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 원대 '비전 거품', 실체 없는 혁신의 파국
2025년 글로벌 자본 시장은 비전과 카리스마만으로 투자자를 현혹했던 시대의 종말을 선언했다. 한때 '제2의 일론 머스크'로 불리며 수소·전기 트럭 혁명의 선봉에 섰던 니콜라(Nikola)의 창업자 트레버 밀턴(Trevor Milton·40)의 서사가 바로 그 비극적인 증거다. 2025년 2월, 니콜라는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하며 사실상 기업 가치가 소멸했다.
밀턴의 몰락은 개인적인 부정행위를 넘어, 2025년의 저성장·고금리 환경에서 '기술적 실체 없는 하이프(Hype) 현상'이 어떻게 시장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지 보여주는 구조적 실패의 교본이었다.
니콜라 창업자 트레버 밀턴의 성공은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혁신가적 면모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는 완성된 제품 없이도 기술 로드맵과 미래 전망만으로 막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는 스타트업의 속성을 극대화했다. 많은 이들은 밀턴을 엘론 머스크의 매력과 비전에 필적하는 혁신가로 여겼다.
니콜라는 2020년 나스닥 상장 후 정점을 찍었다. 주가는 2020년 6월 9일 최고 2,392달러(당시 기준)를 기록했으며, 시가총액은 약 300억 달러(약 40조 5,000억 원)에 육박했다. 이는 니콜라가 당장 시장에 내놓은 제품이 전무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밀턴이 제시한 '수소 트럭 혁명'이라는 비전에 시장 전체가 베팅했음을 의미했다.
밀턴은 투자 자료에서 잠재 고객의 '주문'을 '확정된 미래 매출'인 것처럼 제시해 시장의 기대 심리를 부풀렸다. 그는 종종 기술적 근거가 모호한 발언으로 비전문가들을 현혹했는데 “전체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HTML 5 슈퍼 컴퓨터”라고 말하며 복잡한 기술 용어를 혼용해 판단을 흐리게 했다. 밀턴의 비전은 스타트업을 움직이는 동력이었으나, 이는 동시에 검증되지 않은 기술적 허점을 가리는 연막 역할을 했던 것이다. 밀턴은 이후에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 “나는 아무도 속이지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시장은 점차 그의 말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한화의 '친환경 비전'과 배신: 김동관의 뼈아픈 교훈
트레버 밀턴이 쌓아 올린 비전 거품의 희생양 중에는 한국의 대기업 한화그룹도 있었다. 당시 김승연(73)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42) 부회장이 니콜라를 발굴하고 대규모 지분 투자에 깊이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8년 한화에너지와 한화임팩트(당시 한화종합화학)는 각각 5,000만 달러씩 총 1억 달러(약 1,350억 원)를 니콜라에 투자해 지분 6.1%(2,213만 주)를 취득했다. 한화가 차 한 대 팔지 않은 니콜라에 투자한 이유는 명확했다. 바로 '친환경 에너지 선순환 구조' 구축이었다. 한화는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를 니콜라에 공급하고, 니콜라가 그 전기로 수소를 생산해 충전소에 공급하는 100% 친환경적인 생태계를 구상했다.
당시 김동관 부회장은 니콜라의 창업자 밀턴을 직접 만나는 등 투자를 진두지휘했고 “수소는 탁월한 '에너지 캐리어(운송 수단)'다. 니콜라와의 사업 협력으로 큰 시너지가 날 것이다”라고 말하며 사업 확장에 대한 강한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2020년 9월 힌덴버그 리서치는 니콜라 모터스를 대상으로 폭로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니콜라가 "수십 가지 거짓말로 복잡한 사기"를 저질렀다고 지적하며, 특히 홍보 영상에서 수소전기 트럭이 실제 주행하는 듯 보이게 한 장면이 내리막길에서 미리 준비된 트럭을 굴린 가짜였다고 폭로했다. 창업자 트레버 밀턴이 기술 미완성 상태에도 투자자를 속여 자금을 유치했다고 주장한 것이다.
니콜라 주가는 폭락했고, 이 사기 의혹은 니콜라와 사업적으로 엮여 있던 한화그룹의 투자 심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화는 당초 2020년 11월에 보유 지분의 보호예수 기간이 만료될 예정이었으나, 시장 안정화를 위해 이를 연장하기도 했다.
한화는 결국 2021년부터 보유 지분의 절반가량을 매도했으며, 2023년 5월 말에는 잔여 주식 전체 매도를 완료했다. 한화가 투자 원금 1억 달러 대비 약 1억 4,000만 달러(약 1,890억 원)를 회수한 것으로 추정되면서 단순 투자 손실은 면한 것으로 보였으나, 5년이라는 시간과 기회비용,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본전치기' 수준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니콜라 사태는 한화그룹의 핵심 미래 전략 중 하나였던 '수소 사업 확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고, 김동관 부회장에게는 비전만 믿고 '기술적 실체'를 검증하지 않은 투자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르게 하는지 보여주는 뼈아픈 교훈이 됐다.
2025년의 냉혹한 종말: 구조적 역풍 속에서의 몰락
트레버 밀턴의 거짓말과 그 여파는 2025년의 구조적 역풍 속에서 니콜라의 최종 몰락으로 이어졌다. 2025년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고금리 환경을 지속하자, 시장은 재무 건전성 없는 기업에 대한 관용을 완전히 거뒀다.
2024년 말 니콜라는 수소연료전지트럭(FCEV) 판매량이 기록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막대한 손실과 현금 소진이라는 심각한 재무적 어려움이 지속됨을 발표했다. 자본 조달 비용이 높은 환경에서, 이 같은 취약한 재무 구조는 곧 기업 생존의 위협이 됐다.
결국 니콜라는 2025년 2월 19일 미국의 챕터 11 파산 보호를 신청했고, 이는 회생이 아닌 자산 매각 및 청산 절차의 시작이었다. 니콜라 주식은 나스닥에서 상장 폐지되어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었고, 2025년 9월 19일 종가는 0.0141달러(약 19원)에 불과했다. 시가총액은 약 119만 달러(약 16억 원)로, 한때 40조 원에 달했던 기업 가치는 사실상 소멸했다.수소 트럭, 배터리 기술 등 핵심 자산 대부분이 경매를 통해 매각되었다. 또한 2025년 9월에는 8,300만 달러(약 1,120억 원) 규모의 SEC 벌금 합의가 공지되며 이는 회사의 법적 리스크를 정리하고 청산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한 최종 단계임을 시사했다.
트레버 밀턴의 몰락은 '기술적 해자'가 부재한 기업이 어떻게 2025년의 구조적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교훈이 됐다. 시장은 이제 '비전'보다 '실체'를 요구했으며, 이는 곧 미래 억만장자들이 검증된 딥테크와 재무적 건전성을 무기로 부를 쌓는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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