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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서구권의 크리스마스 문화였던 어드벤트 캘린더가 한국 유통가의 핵심 굿즈로 자리 잡았다. 뷰티, 패션, 식품업계 할 것 없이 앞다퉈 한정판을 내놓는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명품 뷰티 브랜드의 캘린더는 50만~80만원을 호가하고, 비교적 저렴한 초콜릿이나 장난감 브랜드도 수만 원을 훌쩍 넘는다. 구성품의 실제 가격을 합산해보면 “포장값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하지만, 인기 제품은 11월에 이미 ‘완판’된다. 소비자들이 지갑을 여는 대상이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방증이다.
왜 굳이 비싼 돈을 주고 이 어드벤트 캘린더를 살까. 전문가들은 이를 ‘도파민 정기구독’ 심리로 해석한다. 한 번에 뜯어서 가지면 그만일 물건들을 굳이 24개로 쪼개어 놓은 것은, 기쁨을 24일간 유예하고 분산시키는 행위다.
춥고 팍팍한 연말, 매일 아침 눈을 떴을 때 나를 반겨주는 작은 이벤트를 돈으로 사는 셈이다. 상자 속 내용물보다, “오늘은 뭐가 나올까?” 하는 기대감이 이 소비의 본질이다. 즉, 우리는 50만원짜리 화장품 세트를 산 게 아니라, 24일간의 확실한 행복을 결제한 것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전형적인 불황형 소비인 ‘립스틱 효과’의 진화 버전이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내 집 마련이나 자동차 교체 같은 빅 럭셔리는 포기했지만, 수십만 원짜리 캘린더로 명품 브랜드의 경험을 소유하려는 심리다. 남이 사주길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셀프 산타가 돼 1년 동안 고생한 나에게 보상을 주는 의식이기도 하다.
오늘도 누군가는 13번째 칸을 뜯으며 환호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안에 든 것이 자그마한 샘플 향수일지라도, 그 순간만큼은 팍팍한 현실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마법이 되기 때문이다. 24번의 도파민, 어쩌면 꽤 남는 장사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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