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기온이 내려가면 집마다 김장 준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쌓아둔 배추와 무만큼 중요한 재료가 고춧가루다. 김치의 매운맛, 향, 색을 좌우하는 핵심 재료지만, 가격 차이를 이용한 원산지 속임 판매가 끊이지 않는다.
색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워 많은 소비자가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고춧가루의 조직감과 반응을 차분히 살펴보면 원산지를 가늠할 수 있다.
1. 손에 쥐었을 때 남는 느낌
고춧가루를 만졌을 때 느껴지는 감촉은 원료의 건조 과정과 상태를 그대로 보여준다.
국산 고추는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과정에서 적당한 수분과 기름기가 유지된다. 손으로 한 줌 쥐었다가 펼치면 고춧가루가 가늘게 뭉쳐 남고, 손바닥에는 매운 향이 은근하게 배어난다. 고추 조직이 크게 손상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반대로 중국산 원료는 냉동 운송과 해동·재건조가 반복돼 수분이 거의 사라진다. 손에서 모래처럼 흩어지고, 눌렀을 때 밀착감이 없다. 입자가 지나치게 단단하고 거친 느낌을 주면, 신선도가 낮거나 외국산 비중이 높을 수 있다.
2. 물에 들어갔을 때 나타나는 색 번짐
고춧가루를 물에 떨어뜨렸을 때 나타나는 변화는 조직 상태를 확인하는 또 하나의 기준이다.
국산 고춧가루는 물 위에서 잠시 떠 있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번지는 붉은색은 탁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색을 유지한다. 표면에 남은 기름기가 천천히 물로 스며들기 때문에 색 번짐도 완만하게 나타난다.
중국산 고춧가루는 물에 닿는 즉시 빠르게 내려앉는다. 불량 제품일수록 색소가 과하게 퍼져 잉크처럼 짙은 색이 순식간에 번진다. 이런 현상은 고추 세포벽이 크게 손상됐거나 색을 인위적으로 조정한 제품에서 흔히 나타난다.
3. 맛과 향으로 확인하는 차이
고춧가루의 맛은 원료 품질과 가공 방식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다.
국산 고추는 매운맛 뒤에 은근한 단맛이 따라오고, 입안에서 고소한 향이 남는다. 김치에 넣으면 매운 기운과 함께 감칠맛이 길게 이어진다.
중국산은 단맛이 거의 없고 혀끝을 먼저 자극하는 매운맛이 앞선다. 향도 부드럽게 확산하지 않고 곧바로 자극이 느껴진다.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 쓴 뒷맛이 나타나면 고춧가루 구성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구매할 때 살펴야 할 기준
시장이나 마트에서 고춧가루를 살 때는 가격과 표기를 함께 확인해야 한다. 지나치게 저렴하면 품질 저하나 혼합 가능성을 의심해야 한다. 포장지의 원산지 번호, 제조 일자, 생산 이력은 비교 기준으로 삼기 좋다.
지역 농협이나 산지 직거래는 신뢰도가 높은 편이다. 신선한 고추를 직접 건조한 제품이 많고, 포장 과정도 단순해 위조 위험도 적다. 김장용 고춧가루는 색만 보는 것보다 질감·향·가라앉는 속도까지 함께 확인하는 편이 안전하다.
고춧가루 한 봉지가 한 해 김치의 품질을 좌우한다. 감촉, 물 반응, 향을 꾸준히 살펴보면 원산지 판단이 어렵지 않다. 작은 확인 과정이지만 결과 차이는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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