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현대자동차·LG·한화 등 주요 재벌그룹이 잇달아 수조원대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투자 계획 자체가 국내 생산시설 확충은 물론 중소·벤처기업과의 연계 강화,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만큼 협력사 등 타 기업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도 상당할 것이라는 판단이다. 특히 증권가에서는 수혜기업 찾기 움직임이 점차 본격화되고 있다. 투자 수혜는 곧 실적 등의 성장과 직결되는 만큼 주가 또한 상승 곡선을 그릴 것이라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대차그룹 정의선의 승부수 '로봇 대전환'…K-로보틱스 주요 협력사 반사이익 주목
증권가, 재계 등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2026년부터 5년간 총 125조2000억원을 국내에 투자할 계획이다. 직전 5년(2021년~2025년) 투자액 89조1000억원보다 36조1000억원 늘어난 규모다. 이번 투자 계획의 핵심은 국내에 로봇 완성품 제조 및 파운드리(위탁생산) 공장 건립이다. 차세대 로봇 공장에서는 제조 역량이 부족한 중소기업 제품을 위탁 생산하고 기존 자동차 부품 협력사가 로봇 부품 분야로 진출하도록 연구개발을 지원할 예정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달 열린 민관 합동회의에서 "다품종 로봇 생산이 가능할 것이다"며 로봇 생산 생태계 확장 의지를 공식화했다.
현대차그룹의 '로봇 대전환' 시도는 단순 신사업 진출이 아닌 산업 생태계 혁신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현대차그룹이 로봇을 미래 제조 인프라의 핵심으로 규정한 만큼 로봇 부품·제어기·센서·소프트웨어 등 전방위 밸류체인이 동시에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대차그룹이 주력 사업인 자동차 분야에서 축적한 정밀 제조 기술과 공급망 관리 역량을 로봇 산업에 적용할 경우 중소·벤처기업도 안정적인 생산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어 제조업 전반의 생산성 확대와 원가 절감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로봇을 가동하기 위해서는 하드웨어 개발이 필수인 만큼 관련 기술을 보유한 협력사들이 주목받고 있다. 유압로봇시스템을 제조·판매하는 KNR시스템이 대표적이다. KNR시스템은 유압시험장비 개발을 기반으로 성장했으며 현대차그룹과 17년 넘게 거래 관계를 유지해오고 있다. 매출의 90% 이상이 현대차그룹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발생한다. 로봇은 관절을 움직이는 액추에이터 방식에 따라 전동식과 유압식으로 나뉘는데 KNR시스템은 유압식 기술에 강점을 지녔다. 유압식 로봇은 전동식보다 약 10배 높은 출력이 가능하고 극한 환경에서도 작동해 산업용 로봇에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유압 기반 로봇 시스템을 자체 기술로 구현한 국내 기업은 KNR시스템이 사실상 유일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현대위아와 협동로봇을 공동 개발하고 있는 푸른기술도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로봇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위아는 국내 최초로 주차로봇 상용화에 성공했으며 물류로봇과 로봇관제(ACS) 시스템 개발에도 속도를 내는 등 그룹의 로봇 신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푸른기술은 2012년 국내 최초로 협동로봇 연구를 시작해 2016년 7축 협동로봇을 개발한 기업이다. 2021년 현대위아와 자동차 생산 로봇 '심포니-15'를 공동 개발한 바 있다.
현대차그룹에 자체 개발한 무인화 로봇을 공급 중인 러셀로보틱스 역시 주요 협력사로 주목받고 있다. 러셀로보틱스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1차 반도체 장비 협력사인 러셀의 자회사다. 모회사 러셀은 최근 반도체 장비 기업에서 로봇 기반 무인 자동화 시스템 분야까지 사업을 넓히고 있다. 러셀로보틱스는 무인운반로봇(AMR)을 개발·생산해 현대차뿐 아니라 SK하이닉스, CJ그룹 등에도 공급 중이다. 증권가에서는 러셀로보틱스가 2022년 한국투자증권과 IPO 주관 계약을 체결한 점에서 향후 상장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최재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러셀로보틱스는 자체 개발한 무인화 로봇과 소프트웨어 기술력을 국내 주요 그룹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점찍은 로봇 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핵심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 미국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인공지능(AI)에 이어 '로봇산업'을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지정과 대규모 지원을 검토 중이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최근 로봇 업계 최고경영자(CEO)들과 회동에 나서기도 했다. 증권가에선 미국 정부의 명확한 육성 의지까지 확인되면서 글로벌 로봇 산업 성장성이 재부각될 것으로 보고 있다. 태윤선 KB증권 연구원은 "고령화와 인건비 상승, 안전 규제 강화로 로봇 도입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며 "국내에서도 대기업의 로봇 기업 인수와 정책 지원이 이어지는 만큼 관련 기업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BC로 미래 연 LG그룹, 마스가 선두에 선 한화그룹…빅베팅 낙수효과 수혜기업 '어디'
LG그룹은 2028년까지 5년간 100조원 규모의 국내 투자를 단행한다는 계획이다. 이 중 50조원 이상은 미래 성장사업과 신사업에 집중 투자할 방침이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선제적으로 확보해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복인이다. 기업가치 상승을 주도하는 주인공은 그룹 총수인 구광모 회장이다. 구 회장은 최근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고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에 자원을 집중 투자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구 회장이 점찍은 미래 성장 사업은 'ABC'(AI·바이오·클린테크)로 향후 이들 분야에 천문학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덕분에 현재 해당 분야와 관련해 LG그룹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협력사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낙수효과 기대감 때문이다. LG그룹의 AI 사업 협력사로는 유라클이 대표적이다. 유라클은 LG AI연구원과 공동으로 AI플랫폼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LG AI연구원은 개발한 자체 AI 모델 '엑사원'(EXAONE)'이 재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지난 8월 국가대표 AI 5개사로 선정됐다. 유라클은 '아테나(Athena)'라는 한국어 특화 소형언어모델(sLLM)을 기반으로 한 AI 플랫폼을 통해 LG AI연구원과 공동 연구 개발을 착수 중이다. 키움증권 김학준 연구원은 "엑사원은 저비용 고성능 추론 모델로 글로벌 업체들의 중요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고 평가했다.
바이오 부문에서는 삼양그룹 계열사 삼양바이오팜이 LG그룹의 주요 협력사로 꼽힌다. 삼양바이오팜은 2023년부터 LG화학과 mRNA 기반 항암신약을 공동 개발하고 있으며 후보물질 발굴부터 비임상·임상 개발, 글로벌 상용화 전략까지 협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클린테크 분야의 경우 LG전자가 직접 사업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말 전담 부서인 ES사업본부를 신설하고 AI 데이터센터 냉각 시스템, 원전, 메가팩토리 등 신성장 사업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고성능 시스템 에어컨 '멀티브이 아이'를 중심으로 초고효율 냉난방공조(HVAC)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5월 데이터센터 SI 전문기업 GS ITM과 데이터센터 냉각 솔루션 및 IT 인프라 공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한 바 있다.
한화그룹 역시 조선·방위사업 분야에 향후 5년 간 11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조선업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필리조선소에서 주문 받은 선박 일부를 한화오션 거제조선소에서 건조하겠다는 구상이다.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은 "필리조선소에서 수주한 선박은 비용을 기준으로 전체의 40% 정도는 한국에서 공급될 것이다"며 "국내 기자재 업체들과 함께 성장하는 기회를 마련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기자재 사업을 영위하는 한화오션의 1차 협력사로는 ▲대림S&P ▲동화엔텍 ▲삼녹 ▲영창목재사업 등이 대표적으로 꼽힌다.
대림S&P는 선박 및 해양플랜트용 부품·구조물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중소 조선기자재 업체로 선체 구성품과 다양한 금속 가공품을 공급하고 있다. 동화엔텍은 1980년 설립된 열교환기 전문 기업이다. 조선 및 해양플랜트에 사용되는 열교환기·증발기·냉각기 등 핵심 기자재를 생산하며 LNG선·친환경 선박 수요 확대에 맞춰 공급 범위를 넓히고 있다. 삼녹은 선박용 파이프 스풀·선체 금속 구조물 제작을 주력으로 하는 플랜트·조선 부품 제조기업이다. 영창목재산업은 선박 내부 인테리어와 갑판재·선실용 목재 패널 등 선박용 목재 기자재를 공급하는 업체다.
한화오션은 지난 7월부터 이들 협력사와 함께 자사의 프로세스 혁신 경험과 공정 효율화 노하우를 공유하는 'TOP 상생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관련업계 안팎에선 조선·해양플랜트 산업 특성상 기자재 업체들의 기술력과 납품 안정성이 전체 생산성과 직결되는 만큼 1차 협력사들에 대한 지원은 국내 조선 공급망 경쟁력 안정화 차원에서도 의미가 큰 프로젝트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의 대규모 투자는 단순히 그룹 내부 성장을 넘어 산업 전반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며 "이번 대기업들의 국내 투자는 공급망 내 중소·협력업체의 기술 고도화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어 "이번 투자 사이클이 한국 제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강화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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