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청회 백가쟁명…문 前대행 '8명'·김 前대법관 '12명' 제시…박은정 前권익위원장 "하급심 강화"
법원행정처장 지낸 조재연 "상고 걸러내야 대법 제기능"…차병직 "늘려도 효과 있나 의문" 지적도
(서울=연합뉴스) 이미령 기자 = 여당에서 추진하는 '사법개혁'에 관한 의견을 수렴하고자 대법원이 주최한 공청회에서 개혁안의 핵심인 '대법관 증원'을 놓고 법조계 권위자들의 의견이 엇갈렸다.
문형배(사법연수원 18기) 전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은 상고심사제 도입을 전제로 8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하는 안을 제안했고, 김선수(17기) 전 대법관은 민주당 사법개혁 태스크포스(TF)가 내놓은 12명 증원안에 찬성하는 입장을 내놨다. 대법관 수를 늘리더라도 국민의 권리 측면에서 실효성이 없다거나, 하급심 강화가 우선이란 주장도 나왔다.
대법원 소속 법원행정처는 9일 서초동 서울법원종합청사 청심홀에서 법률신문과 공동 주최로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방향과 과제' 3일차 공청회를 열었다.
공청회 마지막 순서로 진행된 이날 '100분 토론'에는 김 전 대법관과 문 전 대행, 조재연(12기) 전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박은정 전 국민권익위원장(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등 각계 권위자들이 참석해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고법 부장판사를 지내다 헌법재판관이 된 문 전 대행은 "상고심사제와 변호사 강제주의 도입을 전제로 총 8명을 단계적으로 증원할 것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개정안 시행 1년 뒤에 대법관 4명을 늘리고, 시행 3년 뒤에 4명을 추가해 소부는 현행 3개에서 4개 체제로 전환하고 연합부 2개, 상고심사부 1개를 두자는 안이다.
상고심사부에서 상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면 상고 불수리 결정으로 본안에 회부되는 사건 수를 줄일 수 있다고 봤다. 이를 통해 대법원의 법률심 기능을 강화하고,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에 대한 불만을 해소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문 전 대행은 또 "3년 뒤면 총선을 한번 거친다"며 "총선을 통해 야당도 사법부 구성에 관여할 기회를 주는 게 제도의 수용을 위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선수 전 대법관은 민주당 TF안인 대법관 12명 증원 방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사법시험 27회 수석 합격자로, 대표적 진보 성향 법조인이자 참여정부 사법개혁 작업을 이끌었던 김 전 대법관은 지난 6월 법률신문 기고를 통해 대법관 증원에 대해 "하급심 강화라는 법원의 근본적 개혁 방향과 어긋나는 측면이 있다"며 우려 입장을 밝혔으나, 이날 토론회에서는 다소 결이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대법관 입장에선 주심 사건 수가 절반으로 감소하므로 지금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심도 있게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13명으로 구성되는) 연합부에서도 현재 전합보다 적극적으로 판례 변경 등을 통해 법령 해석의 통일을 기하는 기능도 강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증원 시기와 관련해서도 향후 3년에 걸쳐 4명씩 증원하는 민주당 안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장기간에 걸쳐 증원하면 과도기적 상태 지속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재명 정부에서 22명의 대법관이 임명되는 데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도 "(모든) 대통령이 평균 21.6명을 임명하게 돼 이는 평균적인 수치"라며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나아가 "대법관 증원과 하급심 강화는 배치되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투입할 수 있는 공적 자원이 100이라면 대법관 증원을 통한 상고심 역량 강화와 하급심 강화 중 어떻게 배분하는 게 좋겠느냐'는 공청회 참석 대학생의 질문에는 "계량적으로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며 "방향으로서 2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입장이 달라진 배경을 묻는 말에는 "과거에 12명 증원안도 제시했는데 증원 반대 부분만 강조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반면 나머지 토론자들은 대법관 수를 늘리더라도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거나, 증원을 하더라도 4명 수준이어야 한다는 입장이 주를 이뤘다.
사시 22회 수석 합격 후 판사 생활을 하다 변호사로 나섰던 조재연 전 대법관은 "심리불속행이든 상고 심사든 일정 방식으로 대법원에 올라오는 사건을 거르지 않으면 대법원의 기능이 작동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다만 과거 상고를 제한하는 방식의 상고허가제가 국민의 반발에 부딪혀 좌초된 점을 언급하며 현재 소송법 체계에 따라 상고이유서만으로 상고 사유에 해당하는지를 본안 전 심사를 통해 판단하고 해당하지 않는다면 상고기각 결정을 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단기간 내 많은 대법관을 증원하면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건 대부분 전문가의 일치된 의견"이라며 "대법관 증원을 한다면 4명, 1개 소부 정도 하면서 효과를 검토하고 단계적으로 논의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대 로스쿨 교수·이화여대 법학과 교수 출신으로,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지냈던 박은정 전 권익위원장은 상고제 개편의 근본적 대책은 하급심 강화라고 강조했다.
박 전 위원장은 "주요국들이 상고 제한 제도를 두는데 왜 유독 우리나라에선 국민적 이해를 구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가. 그 이유는 결국 하급심에 대한 신뢰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대법관 수를 늘린다면 점진적으로 소부 1개에 해당하는, 상고심사부를 담당할 수 있는 정도로 우선 나아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도 하급심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차병직 변호사(15기·법무법인 클라스 한결·법률신문 편집인)는 "현재 상고심 사건 1건에 주어지는 시간이 55초인데 대법관 수를 2배로 늘리면 1분 50초로 늘어난다. 그러면 실질적인 합의나 심리가 가능해지느냐"며 "대법관 증원을 아무리 한다 해도 국민의 권리구제 측면에서 그다지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상고제도, 대법관 수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가 본질적인지 상당히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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