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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G(소시에테제네랄)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라덕연 전 호안투자자문 대표가 항소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받으면서, 미국에서 테라·루나 사태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은 권도형 테라폼랩스 설립자와의 형량 대비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수천억 원대 피해를 낳은 초대형 금융범죄라는 점에서 유사성이 적지 않지만, 두 사건을 대하는 한·미 사법당국의 시각과 처벌 수위에는 뚜렷한 온도차가 드러난다.
서울고법 형사3부는 지난달 25일 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라덕연 씨에게 1심 징역 25년을 파기하고 2심에서 징역 8년을 선고했다. 시세조종으로 인정된 계좌와 금액이 대폭 줄어들면서 형량도 17년이나 감형됐다. 재판부는 라씨 조직에 투자를 ‘일임하지 않은 계좌’와 이른바 ‘뒷주머니 계좌’를 시세조종 범죄에서 제외했고, 무등록 투자일임업으로 취득한 수익 역시 법 적용 시점을 이유로 일부 무죄로 판단했다. 그 결과 시세조종 인정 금액은 1심의 3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
재판부는 “주가 폭락의 직접적인 원인이 피고인들에게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시세조종으로 얻은 이익의 귀속 주체도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실제로 라씨 일당은 주가 폭락 과정에서 투자 수익을 상실하고 거액의 채무를 떠안았다는 점도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피해 규모가 사상 최대 수준이었음에도 결과적으로 ‘의도와 귀속, 직접성’이 형량을 크게 낮춘 셈이다. 검찰은 라 대표 등이 이를 통해 7377억원의 범죄수익을 챙긴 것으로 봤다.
반면 미국 사법당국은 테라·루나 사태의 책임자인 권도형 씨에게 훨씬 엄중한 잣대를 들이댔다. 미국 뉴욕 남부연방법원은 11일(현지시간) 사기 공모 및 통신망 사기 혐의로 권씨에게 징역 15년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플리바겐 합의에 따라 최대 12년형을 구형했음에도, 법원은 이를 웃도는 형량을 선고했다.
미 법원은 테라USD의 달러 연동 구조가 사실상 허위에 가까웠고, 권씨가 이를 알면서도 투자자들을 기망해 약 400억 달러(59조원)에 달하는 글로벌 피해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알고리즘 스테이블코인의 구조적 결함을 ‘시장 실패’가 아닌 ‘사기 행위’로 명확히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권씨가 실제로 얼마의 이익을 확보했는지, 사태 이후 자산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형량 산정에서 핵심 변수가 되지 않았다.
韓, 돈의 최종 귀속 여부에 형벌 무게
美, 자본시장 질서 훼손 자체가 중대범죄
전문가들은 한·미 사법 시스템의 결정적 차이를 지적했다. 한국 사법부가 자본시장 범죄에서 ‘직접 이익의 귀속’과 ‘개별 계좌의 위임 관계’를 엄격히 따지는 반면, 미국은 시장 질서 훼손과 투자자 신뢰 붕괴 자체를 중대 범죄로 본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누가 최종적으로 돈을 가져갔는지”가, 미국에서는 “시장에 어떤 거짓 신호를 보냈는지”가 형량을 좌우하는 것이다.
라덕연 사건이 ‘사상 최대 주가조작’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2심에서 대폭 감형된 반면, 권도형 사건은 플리바겐으로 혐의를 일부 줄였음에도 두 자릿수 실형이 선고된 배경이다. 자본시장 질서를 경제 시스템의 핵심 인프라로 보는 미국과, 여전히 개별 범죄 구성요건에 무게를 두는 한국의 인식 차이가 선고 결과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형법 전문 변호사는 “주가조작 사건의 판결을 보면 부당이득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점이 주요 판단 근거로 자주 언급된다”며 “금융당국이나 검찰이 추산한 부당이득 규모에 비해, 실제로 형량 산정 과정에서 인정되는 금액은 훨씬 적은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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