, 그는 당신을 단순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것을 넘어, ‘놓치지 말았어야 할 여자’로 뼈저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기억하라. 역사에 남는 팜므파탈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좋은 여자 들이 아닌 ‘나쁜 여자’들이었다. 당신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착한 시체로 썩어갈 것인가, 아니면 나쁜 생명력으로 살아남아 그를 괴롭힐 것인가. 선택은 이제 당신의 몫이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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