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자 돈 55조원 사기쳤는데, 판사인 내가 어떻게 관대할 수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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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 돈 55조원 사기쳤는데, 판사인 내가 어떻게 관대할 수 있냐?"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13 07:42: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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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패러디 삽화=최로엡 화백

            2025년 12월 11일, 미국 뉴욕 남부연방지방법원(SDNY)의 법정 1305호.

 테라·루나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34) 전 테라폼랩스 대표가 노란색 죄수복을 입은 채 선고를 기다렸다. 이날 폴 A. 엥겔마이어 판사가 내린 결정은 전 세계 금융 범죄 사법 역사에 하나의 이정표를 세우는 순간이었다. 판사가 권도형 전 대표에게 선고한 징역 15년형은, 검찰이 유죄 협상 제도(Plea Bargaining)를 통해 요청했던 12년형보다 더 무거웠다. 이는 대규모 금융 사기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적인 징벌 의지가 검찰의 효율적 합의를 넘어섰음을 명확히 보여준 선례다.

판사의 단호한 선고: "터무니없이 관대한" 구형을 거부

 이날 엥겔마이어 판사는 권도형 전 대표의 사기 행각을 "전대미문의 사기(epic fraud)"이자 "세대에 걸친 엄청난 규모의 사기(fraud on an epic, generational scale)"라고 규정했다. 이 판결의 핵심은 사법부가 검찰과 변호인의 형량 요구를 모두 일축했다는 점에 있다.

 권도형 전 대표의 변호인단은 권씨를 단지 기술 발전을 시도하다 실패한 기업가로 묘사하며, 최대 5년형을 요청했다. 반면 검찰은 와이어 사기(전신 사기) 등 두 가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받는 대가로 12년형을 법원에 구형했다. 이는 권도형 전 대표가 직면했던 법정 최대 형량인 25년형에 비하면 비교적 낮은 수치였다.

 그러나 엥겔마이어 판사는 두 요청 모두를 단호히 거부했다. 그는 변호인 측의 5년형 요청에 대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터무니없이 부당한 요청"이라고 일축했다. 더 나아가, 그는 검찰이 유죄 협상을 위해 합의한 12년형 구형조차 "터무니없이 관대하다"고 명시적으로 비판했다.

 판사는 400억 달러 (약 55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 규모를 지적하며, 이 금액이 단순한 장부상의 손실이 아니라 "실제 돈(real money)" 손실임을 강조했다. 그는 권도형 전 대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범죄는 사람들에게 실제 55조원에 달하는 돈의 손실을 초래했고, 이건 단순한 장부상의 손실이 아니다."

 이런 판결은 디지털 자산 생태계의 복잡성 뒤에 숨은 사기 행위에 대해, 미국 법원이 연방 양형 가이드라인(USSG)이 권고하는 형량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해 최대의 억제력을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으로 분석된다. 판사는 권씨가 유죄를 인정했기 때문에 15년형을 선고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형량이 "더 높았을 것"이라고 언급해 , 이번 선고가 사법적 관점에서 절충된 결과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사기의 해부학: 무기화된 신뢰와 인간적 폐허

권도형 사태의 심각성을 증명한 결정적인 요소는 피해자들의 증언이었다. 법원은 선고 과정에서 수백 명의 피해자들이 제출한 300통 이상의 피해자 진술서를 심도 있게 검토했다고 한다. 이 편지들은 단순한 재산 피해 보고서를 넘어, 사기로 인해 파괴된 삶의 기록이었다.

엥겔마이어 판사는 권도형 전 대표가 투자자들에게 "거의 신비로운 영향력(almost mystical hold)"을 행사하며 그들의 신뢰를 "무기화했다(weaponized their trust)"고 말했다. 판사는 이 범죄가 남긴 결과를 "인간적 폐허"라고 표현하며, 이 사건이 화이트칼라 범죄의 경계를 넘어섰음을 시사했다.

피해자 진술에는 참혹한 현실이 담겨 있었다.

  • 한 피해자는 아버지의 은퇴 자금을 모두 잃은 뒤 "자살을 생각했다"고 편지를 통해 법원에 밝혔다.

  • 또 다른 피해자는 전화로 진술하며, 아내가 이혼하고, 아들들이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으며, 본인 역시 가족의 전 재산이 증발해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 살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진술했다.

  • 한 투자자는 자신의 장인·장모와 수백 개의 비영리 단체가 테라에 투자하도록 설득한 데 대한 "죄책감과 함께 살아야 한다"고 털어놨다.

피해자 스태니슬라프 트로핌추크는 자신의 가족 투자금 19만 달러 (약 2억 6천만 원)가 1만 3천 달러 (약 1천 8백만 원)로 급락했다는 사실을 밝히며 "우리 삶의 17년이, 단 이 주간의 순전한 공포 속에서 사라졌다"고 말했다. 한 피해자는 편지를 통해 "이 사건은 우연이 아니었다. 시장 상황도 아니었다. 그것은 기만이었다"라고 적어, 법원이 사기의 고의성을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피고인의 반성과 책임 회피의 그림자

선고 공판에서 권도형 전 대표는 법정에서 피해자들에게 직접 사과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는 노란색 죄수복을 입은 채 자신의 행동에 대해 후회와 반성을 표명했다.

 그는 법원에 제출한 서한에서 자신의 과거 오만함을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 자신의 오만함을 이해할 수 없으며,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기를 바란다. 죄송하다."

 그는 또한 법정에서 "모든 피해자의 이야기는 충격적이었고, 나에게 막대한 손실을 다시금 상기시켜 주었다. 이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법원과 검찰은 이러한 늦은 후회의 진정성을 권도형 전 대표의 과거 행적과 비교해 평가했다. 미국 검찰 제이 클레이턴은 권도형 전 대표가 범죄가 발각된 후 "기만적인 홍보 캠페인을 벌였고, 불법 계획의 수익을 세탁했으며, 형사 기소를 피하기 위해 해외에서 정치적 보호를 구매하려 했다"고 비난했다. 특히 권도형 전 대표가 체포되기 전인 2022년 8월 녹취된 대화에서는 법 집행 기관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도피 전략을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권도형 전 대표는 2023년 3월 몬테네그로에서 위조 여권 사용 혐의로 체포된 이후 미국 송환까지 구금되었던 17개월의 기간에 대해 형량 감경을 인정받았다.

국제적 제재와 법적 선례: 새로운 기준의 확립

권도형 전 대표의 책임은 형사적 징역형에 그치지 않았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테라폼랩스와 권도형 전 대표에 대해 증권 사기 혐의로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받은 후, 45억 달러 (약 6조 2천억 원)가 넘는 금액에 합의했다. 이 합의에는 35억 8천만 달러 (약 4조 9천억 원) 이상의 환수금(disgorgement)과 4억 6천만 달러 (약 6천 4백억 원) 이상의 선고 전 이자가 포함되었으며, 테라폼랩스는 4억 2천만 달러 (약 5천 8백억 원), 권 전 대표는 8천만 달러 (약 1천 1백억 원)의 민사 벌금을 추가로 납부하기로 했다. 또한, 형사 사건에서 권 전 대표는 1,900만 달러 (약 260억 원) 이상의 몰수금(forfeiture)을 포기하는 데 동의했다. 이런 규제 기관의 조치는 권도형 전 대표의 사기 규모를 공식적으로 확증하는 동시에, 파산 절차를 통해 피해자 배상을 위한 재정적 메커니즘을 마련했다.

암호화폐 거물들의 징벌적 형량 기준

 권도형 전 대표에게 부과된 15년형은 암호화폐 업계의 또 다른 거물인 FTX 창립자 샘 뱅크먼-프리드(Sam Bankman-Fried, SBF)가 횡령 및 공모 등 7개 혐의로 선고받은 25년형과 비교된다. SBF의 범죄가 고객 자금의 직접적인 횡령과 광범위한 사법 방해 행위가 결합된 것이라면, 권도형 전 대표의 범죄는 복잡한 알고리즘 기술을 이용한 기만과 시장 조작을 통해 시스템적 붕괴를 초래했다. 검찰은 권도형 전 대표의 손실액이 SBF와 원코인(OneCoin) 사기 피해액을 합친 것보다 크다고 지적했지만 , 사법부는 범죄의 '성격'과 '의도'에 따라 형량에 차이를 두었다.

이 두 사건에 대한 엄중한 판결은 미국 사법 시스템이 디지털 자산 관련 대규모 금융 사기에 대해 강력한 징벌적 양형 기준을 확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이 클레이턴 검사는 이 선고 직후 발표한 성명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기는 우리 거리에서 일어나든, 증권 시장에서 일어나든, 새롭고 중요한 디지털 자산 생태계에서 일어나든 사기다. 범죄자들이 세계 어디에 숨으려 하든, 뉴욕 남부지검의 여성과 남성들은 투자자들을 위해 끊임없이 정의를 추구할 것이다."

 이 판결은 분산형 금융(DeFi) 프로젝트 창립자들이 기술의 복잡성 뒤에 숨어 대규모 시장 손실의 책임을 회피할 수 없으며, 고의적인 기만 행위는 전통적인 금융 범죄와 동등하거나 더 가혹한 처벌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권도형 전 대표는 미국에서 형량을 복역한 뒤, 한국으로의 이송(repatriation) 요청에 대해 미국 검찰이 반대하지 않기로 합의했으므로 , 모국인 한국에서도 추가적인 형사 책임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 이는 국경을 초월한 금융 범죄에 대한 포괄적인 사법 책임을 부과하는 국제적인 모델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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