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국제유가가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면서 수입물가가 오히려 상승하는 ‘역(逆)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유가 하락분을 고환율이 상쇄하며 물가 안정의 발목을 잡는 모습으로,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수입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과 서민 체감물가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행과 한국석유공사·서울외국환중개 등에 따르면 지난 11월 평균 원/달러 환율과 두바이유 가격의 격차(환율을 두바이유로 나눈 값)는 22.6으로 집계됐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가 남아 있던 2020년 11월(25.7) 이후 5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 지표는 원유 가격 대비 환율 부담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준다. 수치가 높을수록 유가 수준에 비해 환율 부담이 크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원유가 대비 환율 부담은 2020년 11월 이후 하락 흐름을 보이다가 2022년 3월(11.0) 저점을 찍은 뒤 상승세로 돌아섰고, 지난 9월부터는 3개월 연속 오르며 20선을 훌쩍 넘어섰다.
격차가 확대된 배경은 유가 하락과 환율 상승이 동시에 진행됐기 때문이다. 올해 11월까지 평균 환율은 1418.35원으로 지난해(1363.38원)보다 4% 올랐지만, 같은 기간 두바이유 가격은 79.6달러/bbl(배럴)에서 70.1달러/bbl로 11.9% 하락했다.
수입물가 지표에서도 환율 영향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한은이 발표한 11월 원화 기준 수입물가는 전월 대비 2.6% 상승한 반면, 환율 효과를 제거한 계약통화 기준 수입물가 상승률은 0.6%에 그쳤다. 두 지표 간 격차는 2.0%포인트로, 비상계엄이 선포됐던 지난해 12월(2.6%포인트)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한은 관계자는 “계약통화 기준 지수는 순수 국제 시세 변동만을 반영하고, 원화 기준 지수는 환율 변동분이 포함된다”며 “두 지수의 차이가 크다는 건 최근 물가 상승 압력의 상당 부분이 환율 급등에서 비롯됐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실물경제에 미치는 충격이 과거보다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2020년 11월에는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대로 급락한 영향이 컸고, 당시 월평균 원/달러 환율은 1116.76원으로 비교적 낮은 수준이었지만 두바이유는 43.4달러/bbl로 더 낮았다. 원유 가격을 원화로 단순 환산하면 2020년 11월 배럴당 약 4만8000원 수준이었던 반면, 지난달에는 약 9만4000원으로 두 배가량 높아진 셈이다.
고환율이 장기화할 경우 수입물가 불안이 이어지면서 특히 환헤지 여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김종화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은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석유화학이나 식품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환율 상승에 따라 굉장히 힘들어진다”며 “환헤지 여력이 충분하지 않거나 수입재 가격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어려운 중소기업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비용 상승이 가격 전가로 이어질 경우 소비자물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은 관계자는 “수입물가 상승은 통상 1~3개월의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며 “경기 상황, 할인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작용해 불확실성이 있다”고 밝혔다. 한은은 최근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2.0%에서 2.1%로 0.1%포인트 상향 조정했다.
환율 안정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미 금리 격차 축소는 긍정적 요인으로 거론되지만, 미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 국내 외환 수급 불균형이 언제 해소될지도 관건이다. 외환 당국은 개인과 기관의 해외 투자 확대가 환율 상승의 구조적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고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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