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머니=홍민정 기자] 65세 이상 고령층의 대다수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지만, 실제 임종 과정에서는 상당수가 본인 의향과 달리 연명의료를 이어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자 스스로가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혔음에도 제도·관행상 연명의료가 자동적으로 시행되면서, 극심한 통증과 높은 의료비 부담을 떠안는 ‘선호와 현실의 괴리’가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명의료는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상태에서 시행되는 의료 행위를 뜻한다.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수혈, 체외생명유지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 7가지가 여기에 포함된다. 현행 의료법상 환자가 연명의료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가 명확히 확인되지 않는 한, 임종 직전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연명의료를 받도록 되어 있다.
한국은행은 11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공동 심포지엄을 열고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연명의료, 누구의 선택인가: 환자선호와 의료현실의 괴리, 그리고 보완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한국은행 경제연구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건강보험연구원이 공동 작성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최근 우리 사회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고 있다. 연명의료 거부 의향을 미리 문서로 남기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지난해 기준 300만 명을 넘어섰다. 2023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층의 84.1%는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응답해, 고령층 다수가 ‘무의미한 연장 치료’에 거부감을 드러낸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정반대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연명의료를 받는 환자 수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연명의료 환자 수는 2013년 약 10만 명에서 2023년 약 20만 명으로 10년 새 두 배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받은 환자의 비중도 55%에서 67%로 상승했다. 그 결과 2023년 기준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중단한 비율은 16.7%에 그쳤다. 연구진은 “적지 않은 환자들이 본인의 선호와 관계없이 임종 직전까지 연명의료 시술을 경험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환자의 의향과 달리 연명의료가 확대되면서 고령층 환자가 겪는 육체적 고통은 더욱 커지고 있다. 연구진이 연명의료에 포함되는 7가지 시술을 대상으로 VAS(시각통증척도·통증 강도를 0~10까지 수치로 표현) 등을 분석한 결과, 연명의료 환자가 느끼는 신체적 고통은 단일 질환이나 개별 시술에서 경험하는 최대 통증의 약 3.5배 수준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 역시 가파르게 증가했다. 연명의료 환자가 임종 전 1년간 지출하는 ‘생애말기 의료비’ 평균은 2013년 547만 원에서 2023년 1088만 원으로 약 10년 만에 두 배로 뛰었다. 이는 65세 이상 가구 중위소득의 약 40% 수준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여기에 간병인 고용 등 직접 비용과 가족의 소득 상실, 돌봄 부담 같은 간접 비용까지 더해지면서, 유가족이 떠안는 경제적·정서적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진은 현재 우리 사회가 “환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연명의료에 의료자원이 투입되고, 정작 수요가 높은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에는 자원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구조적 불균형’ 상태”에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이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의료체계 전반에서 불균형과 비효율은 더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연명의료가 환자의 선호에 보다 충실하게 맞춰질 경우, 건강보험 재원을 포함한 사회적 의료자원의 일부를 호스피스·완화의료, 간병 지원 등 환자가 실제로 원하는 생애말기 돌봄 서비스로 재배치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연구진은 “환자 스스로의 선택권을 보다 두텁게 보장하면서, 생애 마지막을 ‘치료’가 아닌 ‘돌봄’ 중심으로 재구성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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