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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정민 경제전문기자]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하명(下命)’이 정책의 시작이었다. 대통령이 지시를 내리면 행정조직과 기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설립 등이 대표적이다.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지적, 국가 재정으로 감당하기 어렵다는 우려에도 대통령의 결단으로 정책을 강행했고 ‘한강의 기적’을 낳는 토대가 됐다.
대통령의 지시가 정책이 되는 ‘하명정책’은 힘이 있다. 동시에 한계도 명확하다.
박정희 시절 인권, 노동권, 환경 보호 등 대통령 관심 밖 의제들은 방치되고 때로는 걸림돌 취급마저 받았다. 결국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치뤄야 하는 숙제로 남았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서 비슷한 장면이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말은 분명하고 속도도 빠르다.
산업재해를 언급하면 전 부처가 일제히 점검에 나서고, 비정규직 임금이나 퇴직금 문제를 지적하면 곧바로 실태조사와 시정 조치가 이어진다. 기업 정보보호에 대한 무관심을 꼬집으면 사이버 보안 대책과 제재 강화 방안이 즉각 뒤따른다.
물론 시대와 맥락은 다르다. 박정희의 하명은 군사정권이라는 권위주의 체제에 기댔고, 이재명의 하명은 민주적 정당성을 갖춘 선출 권력, 더 나아가 의회 다수라는 정치적 동력을 기반으로 한다.
심지어 방향은 반대다. 한쪽은 기업 중심의 개발과 성장이었고, 다른 한쪽은 노동자 중심의 불평등 해소와 노동 존중이다.
그러나 정책이 작동하는 방식, 즉 대통령 1인의 문제 인식과 발언이 곧바로 국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구조는 놀랄 만큼 닮아 있다.
정부 정책을 둘러싼 논란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 예방보다 처벌, 개선보다 경고가 앞선다. “기업이 망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앞세운 과징금 폭탄,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는 사고를 막기 위한 구조를 차근차근 쌓기보다, 사후 책임을 엄하게 물음으로서 행동을 통제하려는 방식이다.
대통령 발언 이후 대응이 문제다.
행정조직은 대통령 발언의 취지와 방향을 충분히 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정책을 설계하기보다, 지시를 얼마나 빠르게 이행했는지를 성과로 증명하는 데 매달린다. 정책은 토론과 숙고의 대상이 아니라 ‘속도 경쟁’의 과제가 된다.
기업 역시 대통령 발언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건너뛰고 ‘대통령이 원하는 반응’을 얼마나 신속히 내놓을 지를 고민한다.
“반복되는 산재 사망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이 대통령 발언 이후 포스코가 산업재해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고 현대차그룹 역시 안전 투자 확대와 현장 점검 강화 방침을 발표했다. 협력사 직원에게도 정규직과 동일한 성과급을 지급하기로 한 한화 사례를 이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장면은 상징적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정 이후 이 대통령이 국내 투자 공동화 우려를 제기하자 주요 기업들이 잇따라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도 같은 흐름이다.
이 과정에서 기업에 축적되는 것은 새로운 원칙과 기준이 아닌 당장의 위기를 넘기는 대응 경험이다.
정보보호와 사이버 보안 정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대통령이 기업의 정보보호 인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자, 과기정통부는 곧바로 제재 강화와 처벌 중심의 대책을 내놨다. 기업이 정보보호를 경영의 기본 원칙으로 스스로 내재화하도록 만드는 고민보다, 얼마나 강한 경고와 제재를 얼마나 빨리 내놓을지가 정책의 중심에 놓인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의는 분명하다. 국민의,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기득권이 저항할 틈 없이 개혁을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이런 방식의 정책 운영은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다.
대통령의 권위가 살아 있을 때는 모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만, 권위가 사라지면 기준도 흐려진다. 두려움은, 공포는 당장의 행동을 바꿀 수는 있어도, 일하는 방식과 생각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조선시대 신하들은 왕 앞에서 “성은(聖恩)이 망극(罔極)하옵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명을 받드는 충성의 언어였지만, 동시에 개인의 판단은 내려놓겠다는 승복 선언이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 앞에서 토론과 숙고, 판단보다 이행이 먼저 나오는 구조라면, 모습만 달라졌을 뿐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박정희 시대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하명정책은 빠른 성과를 만들 수는 있지만, 지속 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민주적 정당성과 인권과 노동권 보호라는 명분을 가진 지금, 정책은 더욱 한 사람의 의지가 아니라 제도에 기대야 한다. 대통령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정책, 그것이 ‘성은이 망극한’ 정치를 넘어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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