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과학기술과 인공지능(AI)을 국가 성장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내년 국정 운영에 나선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세종·정조 시대를 언급하며 과학기술의 국가적 위상을 강조했다. ‘기술을 존중한 국가가 성장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토대로, 전국민 AI 프로젝트를 본격 가동해 국가 역량을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기조는 예산과 정부 조직 개편으로 구체화됐다. 2026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35조5000억원으로 확정돼 전년 대비 약 20% 늘었으며, 이 중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소관 예산은 23조7417억원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정부조직법 개정으로 17년 만에 부총리급 부처로 격상돼 과학기술과 AI 분야의 국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게 됐다. 정부는 확대된 R&D 예산과 부총리 체제를 바탕으로 AI와 첨단 과학기술 투자를 강화하고, 기술 중심의 국정 운영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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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7년 ‘한국형 챗GPT’로 국민 체감 성과 낸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업무보고에서 내년 핵심 추진 과제로 ‘AI 세계 3강 도약’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밝혔다. 국민 모두가 함께 활용하는 K-AI를 개발해 지역경제와 산업 생산성, 연구개발 효율을 혁신하고, 이를 바탕으로 K-AI의 글로벌 진출과 아시아·태평양 AI 허브 도약을 추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내년에는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가시적인 성과 창출에 정책 역량을 집중한다는 목표다.
정부는 2027년까지 전 국민이 사용할 수 있는 국내 고유 AI 서비스, 이른바 ‘한국형 챗GPT’ 구축을 추진한다. 과기정통부는 국가대표 AI를 선발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1차 개발을 2026년 1월 완료해 상반기 중 오픈소스로 공개할 계획이다. 내년 6월까지 글로벌 톱10 수준 진입을 목표로 국방·제조·문화 등 분야별 특화 서비스와 AI 민생 프로젝트를 병행한다. AI 민생 10대 프로젝트는 내년 상반기 AI 국세 정보 상담사, 농산물 알뜰 소비 정보, 국가유산 해설사, AI 인허가 도우미 등 4개 과제부터 우선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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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고속도로·양자까지…‘AI 3강’ 향한 국가 연산 전략 총동원
산업 전반의 AI 전환(AX)도 본격화한다. 제조·조선·바이오 등 주요 산업에 특화한 파운데이션 모델을 개발하고, 데이터 튜닝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산업별 데이터 거래 활성화에 나선다. 이를 위해 과기정통부는 실질적인 데이터 유통을 목표로 한 ‘데이터 스페이스X’ 사업을 기획 중이다.
배 부총리는 “제조와 바이오 분야에서 AX 전환을 추진하려면 데이터 파인튜닝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가 필수적”이라며 “데이터 플랫폼 체계를 제대로 구축해 정부는 물론 기업에도 명확한 가이드를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국민 참여 확대를 위해 전국민 대상 AI 경진대회도 개최해 ‘대한민국 AI 챔피언’을 선발한다. 입상자에게는 상금과 함께 후속 연구개발, 사업화, 창업 지원을 연계할 방침이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한 로드맵도 제시됐다. 정부는 2030년까지 그래픽처리장치(GPU) 26만장을 확보해 이른바 ‘AI 고속도로’를 구축한다. 내년에는 정부 구매 1만5000장과 슈퍼컴퓨터 6호기 9000장 등 누적 3만7000장의 GPU를 우선 확보해 전략적으로 배분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는 100만 장 이상 GPU를 확보한 AI 허브로의 도약을 염두에 두고, 소형모듈원전(SMR) 등 전력 공급 방안도 종합적으로 검토해 추가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배 부총리는 “AI 고속도로 인프라 확보가 핵심”이라며 “2030년까지 GPU 26만장이 도입되더라도 AI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약 500㎿ 수준으로, 현행 전력 수급 전략으로 충분히 대응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GPU 중심의 고전력 연산 구조가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는 인식 아래, 국산 AI 반도체인 추론용 NPU와 양자컴퓨팅을 보완 축으로 삼아 차세대 연산 체계 구축에도 나선다. 국산 양자컴퓨터는 20큐비트에서 50큐비트로 단계적으로 고도화해 2028년 조기 개발을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배 부총리는 업무보고 브리핑에서 “미래 바이오 산업 육성을 위한 핵심 원천기술 확보와 인프라 구축을 강화하고, 국산 양자컴퓨터 개발과 양자 활용 기업 육성 등 양자경제를 선도하기 위한 투자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양자컴퓨터 개발 배경과 관련해 그는 “AI 발전 과정에서 GPU 기반 고전력 연산 방식이 계속 지속되기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며 “추론용 NPU 개발을 병행하고, 양자기술이 이를 보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양자컴퓨팅을 포함한 양자 전반의 기술 확보를 위한 종합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내년 상반기 기획을 진행해 20큐비트 양자컴퓨터를 출발점으로 50큐비트까지 단계적으로 고도화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며 “연구기관 중심을 넘어 기업이 참여하는 풀스택 방식의 양자컴퓨팅 생태계 조성도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추론용 NPU와 양자기술을 AI 연산 구조의 대안이자 보완 수단으로 병행 육성해, 중장기적으로 국가 연산 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AI로 노벨급 성과·국가전략기술 동시 겨냥… 정부, ‘K-문샷’ 본격 시동”
AI를 활용해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질적 수준과 효율도 끌어올린다. 과기정통부는 2030년 노벨상급 성과 창출을 목표로 바이오, 지구과학, 수학, 재료·화학, 반도체·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등 6대 분야의 과학적 발견을 가속하는 AI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에 나선다. 아울러 연구 기획부터 수행·분석까지 전 주기에 걸쳐 AI와 협력하는 ‘AI 연구동료(AI Co-Scientist)’ 개발도 본격 추진한다.
이와 함께 신약 개발, 휴머노이드 로봇, 희토류 저감, 청정에너지, 차세대 반도체 등 5대 국가전략기술 분야의 핵심 원천기술 확보를 위한 ‘K-문샷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미국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을 벤치마킹해 임무 중심 설계, 민관 협업,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결합한 방식으로 운영되며, 2030년까지 최고 기술 보유국인 미국 대비 기술 수준 85% 달성을 목표로 한다. 이를 위해 내년에 K-문샷 핵심 임무와 마일스톤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배경훈 부총리는 최근 미국이 모든 과학 분야를 AI로 혁신하겠다고 발표한 ‘제네시스 미션’을 언급하며, 이를 K-문샷과 연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그는 “AI 연구동료 개발을 비롯해 바이오, 휴머노이드, 희토류 저감 기술 등에 AI를 적용하기 위해 미국의 제네시스 미션에 준하는 K-문샷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며 “인간의 수준을 넘어 전문성이 결합된 초인공지능(ASI)으로 나아가 국가 경쟁력과 과학기술 경쟁력을 함께 끌어올리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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