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 빗장을 풀었다. 2014년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외국인 관광객 300만 명을 넘어섰다.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 받아든 성적표치고는 꽤나 인상적이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순한 숫자 채우기를 넘어, 관광객들이 지갑을 열고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가 진짜 승부처이기 때문이다.
부산관광공사와 (사)부산미래시민포럼은 지난 8일 동래구 농심호텔에서 ‘글로벌 관광도시 부산, 300만 시대를 넘어 500만 시대로’ 행사를 열고 부산 관광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현장에서 공개된 데이터는 고무적이다. 올해 10월 기준 부산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301만 9,164명. 전년 대비 23% 늘어난 수치다. 더 눈여겨볼 대목은 지출액이다. 외국인 관광 지출액이 31.5% 증가하며 전국에서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단순히 와서 구경만 하는 것이 아니라, 부산에서 먹고, 자고, 즐기는 데 돈을 쓰고 있다는 방증이다.
관광객의 국적 분포가 다양해진 점도 긍정적 시그널이다. 과거 중국인 단체 관광객(유커)에 목매던 구조에서 벗어났다. 대만(56만 명), 중국(48만 명), 일본(43만 명), 구미주(37만 명) 등으로 방문객이 고르게 분산됐다. 이는 사드 보복이나 엔저 같은 외부 변수에도 부산 관광이 쉽게 흔들리지 않을 '기초 체력'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이정실 부산관광공사 사장은 "지금의 300만 시대는 단순 회복이 아닌 구조적 성장 단계로 진입했다는 신호"라며 2028년 500만 명 유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이날 전문가 토론 패널로 나선 박상용 주식회사 씨앤 대표(부울경관광벤처협의회 회장)의 분석은 날카로웠다. 그는 현재의 성장을 '목적지 도시(Destination City)'로의 전환으로 해석했다.
박 대표는 "과거 부산이 서울을 방문한 뒤 들르는 경유지였다면, 지금은 대만 등지의 개별 여행객(FIT)이 한국의 첫 여행지로 부산을 선택하고 있다"고 짚었다. 관광객들이 부산을 '찍고 가는' 곳이 아니라 '머무는' 곳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는 500만 시대를 위한 과제로 '기술'과 '로컬'의 결합을 꼽았다. AI(인공지능)와 AX(AI 전환) 기술로 예약, 결제, 이동 등 관광 서비스의 표준화를 이뤄내 불편함을 없애야 한다는 것. 동시에 콘텐츠만큼은 철저히 '부산다움'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기술로 서비스의 질을 높이되, 부산만의 로컬 브랜드와 스토리에 장인정신, ESG 가치를 입혀야 한다"며 "정책과 인재, 기술, 브랜딩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릴 때 진정한 질적 성장이 가능하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박 대표가 이끄는 주식회사 씨앤은 IATA 공인 글로벌 트래블 매니지먼트 기업으로, 기업 출장과 MICE 등에서 데이터 기반의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현장의 실무 경험에서 우러나온 그의 조언은 단순히 구호를 외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실행 전략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이날 행사는 부산 관광 발전에 기여한 15개 팀에 대한 시상과 네트워킹으로 마무리됐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지만, 2028년까지 200만 명을 더 유치해야 한다는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인프라 부족, 오버투어리즘(과잉 관광) 우려, 그리고 수도권과의 격차 해소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부산이 '반짝 인기'를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관광 허브로 안착할 수 있을지, 지금부터가 진짜 시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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