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집 낸 정호승 "모두의 마음 속 동심이 시의 출발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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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집 낸 정호승 "모두의 마음 속 동심이 시의 출발점이죠"

연합뉴스 2025-12-14 08:30:0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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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동시집 '별똥별' 15년 만에 출간…반세기 넘게 써 내려간 71편 모아

"동시는 눈물 닦아주는 엄마 손수건…자기 어린아이 마음 들여다보길"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최근 동시집 '별똥별'을 펴낸 정호승 시인이 지난 10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14 mon@yna.co.kr

(서울=연합뉴스) 김기훈 기자 = "모든 인간의 마음속에는 동심이 있어요. 그게 시(詩)의 출발점이죠."

백발이 성성한 시인은 자신의 마음속 숨어있던 어린이를 불러내 마주했다.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사옥에서 만난 정호승(75) 시인은 좋은 시를 쓰는 비결로 '어린아이의 마음'을 꼽았다.

한국 서정시의 거장으로 불리는 그는 최근 동시집 '별똥별'(창비)을 펴냈다. 2010년 첫 동시집 '참새'를 펴낸 지 무려 15년 만이다.

그의 문학적 출발점은 동시였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동시로 당선되며 작가로서 첫걸음을 뗐다. 이듬해에는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당선됐다.

이후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사랑하다 죽어버려라', '별들은 따뜻하다' 등 시집을 펴내며 시문학사에 자신만의 확고한 자리를 만들었다.

주로 한국 사회의 그늘진 면과 소외된 이들을 소재로 따스함을 주는 시문을 지어냈다.

그런 그가 종심(從心·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동시'라는 초심으로 돌아간 사연을 물었다.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최근 동시집 '별똥별'을 펴낸 정호승 시인이 지난 10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14 mon@yna.co.kr

"굳이 시와 동시를 나눈다면, 등단 후 시에 몰두하다 보니 동시와 멀어지게 됐어요. 그러다 짬짬이 동시의 마음이 저에게 올 때마다 메모해 놓은 것들을 묶어 내게 됐죠."

새 시집에는 반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차곡차곡 써놓은 71편의 동시가 담겼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어요.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어린아이의 마음이 없다면 시의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이죠."

시인은 이어 "동심이란 자연과 사물과 대화하는 하나의 과정"이라며 "내 마음만 노래하지 않고, 다른 이의 마음도 노래하는 것이 동시"라고 설명했다.

꽃과 나무와 새, 별과 바다. 개와 코끼리, 개미, 모기, 붕어빵과 짜장면. 자연과 사물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노래하는 것이 동시란 것이다.

"내가 별을 바라보면/ 별도 나를 바라본다// 내가 울다가 별을 바라보아도// 별도 울다가 나를 바라본다// 고맙다"('별' 전문)

그는 또 시에서 작고 힘없고, 느려서 천천히 가고, 낮아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허투루 보지 않는다. 대신 그 마음을 가만히 헤아려본다.

"힘이 없어서 고개가 꼬부라진 게 아니야// 고개를 숙이고 생각하는 거야//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처럼// 나는 생각하는 할미꽃이야"('할미꽃' 전문)

시인은 "동시는 연약하고 보잘것없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존재들에 대한 사랑"이라며 "어린아이의 눈물을 닦아주는 엄마의 손수건과 같은 게 동시"라고 강조했다.

그런 시인이 쓴 동시는 때로 어른의 콧잔등마저 시큰거리게 한다.

"겨울이다/ 눈이 내린다/ 할머니가 김장을 하고/ 김장독을 땅에 묻은 것처럼/ 언 땅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묻었다/ 좀처럼/ 진눈깨비가 그치지 않는다"('진눈깨비' 전문)

그의 시어는 진눈깨비처럼 맑고 아름답게 우리 마음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하지만 진눈깨비가 앉은 자리에는 차가움이 아닌 따스함이 번진다. 슬픔이 슬픔에 머물지 않고 단단한 성찰로 바뀐다. 시를 읽는 어린이의 마음에도 다른 존재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마음결이 자리 잡는다.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새 시집 펴낸 정호승 시인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최근 동시집 '별똥별'을 펴낸 정호승 시인이 지난 10일 연합뉴스 사옥에서 진행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5.12.14 mon@yna.co.kr

시인은 2026년 1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이 결정된 월간 '샘터'에 얽힌 추억도 떠올렸다.

1950년 하동에서 태어난 그는 경희대 국문과를 졸업한 뒤 고교 교사, 잡지사 기자로 일했다. 마흔 살에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가 됐다.

그가 '샘터' 편집부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장 가까웠던 이가 주간이었던 아동문학가 정채봉이었다.

"정 작가는 저를 '족보에 없는 동생'이라고 부르며 아끼고 사랑해줬다"며 시인은 2001년 세상을 떠난 그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어 "정 작가가 지녔던 동심을 제 마음에 옮겨 심어 계속 꽃 피워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며 "여든이 되기 전에 시집뿐 아니라 동시집, 동화집, 그림책 작업도 해보고 싶다"고 열의를 보였다.

인터뷰 내내 시인의 얼굴에는 아이처럼 맑고 환한 빛이 돌았다.

그는 동심의 회복을 강조했다.

"어린아이의 마음이 없으면 인간으로서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많은 분이 자신의 마음속 숨어있는 어린아이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kih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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