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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자산 버블·중국 둔화…겹쳐지는 구조적 리스크
현대경제연구원이 14일 발표한 경제주평 보고서에 따르면 1960년 이후 한국의 연간 경제성장률이 1% 미만으로 떨어진 해는 1980년 오일 쇼크(-1.5%), 1998년 외환위기(-4.9%),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2020년 코로나 팬데믹(-0.7%) 등 네 차례다.
주원 현경연 연구본부장은 “이러한 충격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직접적인 타격을 줬다”며 “이 같은 위기 이후 국내총생산(GDP) 손실을 회복하는 데 수년이 소요되고, 그 과정에서 잠재성장률이 구조적으로 낮아지는 현상이 반복돼 왔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충격의 배경으로 글로벌 경제가 중장기 저성장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을 가장 먼저 지목했다. 세계 경제성장률은 2022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고, 금융·재정위기 이전 연평균 4.2%에 달하던 성장률은 코로나 이전 3.5%로 낮아진 데 이어 향후 3.2% 수준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서는 이를 단순한 경기 둔화가 아니라 산업 전환기에 수반되는 구조적 변화로 해석했다. 기존 주력 산업의 성장력이 약화되고 신산업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국면에서 글로벌 경제 전반의 성장 동력이 동시에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저성장 환경은 자산시장 불안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서는 경고했다. 실물경제의 회복 속도와 달리, 풍부한 글로벌 유동성과 인공지능(AI)에 대한 낙관론이 자산시장으로 몰리면서 주식시장을 중심으로 고평가 논란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시장의 규모를 실물경제와 비교하는 버핏지수는 이미 200%를 넘어섰고, 미국 S&P500의 주가수익비율(PER) 역시 30배를 상회하고 있다. 보고서는 실물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조정이 발생할 경우,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급격히 확대되며 글로벌 신용 경색으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경제의 구조적 둔화는 또 다른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은 부동산 침체와 디플레이션 조짐 속에서 통화·재정 정책의 효과가 제한되는 유동성 함정에 직면해 있고, 미·중 갈등 심화로 성장 경로 자체가 제약받는 상황이다. 장기적으로는 생산요소 고갈과 구조 개혁 지연에 따른 중진국 함정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고서는 중국 경제가 중장기 저성장 국면에 고착될 경우, 대중국 수출 의존도가 GDP의 9.7%에 달하는 한국 경제가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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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불안과 또 다른 팬데믹
여기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재정 불안도 위험 요인으로 손꼽혔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급증한 정부 부채는 위기 이후에도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 정부부채 비율이 2025년 95%, 2030년에는 100%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성장 속에서 재정 지출 확대가 이어질 경우, 과거 유럽 재정위기와 달리 특정 국가가 아닌 글로벌 차원의 재정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주요국이 동시에 긴축에 나설 경우 글로벌 경기 침체가 한층 심화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보고서는 또 다른 팬데믹 위험, 이른바 ‘질병(Disease) X’를 배제할 수 없는 변수로 제시했다. 코로나 이후에도 고위험 전염병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글로벌 이동성 확대는 전염병 확산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고 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고전염성 질병이 출현할 경우, 글로벌 공급망 붕괴와 교역 위축이 동시에 발생해 교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경고다.
주 본부장은 “그레이 스완은 예측이 아니라 대비의 대상”이라며 “위기 발생 이후 해법을 찾기보다, 지금 단계에서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 개혁과 신성장 동력 확보, 금융 시스템 안정, 중국 리스크의 균형적 관리, 재정 지속가능성 제고, 팬데믹 대응 체계 정비가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며 “선제적 대응 여부가 향후 한국 경제의 회복력과 성장 경로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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