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파동에 가깝다. 방향을 틀고, 갈라지고, 되감기고, 때로는 겹쳐지며 또 다른 세계를 생성한다. 극단 비브라토가 네 번째 작품으로 선택한 연극 ‘별의 무리 : Constellations’은 바로 그 ‘시간의 다중성’을 가장 세밀한 감정의 언어로 번역해낸다. 닉 페인의 대표작 ‘Constellations’을 원작으로 삼은 이번 공연은, 12월 17일부터 24일까지 관객을 ‘가능성의 우주’로 초대한다.
‘별무리’로 국내 관객에게도 익숙한 닉 페인은 이브닝 스탠다드 어워드의 최연소 수상자이자 해럴드 핀터 상을 거머쥔 작가다. 젊은 나이에 이미 세계적 주목을 받은 그가 다루는 세계는 늘 명확하다. 인간 관계라는 작고 사소해 보이는 단위를 통해, 우리가 쉽게 감각하지 못하는 시간과 감정의 층위를 드러내는 것. 극단 비브라토는 이 구조적 미학을 자신들의 감각으로 섬세하게 재해석하며 이번 시즌의 정점을 준비해왔다.
무대에는 단 두 명의 배우만이 선다. 그러나 이 공간은 결코 단순한 2인극의 장이 아니다. 마리안과 롤란드, 이 두 인물이 나누는 첫 눈맞춤, 어긋남, 다툼, 재회, 청혼, 아픔, 그리고 죽음까지. 각 장면은 매번 조금씩 다른 결로 반복되고, 아주 작은 언어의 떨림 하나가 또 다른 우주로 이어진다. 유하영–박진현 조와 김민정–정우근 조, 두 개의 더블 캐스트는 ‘반복되지만 같지 않은’ 이 작품의 구조를 배우 각자의 결로 확장시키며, 감정의 미세한 떨림을 더욱 입체화한다.
정영돈 연출은 이번 공연에서 몇몇 장면의 시간선을 과감히 전복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그는 “이 작품은 단순히 ‘만약에’의 나열이 아니라, 이미 내재된 수많은 가능성들이 겹쳐지고 흩어지는 세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의 연출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연상시킨다. 반복되는 운명의 순간 속에서도, 다시 서로에게로 걸어 들어가는 두 사람. 선택인지 필연인지 규정할 수 없는 그 미묘한 움직임이야말로 작품의 핵심적인 감정 축이다.
비브라토는 단체명부터 이미 감각적이다. 음악적 기법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들은 ‘존재는 모두 떨린다’는 물리학적 감각으로 그 의미를 확장한다. 그 떨림이 파동을 만들고, 파동이 감정을 전파한다는 믿음은 지난 작품들 ‘어니스트 : 진지함의 중요성’, ‘출구없음’, ‘세레나데’을 관통해온 철학이다. 이번 ‘별의 무리 : Constellations’은 그 미학이 가장 온전히 구현된, 비브라토의 2025년을 수놓는 결정체에 가깝다.
결국 이 작품이 이야기하는 것은 ‘무수한 가능성 속의 하나의 순간’이다. 수십, 수백의 우주를 가로질러 결국 서로를 향해 걷게 되는 두 사람. 그들이 맞이하는 ‘지금, 여기’의 감정은 반복되는 세계 속에서도 유일하고 소중하며, 그 순간의 아름다움은 무대 위에서 파동처럼 진동한다.
올겨울, 연극 ‘별의 무리 : Constellations’은 관객의 마음에 가장 섬세한 떨림을 남길 준비를 마쳤다. 그 떨림이 어떤 우주로 이어질지는, 오직 각자만이 감각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일 것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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