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인공지능(AI)·반도체·핵심광물 등 첨단산업 공급망을 축으로 한 새로운 경제안보 협력체를 공식 출범시키며 대중국 견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근 미국 자본이 중국 AI 기업으로 유입되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 의회가 대중국 기술 투자 제한을 제도화하는 등 초당적 대응에 나선 점도 맞물린다.
13일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11일(현지시간) 미국 주도로 한국·일본 등 8개국이 참여하는 경제 협력체 ‘팍스 실리카(Pax Silica)’가 출범했다. 국무부는 팍스 실리카를 “핵심광물과 에너지 투입재부터 첨단 제조, 반도체, AI 인프라, 물류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고 번영하며 혁신을 주도하는 실리콘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한 협력체”라고 설명했다.
‘팍스(Pax)’는 라틴어로 평화와 안정, 장기적 번영을 뜻하며, ‘실리카(Silica)’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실리콘 정제 화합물을 의미한다. 반도체와 AI 등 첨단산업을 뒷받침하는 공급망을 국가안보 차원에서 재편·관리하겠다는 미국의 전략이 구체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참여국은 미국을 비롯해 한국, 일본, 싱가포르, 네덜란드, 영국, 이스라엘, 아랍에미리트(UAE), 호주 등이다. 국무부는 이들 국가를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으로 규정하며 “글로벌 AI 공급망을 주도하는 핵심 기업과 투자자들의 본거지”라고 밝혔다.
국무부는 팍스 실리카 관련 팩트시트에서 중국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강압적 의존도를 줄이고 AI의 기초가 되는 소재와 역량을 보호하며, 동맹국들이 대규모로 혁신 기술을 개발·배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혀 중국 중심의 공급망 구조를 겨냥한 조치라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희토류 등 핵심광물과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도가 뚜렷하다는 분석이다.
협력 분야로는 소프트웨어 애플리케이션과 플랫폼, 프론티어 파운데이션 모델, 네트워크 인프라, 컴퓨팅·반도체, 첨단 제조, 물류·운송, 광물 정제·가공, 에너지 등이 제시됐다. 참여국들은 핵심광물과 반도체 설계·제조·패키징 전반에서 공급망 취약성을 공동 점검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이 같은 경제안보 동맹 구축은 최근 미국 자본이 중국 AI 기업으로 유입되는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 투자자들이 AI 모델을 개발하는 중국 기술 기업 주식을 적극 매수하고 있으며, 중국계 벤처캐피탈(VC)들은 AI 투자를 겨냥해 달러 표시 펀드를 조성 중이다. 일부 미국 대학 기금도 대중국 투자 재개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가에서는 이 같은 자본 이동에 대한 경계감이 확산되고 있다. 마이크 존슨 미 하원의장은 언론을 통해 “공산주의 중국의 침략 행위를 뒷받침하는 투자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 연방하원은 10일(현지시간) 2026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NDAA)을 통과시켰다. 최종안에는 대통령에게 중국의 AI 및 군사 관련 첨단 기술 산업에 대한 미국의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을 확대하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기술 발전에 미국 자본이 활용되는 것을 구조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책 과제에 미 의회가 초당적으로 대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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