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타: 불과 재']에 담긴 에이와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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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불과 재']에 담긴 에이와의 길

프레시안 2025-12-14 02:07:25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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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타> 1편(2009)이 등장했을 때 모든 이들은 과연 영화의 기술이 어디까지 가 닿을 것인지 기대와 우려,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지구를 얼핏 닮은 외계 혹성에서 원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아바타로 정신을 옮겨 심는다는 설정도 한몫 했지만, 커다란 스크린 위에 3D 입체 이미지로 신세계를 목도하는 순간은 가히 뤼미에르 형제의 <열차의 도착>(1985)이 주는 충격과 비견되었다. <아바타>의 이미지 쇼크는 분명 영화의 미래를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 앞당겼다. 그래서 모두는 <아바타>의 신화적 서사보다 그 이미지의 충격에 대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이후 2010년 '아바타'의 후속편이 제작될 것임을 공식 발표한 이후, 영화 팬들은 이후 작품들이 어떤 새로운 이미지 충격으로 관객을 이끌 것인지 기대감을 감추지 않았다. 감독이 제임스 카메론이란 사실도 기대감을 증폭시키는데 한몫 했다. <터미네이터>(1984), <에일리언 2>(1986), <어비스>(1989), <터미네이터 2>(1991)로 이어지는 그의 필모에서 컴퓨터 그래픽과 특수효과는 단순한 볼거리를 넘어선 새로운 세계를 열어 젖히는 영화 미학의 궁극적 목표였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가장 하찮게 여기던 스팩터클이 제임스 카메론에겐 서사보다 더 중요한 영화적 요소였던 셈이다. 영화의 시작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부터 시작했음을 상기시켜 본다면 제임스 카메론이 열어젖히는 최첨단 기술로 무장한 신세계 이미지야 말로 영화적 본질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발표된 <아바타: 물의 길>(2022, 이하 <물의 길>)에 대한 대중의 평가는 극단적으로 갈렸다. 문제의 핵심은 서사였다. 1천만 관객이라는 흥행 신화에도 불구하고 서사적 빈약함이 도마 위에 올라 많은 이들에게 비판적 평가를 받았다. <아바타> 1편은 철저히 남성 영웅 서사를 발판 삼아 제이크 설리(샘 워싱턴)가 토루크 막토로 등극하는 과정을 펼쳐낸다. 남성 영웅 서사는 모든 모험 서사의 근간을 이루는 서사 원형이기에 관습적으로 익숙하게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화려한 그래픽 이미지를 수용하는데 가장 적절한 서사적 배려였다. 하지만 <아바타: 물의 길>은 이미 시선이 높아진 관객의 눈 앞에 더 이상 새로운 신세계 이미지가 아니었다. HFR(High Frame Rate), HDR(High Dynamic Range)라는 특수 기술을 삽입하고, 아름다운 바다의 풍경을 한없이 펼쳐낸다 하더라도 관객은 이제 더 이상 새로운 테크놀로지에만 열광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이상을 바랐다.

▲불을 신성시 하는 망콴족의 제의. ⓒ월트디즈니컴퍼니

<아바타: 불과 재>(2025, 이하 <불과 재>)는 그 숙제를 떠안고 있다. 이후 시리즈를 5편까지 발표하겠다는 원대한 계획 속에서 <물의 길>과 <불과 재>는 거대한 신화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작은 부속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바타>는 OTT 플랫폼에서 볼법한 '시리즈물'이 아니다. 각 개별 작품은 그 자체로 생명력을 지닌 '영화'여야 하며 그 생명력이 연결되었을 때에야 비로서 감독이 바라는 거대 서사는 완성될 수 있다. <불과 재>는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을 지녀야 하고 이는 관객들에게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되어야 한다. 문제는 과연 전 편의 서사에 대한 빈약함을 극복하고 <불과 재>가 눈 높아진 관객들을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

이를 위해서 제임스 카메론은 <불과 재>에서 '에이와'라는 비장의 무기를 펼쳐낸다. 에이와는 별의 모든 대지를 관장하는 여신으로서 단순한 신화적 상상력 안에만 존재하는 신이 아니다. 그녀는 직접 별에 사는 모든 생명과 기억을 연결하는 존재로 의식과 기억을 축적하는 살아있는 네트워크다. 에이와는 곧 판도라 행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행성 전체를 관장하는 지성이며 동시에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기억의 리좀(rhizome)이다. 제임스 러브록이 주장한 '가이아 이론'(1979)처럼 에이와는 판도라에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과 환경을 정화시키고 연결시키는 상호작용의 총체다. 판도라의 모든 생명들은 그녀를 '어머니'라 호칭하며 여성화 하지만 에이와는 그 어떤 성별로도 형상화 할 수 없는, 자기조절 능력을 갖춘 하나의 시스템이다. 그런 존재를 서사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은 에이와의 모든 가능성을 하나의 캐릭터 기능으로 국한시켜 버리는 한계를 낳는다.

카메론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추가 4편의 시리즈를 기획한 것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그 누구보다 바다를 좋아하고 심해를 열심히 탐구했던 그였다. 그에게 지구는 경이로움을 넘어선 하나의 유기체이며 신화적 상상력과 과학적 엄정함을 통해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었을테다. 지구를 탐구하는 것이 자원을 착취하기 위함이 아닌 가이아와 만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처럼, 그가 만든 <아바타> 시리즈는 대중에게 자신이 경험한 대자연의 위대함을 직접 경험시킨다. 그에게 고도화된 테크놀로지 이미지의 목표는 바로 여기를 향한다.

<물의 길>에서 우린 설리 가족이 바다에 사는 멧케이나 부족에 섞이기 위해 물과 익숙해지는 과정을 긴 시간 목도해야 했다. 어떤 사건도 벌어지지 않는, 인물들이 바다에 적응하는 과정의 긴 시간을 누군가는 '서사 없음'으로 폄하하며 테크놀로지의 과시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서사는 갈등의 충돌로 연결되기에 갈등 없는 스팩터클 앞에서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끼는 것이 한편으로 이해된다. 만약 그렇다면 우린 잠시 서사를 정지 시키면서까지 감독이 관객들에게 경험케 하려 했던 이미지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의 길>은 설리 가족이 물에 적응하듯 판도라 행성의 대자연에 지구의 관객들을 적응시킨다. 이것은 <물의 길>의 중요한 목표이기도 했다. 극 후반부에 벌어지는 전투 장면은 <불과 재>로 가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2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물의 길>은 판도라 행성의 자연 속에서 경이로움을 직접 체험 시키는데 주력한다. 그리고 물의 길이 어떤 길인지 관객들에게 인식 시킨다. 물의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 바다는 우리 주위에, 내 안에 존재한다. 바다는 우리의 집이기도 하며 내가 태어나기 전에도,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 로아크(브리튼 돌턴)가 물에 잠기는 배 안에서 제이크에게 전한 이 말들은 곧바로 에이와를 떠올리게 한다. 에이와가 바다를 관장하고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곧 에이와이며, 에이와가 곧 바다인 것이다.

<불과 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불의 길은 증오를, 재의 길은 슬픔임을 제시한다. 불은 모든 것을 소멸 시키는 증오의 화염이다. 그 결과 남은 잿더미 속에서 모든 존재들은 소멸된 것, 희생된 존재들을 기리며 슬픔에 잠긴다. 하지만 슬픔은 또 다른 증오를 낳고, 그 불의 길이 또 다시 재의 길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이를 끊어내고 중단 시킬 수 있는 힘은 오직 물의 길에 있다. 물의 길을 처음 알려준 멧케이나 부족은 길을 way로 설명한다. 반면 제이크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강조하며 자신이 가야 할 길을 pass로 언급한다. 옥스퍼드 사전은 way를 방향성이자 과정으로서의 방법론을 의미하는 길로 정의한다. pass는 이와 달리 좁은 통로를 경유하고 통과하는 이미지로서 시간의 흐름에 중점을 둔 길로서 정의한다.

▲로아크와 대립하는 제이크. ⓒ월트디즈니컴퍼니

제이크에게 길은 가부장의 길이며 전사(특히 해병대)의 길, 다스리고 지배하기 위한 길이다. 그가 성장하고 교육받은 지구인들이 구체적인 목표를 갖고 판도라 행성을 지배하려는 것처럼 제이크의 길은 목표지향적 욕망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반면 에이와를 섬기는 나비족에게 길은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수많은 경험들이다. 나비족의 길은 구체적인 목표가 없다. 판도라의 대자연을 누리고 경험하며 마주하는 다양한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길을 완성할 뿐이다. 호흡 속에 존재하는 길의 형상을 제이크는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쿼리치 대령(스티븐 랭)의 아들 스파이더(잭 챔피온)을 죽이려 할 때에야 비로소 이 길(way) 뿐이라 말하지만 그 순간까지도 그는 에이와를 향한 길이 모든 것이 결정된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것이 결정된 인과율의 세계, 이성과 합리성이 지배하는 자본의 세계 속에서 길은 오직 정해져 있고 한방향만을 향할 뿐이다.

길을 운명으로 받아들인 자들은 오직 제이크만은 아니다. 평화를 존중하는 판도라 행성의 모든 생명들 또한 폭력을 피하는 것이 에이와를 향한 길이라 믿으며 이를 운명처럼 받아들인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그들의 믿음은 정당하다.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 폭력도 수단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나를 지키기 위해 외부의 폭력을 막으려는 행동이 결국 폭력이란 이름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면, 그 폭력은 '정당방위'라는 이름으로 용인될 수 있다. 이는 에이와가 수행하는 폭력이기도 하다. 에이와는 키리를 통해 위기에 빠진 나비족들을 지구인들로부터 구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이와의 폭력은 정당화된다. 오히려 그녀를 통해 나비족은 스스로를 구원한다. 나비족을 공격하고 판도라를 착취하는 지구인들의 탐욕이야 말로 '아바타' 시리즈가 강조하는 적대자의 욕망이다.

▲쿼리치를 맞이하기 위해 텐트에서 나오는 바랑. ⓒ월트디즈니컴퍼니

하지만 방위 목적의 폭력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논란의 여지는 남는다. 법이 이를 온전히 지키고 보호해주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이다. 화산 폭발로 부족을 잃은 망콴족의 바랑(우나 채플린)이 에이와를 향해 분노하고 증오심 속에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이러한 주장의 뒷받침 속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내가 나를 지키겠다는 결심이 타인을 향한 또 다른 폭력으로 행사된다 하더라도 나를 지킬 수 있다면 정당할 수 있다는 논리. 이는 제이크의 논리이며, 지구인의 논리이며 자본의 논리이기도 하다. 분명 법(에이와)은 모두를 지켜주지 않는다. 법은 형식적이기에 해석의 여지 사이에서 개입되는 권력의 힘 앞에 소수자들은 손 쉽게 배제되고 억압당한다. 법은 죄가 없다. 법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자들의 욕망에 죄가 있을 뿐이다. 에이와(법)가 망콴족을 지켜주지 않았던 것은 그녀의 탓이 아니다. 자연의 재난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이 분명 쉽진 않지만, 그 무력함 속에서 또 다른 상처를 받고 이를 감당하는 것이 절대 간단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자연을 인간의 의지로 지배하려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에이와를 향한 길은 이 모든 것을 포함한다. 그리고 그 길은 단 하나의 형식으로 환원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멧케이나가 말하는 way이면서 동시에 제이크가 이해한 pass이기도 하다. 세계와 호흡하며 관계 속에서 열리는 길로서의 way는, 선택과 경험, 유동과 순환의 시간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 길은 또한 상실과 재난, 폭력과 슬픔을 통과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pass이기도 하다. 에이와를 향한다는 것은 세계와 조응하며 길을 만들어 가는 동시에,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운명의 협곡을 지나가는 일이기도 하다. 카메론은 <불과 재>에서 이 두 개의 길을 대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에이와를 향한 여정이란 언제나 way와 pass가 겹쳐지는 지점에서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길은 선택이면서 동시에 통과이며, 과정이면서 운명이다. 물은 흘러가지만 반드시 협곡을 지나야 하고, 불은 모든 것을 태우지만 끝내 재가 되어 순환 속으로 되돌아간다. 에이와는 이 모든 길의 끝에 있는 목적지가 아니라, 이 모든 길이 겹쳐지고 반복되며 이어지는 과정 그 자체다. <불과 재>가 묻는 질문은 분명해진다. 우리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아니면 길을 통과하고 있는가. 그리고 어쩌면 에이와를 향한 길이란, 그 두 질문을 더 이상 나누지 않는 자리에서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바타: 불과 재> 메인 포스터. ⓒ월트디즈니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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