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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건설업계 생존 공식이 뒤바뀌고 있다. 한때는 대기업 계열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안전판'처럼 여겨졌던 건설사들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미분양 누적 △금리 고착화 '삼중고(三重苦)'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흔들리고 있다. 연간 수주 30조원을 넘기는 건설사가 있는 반면, 분기 적자만 1900억원에 달하는 곳도 동시에 존재한다. 같은 '대기업'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숫자들이 어느덧 정반대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건설사 생존 기준은 더 이상 '어느 그룹에 속했느냐'가 아니다. 이젠 '그룹 없이도 외부 수주와 이익, 현금흐름을 숫자로 증명할 수 있느냐'가 회사 존폐를 가르는 결정적 기준이 되고 있다.
국내 건설업계 전반이 PF 경색·미분양 확대·고금리 장기화 '삼중 위기'에 직면하면서 대기업 계열 건설사 사이에서도 뚜렷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롯데건설·포스코이앤씨·신세계건설처럼 △대규모 PF 우발채무 △연속 영업적자 △안전사고 후유증에 직면한 이른바 '취약 생존군'은 위기 충격이 그룹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어 관련 시장 내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번 3부에서는 △롯데건설 △포스코이앤씨 △신세계건설 중심으로, 이들이 직면한 구조적 리스크와 향후 생존 가능성을 핵심 수치를 통해 짚어본다.
◆PF리스크 "6조8000억→3조6000억" 줄었지만 여전히 '체급 대비 과중'
롯데 – 공정거래위원회 2025년 기준 재계 5위
롯데건설 - 2025년 시공능력평가 8위
Ⓒ 롯데건설
롯데건설은 오랫동안 복합개발·호텔·상업시설·주거 등 롯데그룹 핵심 개발사업을 수행하며 안정적 성장곡선을 이어오고 있다. 202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상각 전 영업이익(이하 EBITDA) 연간 5000억원대 △부채비율 200%대 중반대로 관리되며 재무적으로 '무난한 대형 건설사'로 평가받았다.
변곡점은 PF 시장이 급격히 경색된 2022년이다. 롯데건설 보증·자금보충 등 PF 우발채무가 6조8000억원까지 늘어나며 '국내 건설사 가운데 최고 수준 PF 리스크'로 지목된 것이다. 당시 시장에서는 이른바
'부도설'까지 나돌 정도로 긴장감이 고조됐다.
이후 그룹 차원 유동성 지원 및 PF 감축 작업에 속도가 붙으면서 PF 우발채무는 올해 3분기 말 기준 3조1337억원까지 떨어졌다. 2년여 만에 3조원 가량을 털어낸 셈이다. 다만 자기자본을 여전히 크게 웃도는 규모라는 점에서 "줄이긴 했지만 체급 대비 부담은 여전하다"라는 게 업계 시선이다.
수익성 지표도 크게 훼손됐다. 롯데건설 EBITDA는 고점 대비 절반 수준으로 쪼그라들었고, 이자보상배율은 1배 아래로 떨어져 영업이익만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이다. PF 의존도가 높았던 자체사업 구조가 시장 변동성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나타내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롯데건설은 여전히 '반등 여지를 품고 있다'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그룹 차원에서 호텔·백화점 등 비핵심 자산 매각,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통해 수조원대 유동성을 확보했고, 호텔·백화점·물류센터 등 내부 개발 수요도 꾸준하다. 나아가 △PF 구조조정 △외부 수주 확대 △브랜드 정상화 등이 뒷받침된다면 실적 개선 국면으로 돌아설 수 있다는 의견이다.
◆'안전 리스크→충당금 폭증' 수천억 손실 감수하고 체질 전환 모색
포스코 – 공정거래위원회 2025년 기준 재계 6위
포스코이앤씨 - 2025년 시공능력평가 7위
Ⓒ 포스코이앤씨
포스코이앤씨(舊 포스코건설)는 광양·포항 제철소 인프라와 대형 플랜트, 해외 프로젝트 등을 수행하며 오랫동안 '안정적 EPC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0년대 중반까지도 연간 기준 수천억원대 영업이익을 꾸준히 기록하며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던 중 올해 들어 기류가 급변했다. 경기 광명
신안산선 복선전철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붕괴 사고를 비롯해 인프라 현장 사고가 잇따르면서 '포스코=안전·품질 선도 그룹'이라는 상징성이 크게 흔들린 것이다.
숫자도 이를 증명하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2025년 한 해 동안 수천억원대 영업손실을 감수하는 상황에 놓였다. 3분기 누적 기준 2600억원 안팎 영업적자를 기록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사고 수습과 재시공, 공기 지연 보상, 추가 안전비용 등을 감안하면 연간 손실 규모가 4000억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특히 인프라 부문은 공사원가 재추정과 충당금 확대가 맞물리며 실적 부담이 집중되고 있다.
다만 포스코그룹 전체로 보면 여전히 연간 수조원대 영업이익과 탄탄한 현금창출력을 유지하고 있어 건설 부문 손실이 그룹 유동성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포스코이앤씨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사업 구조 자체를 손질하는 데 나서고 있다.
전통 제철소·플랜트 중심에서 △친환경 인프라 △스마트 물류 △도시개발 고부가 프로젝트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안전관리 조직과 공정관리 체계를 개편하는 데 대규모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 '안전·품질 중심 체질'로 재정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3년 연속 적자·부채비율 급등…노출된 '내부 의존' 그늘
신세계 – 공정거래위원회 2025년 기준 재계 11위
신세계건설 - 2025년 시공능력평가 33위
신세계건설이 완공한 대전 사이언스콤플렉스. © 신세계건설
신세계건설은 백화점·이마트·스타필드 등 신세계그룹 상업·물류·복합 개발을 전담하며 성장한 회사다. 그룹 내부 물량 비중이 높아 실적 변동성이 상대적으로 적은
'전형적 그룹형 건설사'로 꼽힌다.
하지만 2022년을 기점으로 유통업 경기 둔화와 오프라인 투자 축소, 복합개발 프로젝트 지연 등이 겹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3년 연속 영업적자를 기록했으며, 해당 기간 누적 영업손실만 4000억원을 훌쩍 넘어선 것으로 파악된다. 매출도 3년간 약 5000억원 줄어드는 등 외형과 수익성 모두 이중으로 흔들렸다.
재무구조도 급속히 악화됐다. 신세계건설 부채비율은 한때 900%를 웃돌며 시장 우려를 키웠다. 다행히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을 통해 200% 안팎까지 낮추는 데에 성공했지만, 다시 200%대 중후반으로 올라선 상태다. 총차입금 역시 크게 늘어나면서 차입금 의존도는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으로 뛰었다.
근본적 문제는 비즈니스 포트폴리오에 있다. 신세계건설은 주택 브랜드 경쟁력과 정비사업 수주력, 해외 EPC 기반 모두에서 체급이 크지 않다. 내수 유통·상업시설 중심 내부 물량이 감소해 이를 대체할 외부 물량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결과적으로 '내부 의존 구조'가 외부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는 약점으로 노출된 셈.
물론 신세계건설도 대응에 나서고 있다. 최근에는 △물류센터 △PB(자체 브랜드) 제조 인프라 △도심형 복합 리모델링 등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은 영역으로 사업을 옮기고 있다. 아울러 계열사와의 통합 개발·리모델링 수요를 묶어 수주 효율을 높이는 등 체질 개선을 시도하고 있다.
다만 이미 누적된 손실과 레버리지 부담을 감안, 가시적 실적 회복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롯데건설·포스코이앤씨·신세계건설은 서로 다른 체급과 출발점을 가진 회사들이지만, 공통적으로
'그룹 후광이 더 이상 안전판이 되지 않는 시대'를 의미한다.
롯데건설은 한때 6조8000억원까지 치솟은 PF 우발채무를 3조6000억원 수준까지 줄였지만, 여전히 자기자본을 웃도는 PF 잔액을 떠안고 있다. 포스코이앤씨는 신안산선 사고 이후 수천억원대 영업손실과 대규모 충당금을 감내하며 '안전·품질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신세계건설의 경우 △3년 연속 영업적자 △4000억원대 누적 손실 △900%까지 치솟은 부채비율 등 '내부 물량 의존 모델' 한계를 적나라하게 나타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역설적으로 이번 위기는 각 그룹이 건설 부문 체질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며 "고위험 PF를 구조조정하고 안전·품질 중심 경영 시스템을 재정비하며 내부 일감 의존도를 줄여 외부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로 전환한다면, 다시 그룹 성장축으로 복귀할 여지가 충분하다"라고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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