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빠르게 증가하는 방한 수요에 맞는 공급망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한국 여행 수요는 늘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 있는 기업들은 판로 확보에 애를 먹는 상반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관광 시장으로 새롭게 진입한 지역 기업과 체험 사업자, 의료, 웰니스, 뷰티 등 다양한 업종의 중소형 기업 대다수가 글로벌 OTA 등 플랫폼이 요구하는 운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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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컬 관광기업, 글로벌 시장에 문을 두드리다
이 병목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관광공사(공사)는 ‘인바운드(방한 관광) 마케팅 지원 서비스’를 올해 처음 도입했다. 외국인 관광객(외래객) 유치에 필요한 마케팅·홍보부터 상품화, 운영 체계를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쉽게 말하면 해외에서 한국 여행·체험·의료·뷰티·숙박 상품 구매의 전 과정을 지원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다.
방한 관광 마케팅 지원 서비스는 도입 첫해 만에 상품화와 해외 협업 확대 등 가시적인 성과를 내며 업계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지역 기반 관광기업의 운영 기반을 정비하고, 각기 다른 글로벌 시장 진입 기준과 절차를 매뉴얼화, 표준화한 결과다.
지난 8~9월 전국 6개 권역에서 열린 설명회엔 총 307개 기업, 463명이 참석했다. 현장에선 단순 상담 이상의 변화가 목격됐다. 설명회 참여 기업들은 글로벌 플랫폼이 요구하는 이미지 품질, 환불 정책, 예약 흐름, 다국어 설명의 온도 차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해외 진출 가능성 확인에 앞서 ‘어떻게 기준을 충족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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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한 체험기업 대표는 상담을 마친 뒤 “좋은 콘텐츠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은 있었지만 글로벌 기준 앞에서는 기본 문서를 다시 쓰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공사 담당자 또한 “지역 기반 기업들이 ‘우리도 해외 고객을 받을 수 있다’는 인식 전환을 이룬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평가한 뒤 “OTA와의 상담을 통해 막연하게 느끼던 글로벌 플랫폼 입점 기준과 절차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예상보다 빠른 후속 성과도 내고 있다. 부산에서 체험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원더투어는 대만 KKday와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에 맞춰 출시한 투어 상품이 홍콩 등 해외에 있는 잠재 외래객의 관심을 끌면서 실제 상품 구매로 이어졌다. 강현석 원더투어 대표는 “해외에서 예약 문의 이메일을 받고 처음엔 스팸 메일로 의심했다”며 “이후에도 다양한 국적의 외래객으로부터 상품 문의가 이어져 놀랐다”고 말했다.
태권도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엑스티(XT)는 설명회에서 상담 후 팸투어를 진행한 태국 여행사와 본격적인 협업을 논의 중이다. 의료·뷰티 기업들도 영문 설명 개편과 서비스 프로세스 재설계를 진행하며 플랫폼 등록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공사 해외 지사와 협력해 영국 WTM·프랑스 ILTM 등 프리미엄 B2B 박람회를 활용한 지역 기업의 판로 개척 지원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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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플랫폼 기준에 부합하는 경쟁력 갖춰야
상담 이후 ‘운영 기반 격차’는 해결해야 할 과제다. 예약 시스템이 없고 환불 기준이 모호하거나 다국어 설명이 부정확해 상품 등록까지 이어지지 않는 사례도 적지 않아서다. 공사 결과 보고서에서도 기업들은 ‘글로벌 기준 충족의 어려움’, ‘디지털 마케팅 역량 부족’, ‘파트너십 경험 부족’을 공통적인 애로사항으로 꼽았다.
정광민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은 “한국의 문화와 관광 콘텐츠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외래객 대상 서비스 제공을 위한 운영·언어·디지털 인프라는 아직 초기 구축 단계”라며 “글로벌 플랫폼은 문턱이 낮아 보이지만 입점이 되더라도 상품 판매를 위한 다양한 운영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빠르게 도태되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한국과 경쟁 관계에 있는 국가들도 입체적인 인바운드 마케팅 지원에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는 관광청(STB)이 ‘비즈니스 개선 기금(BIF)’과 ‘경험 고도화 기금(ESF)’을 운영해 기업의 상품 개발과 서비스 품질 개선을 지원한다. 일본은 지역 DMO를 중심으로 구축한 체험관광 기반이 인바운드 여행 수요를 늘리는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 대만도 체험형 관광 육성 프로그램과 OTA 협력 구조를 통해 기업의 진입 장벽을 낮추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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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올해 방한 관광 마케팅 지원의 첫발을 뗐지만, 상담 이전 단계의 운영 기반을 끌어올리는 체계는 아직 미흡하다는 평가다. 전문가들은 향후 2~3년을 방한 관광 시장의 체질을 결정지을 분기점으로 보고 있다. 윤혜진 경기대 관광개발경영학과 교수는 “수요가 늘어도 공급 체계를 갖추지 못하면 체류와 소비,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며 “글로벌 관광 시장의 치열한 인바운드 마케팅 경쟁에서 한국이 살아남으려면 운영 기반을 빠르게 고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훈 한국관광공사 국제관광본부장 직무대행은 “내년엔 운영 기반 지원과 콘텐츠 고도화, 교육 프로그램 등 다층적 지원을 통해 기업의 글로벌 진출 역량과 수준을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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