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희망, 붙잡고 있는 이것은 독인가, 약인가

당신이 붙잡고 있는 재회 희망 그것은 독인가, 약인가

새벽 2시, 당신은 깨어 있다. 스마트폰의 차가운 빛만이 얼굴을 비춘다. 익숙한 패턴으로 화면을 잠금 해제하고, 무의식적으로 카카오톡을 켠다.

차단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거나, 프로필 뮤직이 바뀐 것을 보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그 슬픈 발라드 가사가 혹시 나를 향한 메시지는 아닐까. 배경 사진 속 낯선 카페가 혹시 새로운 여자가 생긴 증거는 아닐까.

당신은 방구석의 탐정이 되어 단서를 수집한다. 그리고 그 빈약한 조각들을 엮어 ‘희망’이라는 이름의 동아줄을 만든다.

우리는 흔히 “희망은 좋은 것”이라고 배운다. 하지만 이별 앞에서 희망은 구원이 아니라 형벌이다. 한국말에는 ‘희망고문’이라는 아주 적절한 표현이 있다.

안 될 것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포기하지 못하게 만들어, 사람을 서서히 말려 죽이는 고통. 당신이 지금 붙잡고 있는 그 희망은 그가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아니다. 뇌가 만들어낸 정교한 환각이자, 혼자가 되는 두려움을 피하기 위한 비겁한 도피처다.

이 글은 당신이 그토록 소중하게 품고 있는 그 희망이, 사실은 당신을 서서히 망가뜨리고 있는 독극물임을 증명하는 부검 보고서다.

읽지 않은 ‘1’과 도박꾼의 뇌

왜 우리는 명확한 거절보다 애매한 침묵에 더 매달리는가. 차라리 “다신 연락하지 마”라고 욕이라도 해주길 바라면서도, 채팅창의 숫자 ‘1’이 사라지기만을 기다린다. 이 지독한 기다림의 기제는 강원랜드 슬롯머신 앞에 앉은 도박꾼의 심리와 소름 끼치도록 똑같다.

심리학자 스키너는 쥐 실험을 통해 잔인한 진실을 밝혀냈다. 레버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나오면 쥐는 배가 부르면 멈춘다. 하지만 먹이가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즉 보상이 불규칙하게 주어지는 상자에 든 쥐는 죽을 때까지 레버를 누른다. 이것이 바로 ‘간헐적 강화(Intermittent Reinforcement)’다.

당신의 연애가 그랬을 것이다. 그는 때로는 세상없이 다정했고, 때로는 남보다 더 차가웠다. 연락이 잘 되다가도 갑자기 잠수를 탔고, 사랑한다고 속삭이다가도 헤어지자고 했다. 이 예측 불가능성은 당신의 뇌를 도박꾼처럼 만들었다. 뇌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잭팟(재회)’을 기대하며 도파민을 미친 듯이 뿜어낸다.

이별 후 당신이 품는 희망은, 돈을 다 잃고도 “이번 판은 터질 거야”라고 믿으며 슬롯머신을 당기는 행위와 다르지 않다. 술김에 온 그의 부재중 전화 한 통, 프로필 뮤직의 의미심장한 변경. 이것들은 쥐에게 던져주는 불규칙한 먹이 펠릿과 같다. 그것은 사랑의 신호가 아니다. 당신을 그 관계라는 감옥에 가두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통제 수단일 뿐이다.

끝나지 않은 드라마의 시청자

우리는 완결된 드라마는 잊지만, 시즌 중간에 조기 종영된 드라마는 두고두고 기억한다. 인간의 뇌는 종결되지 않은 과제를 훨씬 더 잘 기억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이를 심리학에서는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고 부른다.

이별, 특히 납득할 수 없는 일방적인 이별은 거대한 ‘미완성 과제’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해?” “내가 그때 화내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닫히지 않은 팝업창이 수십 개 떠 있다. 뇌는 이 열린 결말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과거를 되감기 하고, 상대방의 마지막 말 한마디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며 어떻게든 납득할 만한 결말을 만들어내려 애쓴다.

재회에 대한 희망은 이 미완성 과제를 억지로라도 닫으려는 뇌의 필사적인 몸부림이다. 당신은 그 사람 자체가 그리운 것이 아니라, 중단된 이야기의 결말이 궁금한 것이다. 함께 가기로 했던 여름 휴가, 맞추기로 했던 커플링, 소소하게 나누었던 미래의 약속들. 이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들이 빚쟁이처럼 당신의 일상을 찾아와 문을 두드린다.

희망을 붙잡고 있는 한, 이 과제는 영원히 ‘처리 중’ 상태로 남는다. 뇌는 에너지를 그곳에 쏟아붓느라 정작 현실을 살아갈 힘을 잃는다. 밥을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고, 일을 해도 손에 잡히지 않는 멍한 상태. 당신의 시스템은 이미 과부하 상태다.

이 시스템을 종료하는 유일한 방법은 ‘강제 종료’ 뿐이다. 그 드라마는 조기 종영되었음을, 더 이상의 다음 화는 없음을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인정하는 것이다.

손안의 감옥, 디지털 염탐

과거의 이별은 단절이었다. 몸이 멀어지면 소식도 끊겼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이라는 작은 창을 통해 우리는 헤어진 연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 당신은 그가 누구와 술을 마시는지, 어떤 표정으로 밥을 먹는지, 심지어 새로 팔로우한 여자가 누구인지까지 알아낸다.

이것은 진화심리학적으로 ‘배우자 감시(Mate Guarding)’ 본능의 오작동이다. 내 파트너를 다른 경쟁자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본능이 관계가 끝난 후에도 꺼지지 않고 공회전하는 것이다.

SNS를 통해 전 연인의 일상을 훔쳐보는 행위는, 뇌에게 “그는 아직 내 시야에 있다, 고로 관계는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낸다. 이것은 희망을 연장시키는 가장 강력한 연료다. 당신이 그의 사진을 볼 때마다 뇌의 보상 중추가 활성화된다. 마치 마약 중독자가 약병만 봐도 뇌가 반응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디지털 스토킹의 대가는 혹독하다. 그가 잘 지내는 모습을 보면 배신감에 치를 떨고, 그가 힘들어 보이면 헛된 기대를 품는다. 어느 쪽이든 당신은 현실이 아닌 액정 화면 속의 허상에 감정을 저당 잡힌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데이터 조각을 긁어모아 만든 허수아비를 사랑하는 꼴이다. 당신은 감시자이면서 동시에 그 감옥에 갇힌 죄수다.

썩은 동아줄을 놓아야 바닥에 닿는다

“희망을 버리지 마세요.” 이런 달콤한 위로는 동화책에나 나오는 얘기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다. 철저하고 완벽한 절망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

‘어쩌면’이라는 단어가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다. 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희망은 당신이 오늘을 살지 못하게 만든다.

당신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그가 연락해 올 그날에 유예된 삶을 살고 있다. 지금 먹는 밥, 지금 만나는 친구, 지금 하는 일은 그날을 위한 대기 시간일 뿐이다. 이것은 당신의 삶에 대한 모독이다.

희망은 독이다. 썩은 동아줄을 잡고 매달려 있는 한, 당신은 팔이 빠질 듯한 고통 속에서 허공을 맴돌 뿐이다. 살기 위해서는 그 줄을 놓아야 한다.

줄을 놓으면 추락할 것 같아 두렵겠지만, 사실 그 바닥은 그리 깊지 않다. 툭, 하고 떨어져 바닥에 발을 딛는 순간, 당신은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내가 발 디딜 곳은 이 단단한 땅이었음을.

차단 버튼을 누르고, 카톡 방을 나가고, 사진을 지워라.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라. 잔인하게 들리는가? 하지만 썩은 살을 도려내지 않으면 새살은 돋지 않는다.

약은 ‘체념’이다. 그와 나는 끝났다는 사실, 그는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이 지독한 외로움은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는 차가운 사실을 삼키는 것이다.

쓴 약이다. 삼키기 힘들고 토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그 쓴맛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입맛이 돌아온다.

희망을 버린 폐허 위에 비로소 당신이 다시 선다. 누군가의 ‘전 여친’이 아닌, 연락을 기다리는 ‘대기조’가 아닌, 그냥 당신 자신으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빈방에 홀로 앉아 들이키는 차가운 공기, 그것이 진짜 자유의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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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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