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유목 가족과 함께 보낸 계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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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유목 가족과 함께 보낸 계절들

엘르 2025-12-12 22:38:05 신고

계절이 바뀌면 집을 접고, 새로운 땅에 다시 펼치는 삶은 얼마나 자유로울까? 바람을 따라 살아가며, 풍경이 곧 집이 되고, 호수와 초원이 벗인 삶.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약 660km 떨어진 아르항가이 아이막은 몽골에서도 전통 유목 문화가 잘 보존된 지역으로, 이 지역 사람들은 대체로 할하(Halh) 몽골인이다. 이들은 여전히 양과 염소, 말, 야크, 소 등을 계절에 따라 이동시키며 키우는 전통 유목민이고, 보통 다섯 살에서 일곱 살이면 말을 타고 가축 방목을 돕는다. 이들은 자유를 가장 자랑스러운 가치로 여긴다. 풀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으며, 도시처럼 시간과 규칙에 묶이지 않는 생활을 고수하며 살아간다.


나무장작을 가지고 게르로 돌아오는 길, 하늘로 지나간 비행기 자리에 남은 구름을 잡으려 손을 뻗는 아욘볼드(Oyunbold).

나무장작을 가지고 게르로 돌아오는 길, 하늘로 지나간 비행기 자리에 남은 구름을 잡으려 손을 뻗는 아욘볼드(Oyunbold).

이들에게 자연은 환경을 넘어 생명체이자 동반자에 가까운 존재로, 게르를 지을 새 땅에 도착하면 우유와 차를 조금 뿌려 자연에 예를 표하는 의식을 치른다. 자유로 빛나는 이들의 아침은 언제나 비슷하다. 게르 내부에서는 중앙 난로에 늘 수테차가 끓고 있고, 먼 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며, 게르 바깥에서는 누군가 가축을 돌본다. 그 시간에 우유를 짜는 소리는 낮게 흐르며, 몽골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이 평화롭고 자유로운 삶은 사진가 하태민에게 신선한 정서를 안겼다. 자신이 만난 개인과 공동체의 삶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피사체의 다면적인 면모와 그들의 친밀한 순간을 담은 작업을 선보여 온 하태민은 사진집 〈su..u..〉에 몽골의 한 유목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했다.


마을에 심한 눈보라가 치던 날, 길을 헤매는 들개.

마을에 심한 눈보라가 치던 날, 길을 헤매는 들개.

주말에 게르에서 노는 형제 투시그 (Tushig)와 아욘볼드.

주말에 게르에서 노는 형제 투시그 (Tushig)와 아욘볼드.

이 사진집은 여행의 결과물이라기보다 여러 해에 걸친 반복된 방문과 계절의 변화를 경험하며 생성된 긴 호흡의 프로젝트다. 한 지역을 오랜 시간 따라가며 축적한 삶의 리듬과 자연의 변화, 가족 공동체의 내밀한 시간을 담아낸 이 작업의 출발은 특별하지 않았다. 한국에서 우연히 만난 몽골인 친구와 나눈 대화에서 유목민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친구의 친척이 지금도 유목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은 하태민은 오랜 호기심을 따라 2022년 5월 곧바로 몽골로 향했다. 그와 시간을 보낸 가족은 네 가구의 친척으로 구성된 공동체. 이 사진집에 자주 등장하는 아이들인 형이자 오빠 ‘아마르바예르’, 줄줄이 이어진 형제들 ‘오츠르마’, ‘떠덜수른’, ‘투시그’ 그리고 귀여운 어린이 ‘아욘볼드’다. 이들은 전통적 유목 구조와 현대적 생활방식이 교차하는 지점인 지역에서 살아간다.


게르 지역으로 돌아가는 차. 망가진 장난감을 보며 화가 난 아욘볼드.

게르 지역으로 돌아가는 차. 망가진 장난감을 보며 화가 난 아욘볼드.

“제가 계속 왕래했던 가족들은 모두 함께 일하며 살아갑니다. 그들은 계절이 바뀔 때마다 게르와 가축을 옮겨 다니며 지내는데요. 이 지역에는 ‘화이트 레이크(White Lake)’로 불리는 넓은 호수가 있고, 이 호수 주변에서 가축과 함께 생업을 이어가죠. 호수 건너편에는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마을이 있는데, 아이들은 평일에는 그곳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고, 주말마다 가족이 있는 게르로 돌아옵니다. 몽골의 전통 유목민과 현대 유목민이 섞인 형태로 볼 수 있는 이 가족의 생활방식이 인상적이었죠.”


게르 안에서 열매를 주워 하태민에게 보여주던 아욘볼드. 책 표지의 ‘열매를 들고 있는 손’ 모티프가 된 사진 중 하나.

게르 안에서 열매를 주워 하태민에게 보여주던 아욘볼드. 책 표지의 ‘열매를 들고 있는 손’ 모티프가 된 사진 중 하나.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유를 따라 마신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우유를 따라 하태민에게 나눠주는 떠덜수른 (Dolgosuren).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우유를 따라 마신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우유를 따라 하태민에게 나눠주는 떠덜수른 (Dolgosuren).

하태민이 말했다. “특히 첫 방문 마지막 날, 봄의 초입에 게르를 해체해 여름 거처로 옮기는 대이동은 말 그대로 장관이었습니다. 아이들까지 말을 타고 가축을 이끄는 장면은 유목 문화가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었죠. 유목이라는 문화가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 쉬는 생활방식임을 실감했습니다.” 그는 첫 방문 이후 계절이 바뀌는 시점마다 몽골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사진들은 더욱 생명력을 얻었다. 처음에는 관찰자였던 그의 태도는 점차 가족의 일상 속에 스며들었다. 게르 안에서 가족과 식사하고, 아이들이 말을 타고 이동하는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고, 호수의 색이 계절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겪으면서.


저학년인 떠덜수른이 하교 후 한가한 오후를 보내는 모습.

저학년인 떠덜수른이 하교 후 한가한 오후를 보내는 모습.

학교를 위해 게르를 떠나 아이들끼리 머무는 집.

학교를 위해 게르를 떠나 아이들끼리 머무는 집.

사진집 제목인 ‘su..u..’는 몽골어로 ‘우유’를 뜻한다. 따뜻함과 생명, 순백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이 단어는 그 가족의 삶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가족은 매일 새벽 우유를 짜고, 그 우유와 가축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아이들을 키운다. 새벽마다 짜내는 우유는 생계를 유지하는 힘이고,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영양이다. 하태민에게 이 가족의 하루를 가장 가깝게 비추는 단어는 ‘su..u..’였다고 한다. 이 단어는 사진 작업의 핵심이 됐고, 가족 구성원 모두의 하루를 엮는 연결고리이며, 이 지역의 시간성을 보여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그 시간 속에서 사진은 점점 달라졌다. “처음에는 몽골이라는 장소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특징에 집중했지만, 방문을 거듭할수록 몽골처럼 보이지 않아도 되는 풍경을 포착하고 싶어졌어요.”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오빠 아마르바예르 (Amarbayar)를 기다리는 동생 오츠르마 (Ochirmaa).

아침 등교를 준비하는 오빠 아마르바예르 (Amarbayar)를 기다리는 동생 오츠르마 (Ochirmaa).

하태민은 어느 순간 가족의 집이 조금은 자신의 집처럼 느껴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어쩌면 그곳에서 느낀 감정은 고향과 비슷했던 걸까? “태어난 곳이 아니어도 마음이 잠잠해지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고향일 수 있어요.” 하태민이 사진집의 첫 문장으로 선택한 시의 구절은 바로 이 감정과 맞닿아 있다. “고향은 단순히 우리가 태어난 곳이 아니며, 저는 이 노래를 부릅니다(Homeland is not simply the place where we are born, and of this I sing).” 그가 좋아하는 이 문장은 사진집에 함께 실린 몽골 시인 ‘에르데네솔롱고 바출룬’의 시구 중 하나다. 사진집에는 이 시인을 포함해 ‘비얌바자브 곰보자브’의 시도 실려 있다. 이는 하태민이 사진집의 방향을 한 편의 시처럼 만들고 싶다는 의도에서 출발한 것. 사진을 본 시인들은 스스로 시를 건넸고, 그 자연스러운 조응은 책 전체의 정서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주말에 게르 지역에 오면 아이들은 각자의 말을 타고 동물을 모는 일을 돕는다. 염소 떼를 옮긴 후, 말에서 내리기 전 투시그의 모습.

주말에 게르 지역에 오면 아이들은 각자의 말을 타고 동물을 모는 일을 돕는다. 염소 떼를 옮긴 후, 말에서 내리기 전 투시그의 모습.

시 속에 등장하는 눈과 비, 나뭇잎, 바람은 사진 속의 지연과 겹쳐져 마치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을 준다. 〈su..u..〉를 관통하는 단어는 고요와 침묵이다. 광활한 자연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한 가족의 일상은 매우 따뜻하고 고요하며, 사랑스럽다. 이 긴 여정은 2024년의 마지막 촬영으로 마무리됐다. 만약 이 프로젝트가 한 편의 시라면 마지막에 어떤 문장을 두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그는 첫 페이지 문장을 다시 선택했다. 게르의 연기와 아이들의 웃음, 우유의 따뜻한 냄새는 책 속에서 오래도록 머문다. 〈su..u..〉는 떠남보다 머문 마음의 이야기로 남아 있다. 드넓은 초원을 따라 숨쉬는 이 가족은 늘 움직이지만, 그 움직임 속에서 가장 깊은 ‘머무름’을 발견한다. 우리는 이토록 진정한 자유와 정착을 느낀 적 있었나. 그렇다면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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