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보도…"美, 日 지원하면서 中과 무역분쟁 휴전 유지방안 모색"
"中, 신고립주의 활용해 다극 체제 굳히기…남미·북극서도 공세"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일 갈등 고조로 딜레마에 직면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12일 보도했다.
SCMP는 지난달 7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 이후 중일 갈등의 파고가 갈수록 높아지는 가운데 트럼프 미 행정부가 동맹국 일본을 지원하면서도 중국과의 무역분쟁 휴전을 유지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의 공세 속에 중일 갈등 국면이 한 달을 넘겼지만 당사국 간 해결이 먼저라면서 사실상 방관해온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이제 개입 여부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초 재집권 후 미국 우선주의와 실용주의에 바탕을 둔 이른바 '신고립주의'를 표방하며, 전통적 동맹 관계의 가치보다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중시하는 행보로 일관해온 트럼프 미 대통령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다.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경제 성적'에 부쩍 신경 써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중국과의 격렬한 갈등과 대립 끝에 얻은 1년간 무역 분쟁 휴전 속에서 경제적 이득을 극대화할 미중 관계 관리를 우선시해왔다.
그러나 중일 갈등 고조로 동맹국 일본의 안위는 물론 대만 문제가 꼬일 수 있는 상황을 극복해야 할 과제가 미 행정부에 주어졌다는 분석이다.
이런 가운데 미 행정부의 고율 관세와 첨단반도체 기술 제한 압박에 희토류 수출통제로 맞서 1년 무역분쟁 휴전을 끌어낸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신고립주의를 최대한 활용해 남미·북극 등에서도 '다극 체제'를 공고히 하는 데 주력하는 형국이다.
중국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공격 압박이 지속되는 가운데 중남미·카리브해 국가들에 정치적 조건 없는 원조 약속을 했는가 하면 러시아와 함께 북극에서 군사·경제·과학적 영향력을 급속히 확대하고 있다.
SCMP는 미 하원 미중전략경쟁특별위원회의 민주당 간사 라자 크리슈나무르티 의원이 미 행정부에 중국의 북극 공세에 대한 시급한 대응을 촉구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중국은 특히 다카이치 일본 총리의 대만 관련 발언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벗어난 레드라인 침범 발언으로 규정하고 한 달여 전례 없는 강공을 펼쳐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은 전날 일본 내 규모 7.5 지진을 이유로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경고령을 발령했고, 지난 9일에는 중국·러시아 폭격기들이 일본 영공 부근을 비행해 일본을 자극했다. 중국은 지난 4주간 일본을 상대로 경제·무역·외교·군사·문화 분야에서 전방위적 압박을 가해왔다.
외교가에선 1년간 무역분쟁 휴전으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발을 묶은 중국이 트럼프 미 대통령의 신고립주의를 최대한 활용, 일본을 비롯한 여타 국가의 대만 문제 개입을 원천 차단할 목적으로 일본을 겨냥해 과도한 대응을 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도 대만 유사시 개입 발언을 철회하라는 중국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여왔으며, 특히 무력을 통한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일본 방위성은 지난 9일 중국·러시아 폭격기들의 일본 영공 근접 비행에 맞서 자위대 군용기가 미국의 핵무기 탑재 가능 폭격기와 함께 동해 상공을 비행했다면서 "일본과 미국은 무력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을 저지하겠다는 강력한 결의를 재확인하고 준비 태세를 점검했다"고 밝혔다.
사실 일본 내에선 다카이치 총리 발언 이후 촉발된 중일 갈등에 대한 미국의 미온적인 행보에 다소 실망하고 있으나, 중일 갈등 해결을 위해선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일 갈등 와중에 다카이치 총리에게 '대만 문제로 중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했는가 하면 대만 방어와 관련해서도 불투명한 태도를 보여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사용에 반대한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니냐는 오판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일본은 중일 갈등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개입은 물론 분명한 입장 표명을 희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지난 10일 다카이치 일본 총리가 중국과의 갈등 문제를 풀기 위해 이른 시일 내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을 희망한다는 의지를 직접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런 맥락에서다.
그러나 현재로선 트럼프 미 행정부가 어떤 선택을 할지를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우선 SCMP는 그동안 미 행정부가 중일 갈등에 대해 거리를 둬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물론 각료도 일본에 대해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았다고 짚었다.
상하이 외국어대학 일본연구센터의 롄더구이 주임은 "1년간 미중 무역분쟁 휴전을 달성한 뒤 내년 4월 방중 예정인 트럼프 대통령은 그토록 공들여 안정시킨 미중 관계를 훼손할 리 없다"며 "미 행정부가 현재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지 예측하기 어려울뿐더러 다음 행보를 예상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홍콩대 중국현대세계센터의 박사후 연구원인 판번은 "미국은 일본의 가까운 동맹국으로서 정책 소통과 위기관리 등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 행정부가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외신보도를 보면 근래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 대사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중일 갈등과 관련해 일본을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으며, 이날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이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방위상과의 전화통화에서 중국군 항공모함 함재기의 일본 자위대 전투기 대상 '레이더 조준' 사건과 관련해 일본 지지를 표명해 눈길을 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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