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탐방] 조선 후기 영남 학문과 정치의 중심, 상주 흥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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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 탐방] 조선 후기 영남 학문과 정치의 중심, 상주 흥암서원

뉴스컬처 2025-12-13 06:00: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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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흥암서원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상주 흥암서원 흥암사(사당). 사진=국가유산청

[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경상북도 상주 연원동, 한적한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낮게 드리운 기와 지붕과 고즈넉한 마당이 맞이하는 상주 흥암서원(尙州 興巖書院)이 있다. 최근 이 서원은 국가유산청에 의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되며, 조선 후기 영남 지역 학문과 정치의 중심지로서 가치를 공인받았다.

흥암서원은 1702년 창건되어 1705년 숙종으로부터 사액을 받았고, 1762년 현재의 자리로 이건되었다.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않은 전국 47개 사액서원 중 하나로, 조선 후기 영남지역 서인 노론계 학문의 중심지였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주향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은 이이에서 김장생으로 이어지는 기호학파의 맥을 잇는 산림학자다. 그는 서인 노론계 학문의 정신적 지주로 활동하며 상주 지역 인사들과 긴밀한 관계를 쌓았다. 특히 상주 출신 우복 정경세의 사위가 된 뒤 약 10년간 이곳에 거주하며 지역 학자와 관리들과 유대를 형성했고, 이러한 연고와 정치적 후원이 맞물리면서 사후 흥암서원에 제향될 수 있었다.

서원의 배치와 건축은 학문적 이상과 지역적 특성을 절충한 결과다. 전면에 강학공간을, 배면에 제향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형 구조를 따르며, 강당이 전면, 동재와 서재가 후면에 자리한 전당후재형은 기호학파 계열 서원에서 흔히 나타나지만, 영남 지역에서는 드문 사례다. 이를 통해 당시 서원의 학문적 실천과 공간적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상주 흥암서원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상주 흥암서원 전경. 사진=국가유산청

사당 흥암사에는 1705년 숙종이 하사한 사액 현판과 1716년 숙종 친필 ‘어필’ 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숙종의 손길을 거친 글씨는 학문과 정치가 맞닿은 서원의 위상을 상징하며, 방문객에게 조선 후기 지식인 사회의 권력과 위신을 전한다.

강학공간의 진수당은 영남학파 형식을 반영해 대청 전면이 완전히 개방되어 있으며, 뒷면은 창호로 구성되어 빛과 바람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대문인 하반청은 동·서재 원생보다 낮은 계층 원생을 위한 공간으로, 당시 서원 운영과 학문 계층 구조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흥암서원의 소장 자료들은 조선 후기 서인의 인적 구성과 운영 방식, 사회·경제적 기반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봄과 가을에 거행되는 춘추향사는 서원의 역사적 기능과 제향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며, 조선 후기 향촌 사회와 학문 공동체를 연결하는 실질적 증거로 평가된다.

흥암서원은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다. 건물 배치, 강학과 제향 공간, 각종 현판과 자료들은 조선 후기 학문과 정치,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면모를 생생히 보여준다. 상주 흥암서원은 앞으로도 보존과 학술적 연구를 통해 영남 지역 서원의 가치와 전통을 후손에게 전달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자리할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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