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④』충암파(忠巖派)의 은밀한 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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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狂令秘史: 명성왕후의 재림④』충암파(忠巖派)의 은밀한 밀실

저스트 이코노믹스 2025-12-12 22:33:31 신고

3줄요약

 황제 대윤(大尹)의 치세(治世)는 깊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황비 희건의 무속적 집착과 척족(戚族)의 끝없는 비리, 그리고 자신의 알코올 의존증이 낳은 실정(失政)으로 인해, 황제는 궁궐 깊숙이 스스로를 유폐시켰다. 이즈음, 충직했던 훈동 어사의 이탈과 개혁파의 숙청은 황제 대윤을 더욱 고립시켰다. 그는 이제 법치와 정의가 아닌, 사적인 연고와 학연에 기대어 최후의 권력을 지키려 했다.

충암파의 결성: 학연에 기댄 사적 권력

황제 대윤이 즉위 전 다녔던 충암(忠巖) 고등학교는 단순한 모교가 아니었다. 이곳 출신의 군부(軍部) 핵심 인맥들은 황제 대윤에게 공식 채널을 뛰어넘는 사적인 친위체제를 구축해 주었다. 이들을 조정에서는 '충암파'라 불렀다.

충암파의 중심에는 국방 및 안보 분야의 핵심 요직을 장악한 인물들이 포진했다. 이들은 황제 대윤의 최측근 경호원 출신부터 방첩 사령부(防諜司令部)의 수장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군사력과 정보기관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었다. 황제 대윤이 공식적인 내각과 왕자 대감파(검찰 측근)의 통제를 잃어가자, 그는 모든 국가 안보를 이 충암파에게 일임했다. 이들은 황제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쳤으나, 그 충성의 근간은 공적인 직분에 대한 맹세가 아닌, 사적인 학연(學緣)과 의리에 불과했다.

광령(狂令)의 서곡: 비상재변의 모의

황비 희건을 둘러싼 스캔들이 극에 달하자, 황제 대윤은 자신의 치세가 탄핵 직전의 위기에 놓였음을 깨달았다. 황비가 외교 사절로부터 고가의 명품 선물을 수수한 의혹이 명백한 증거와 함께 폭로되었고, 황비가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구금될 위기에 처했다.

황제 대윤은 자신의 연인(戀人)이자 정치적 동반자인 황비를 구하기 위해, 국가 안보와는 전혀 무관한 이 사소하고 치졸한 스캔들을 은폐해야 했다. 술에 취해 현실 판단력이 흐려진 황제는, 황비가 주입한 명성왕후의 숙명론과 주술적인 조언("왕의 힘을 보여라")에 의지하여 최후의 광기어린 계획을 세웠다.

늦은 밤, 개경의 외곽에 위치한 충암파의 은밀한 밀실에 황제 대윤이 모습을 드러냈다. 충암파의 핵심 수장들은 황제와 함께 술을 마시지는 않았으나, 황제의 분노와 광기에는 침묵으로 동조했다.

황제는 술잔을 들고 떨리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지금 충의 대간(臺諫)들은 나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내 여인을 능멸하고 있다. 이들은 조기 대선(大選)을 노리고 나를 끌어내리려 한다. 나는 당당하게 맞서겠다."

그리고 마침내 황제 대윤은 국회와 반대 세력을 무력으로 제압할 목적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비상재변(비상계엄)' 선포를 명령했다. 이 작당 모의는 황제의 사적인 분노와 충암파의 은밀한 친위체제가 결합하여, 고려의 마지막 합리성을 파괴하는 시점이었다.

 훈동 대감의 절망: 깨어진 충성

한편, 황제의 모든 행보를 멀리서 지켜보던 훈동 대감은 황제 대윤의 파국적인 몰락을 예감했다. 그는 황제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리, 법무(法務)를 담당하는 요직에 있으면서도 황제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황제는 그의 이성적인 충언 대신, 황비의 주술적 비호와 술잔 속의 환영만을 믿었기 때문이다.

황제 대윤이 비상재변을 선포하려 모의했다는 소문이 훈동 대감의 귀에 들어왔을 때, 그는 비로소 자신이 충성했던 '대윤'의 정의가 완전히 소멸했음을 깨달았다. 훈동에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고 직분에 충성하겠다"는 황제 대윤의 옛 맹세는 이제 허망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황제 대윤의 몰락은 더 이상 '정의로운 검'이 술과 애정이라는 사적인 탐닉 앞에서 어떻게 무력해지는지를 보여주는 비극적인 교훈이 될 참이었다.

광령(狂令)의 선포와 파국

결국 황제 대윤은 만취 상태에서 광령(狂令)을 내렸다. 황제의 명령은 고려의 국시(國是)였던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자폭 단추와 같았다.

이 비상재변 선포는 백성들에게 "군주가 국민을 모욕하고 국격(國格)을 추락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황제 대윤이 자신의 왕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사적인 위기를 국가적 재앙으로 확대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충의 대간과 사대부 세력은 이 광령을 빌미로 즉시 황제 폐위(彈劾, 탄핵) 심판을 발의하고 국회에서 가결했다. 황제는 최후의 발악으로 탄핵을 주도한 야당 세력이 조기 대선을 노리고 있다고 비난하며 정면 대응 기조를 드러냈으나, 이미 고려의 민심은 그에게서 완전히 등을 돌린 뒤였다. 황제 대윤은 술잔과 황비라는 두 가지 맹목적인 탐닉에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을 선택한 폐주(廢主)가 되었다. 그의 1000일 천하는 이제 비극적인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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