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파주 한향림옹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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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다시보기] 36. 파주 한향림옹기박물관

경기일보 2025-12-11 13:40:0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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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옹기와 함께 숲을 거닐 수 있는 작은 야외 쉼터. 홍기웅기자

 

겨울밤 장독 뚜껑을 열고 코를 킁킁대며 동치미가 담긴 독을 찾던 유년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반세기 전만 해도 장독대는 서민들의 집은 물론이고 산속의 사찰과 궁궐에도 반드시 있었던 살림살이였다.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은 한향림옹기박물관(관장 한향림)을 찾았다. 산속에 놓인 장독대가 정겨운 옹기박물관에서 처음 만난 추억의 유물은 기다란 원통형 물건들이다.

 

“연통과 연가입니다.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연기를 배출하기 위해 만든 굴뚝은 연통과 연가로 이뤄져 있지요.” 최준석 학예사의 설명을 들으며 한옥 온돌방에서 연기를 배출하는 굴뚝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이처럼 ‘연가’는 굴뚝으로 빗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지붕 역할을 하는 물건이다. 새와 거북이 조각돼 있는 연가에서 옛사람들의 여유와 멋을 발견한다. 어릴 적 무심히 봣던 것을 나이가 들어 자세히 살펴보는 시간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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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향림옹기박물관 외관 전경. 홍기웅기자

 

■ 옹기에 쏟은 부부의 사랑

2004년 문을 연 옹기박물관은 본관인 옹기박물관과 분관인 현대도자미술관으로 이뤄진 도자 전문 사립박물관이다. 옹기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한향림옹기박물관은 어떻게 설립됐을까. 설립자이기도 한 한향림 관장은 대학에서 도자기를 만들던 시절에 옹기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도기나 자기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자연 친화적이고 역사가 긴 옹기에 마음이 끌렸다는 그의 고백이 놀랍다.

 

“프랑스 유학 시절 유럽의 여러 미술관과 박물관을 다니며 도자기 명품들을 봤어도 옹기가 지닌 매력을 넘어서진 못했습니다.” 1987년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한 관장은 전국을 돌며 눈에 띄는 옹기를 모으기 시작한다. 당시만 해도 옹기는 도자기에 밀려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드물었기에 약 1천500점에 이르는 아름답고 소중한 옹기를 수집한다. 기업체 대표였던 한 관장의 남편이 적극 도움을 준 것이 큰 힘이 됐다. 부부가 마음과 뜻을 모아 세운 박물관이라 그런지 더욱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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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옹기의 모습. 홍기웅기자

 

“옹기는 인류의 일상생활 속에서 같이 숨을 쉬며 살아온 물건이지요. 집마다 장독대에 있던 항아리가 바로 옹기입니다. 플라스틱 용기가 나오기 전까지 옹기는 생활필수품이었고 조상의 지혜와 일상적인 미의식이 담긴 물품입니다. 이런 옹기들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정감이 가고 자연스럽게 힐링이 됩니다.”

 

옹기의 가치를 제대로 보존하고 유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박물관을 설립한 한 관장은 작가로도 촉망받았다. 1998년에 연 개인전에서 ‘산’을 소재로 한 독특한 옹기 작품을 선보여 호평받았고 대학 교수직을 제의받았으나 작품 제작과 옹기 수집에 전념하는 길을 선택한다. 우리 고유의 옹기를 보존하고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쓰던 장독도 세월이 흐르면 문화재와 예술품이 될 수 있다는 그의 말에 귀 기울인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결국 예술을 누리는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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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백자가 유행했던 조선시대 말기 황해도 해주에서 제작된 '해주항아리'. 홍기웅기자

 

■ 팔도의 옹기를 만나다

한향림옹기박물관에 전시 중인 옹기의 대부분은 조선 후기인 1850년에서 1950년대 이전의 것들이다. 최 학예사의 안내로 팔도의 특색 있는 옹기와 마주한다. 지역마다 생김새가 다르고 개성이 뚜렷한 옹기를 한자리에서 만나는 시간이 즐겁다.

 

“우리나라 옹기는 지역의 일조량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합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처럼 일조량이 많은 경우 입구가 좁고 몸통이 불룩하지만 경기도의 경우 장에 더 많은 볕을 쪼이기 위해 넓은 입구와 일자형 몸통으로 제작됐습니다.” 입구가 넓은 것은 북부지방의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고 배가 부르고 입구가 좁은 적은 것은 남부지방의 항아리일 가능성이 높다. 전시실 입구 왼편에 경상도 옹기와 전라도 옹기가 나란히 전시돼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차이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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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옹기의 모습. 홍기웅기자

 

“경상도 옹기는 배가 부른 둥근 모양을 하고 있으며 전라도에 비해 문양이 적거나 단순하고 유약의 색은 어두운 갈색으로 진하며 바닥에 비해 입구가 좁아 안정감이 있습니다.” 전라도 옹기는 경상도와 달리 화려한 문양이 돋보인다. 전라도를 예향이라 불리는 까닭을 옹기도 보여준다. 충청도 옹기는 짐작했던 대로 경기도와 남부지방의 중간 형태다. 경기도 옹기에 비해 어깨 부분이 더 볼록하며 남부지방 옹기에 비해 입구가 더 넓다.

 

제주도 옹기의 특징은 무엇일까. “전국에서 유일하게 유약을 바르지 않고 제작되는 옹기로 철분이 많은 화산토로 만들어 붉은색을 띠고 있습니다. 바닥을 넓게 만들어 바람에 쉽게 넘어지지 않도록 했지요.” 입구가 넓고 어깨 부분의 경사도가 급한 모양의 옹기는 일조량이 적은 추운 날씨에 잘 견디도록 만든 강원도 옹기다. “강원도에는 산이 많은 탓에 운반이 쉽도록 작은 크기의 옹기가 많습니다.”

 

경기도의 옹기들이 전시실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서울과 경기도 옹기는 장독대에 많은 항아리들을 효율적으로 둘 수 있도록 홀쭉하게 만든 것이 특징입니다. 옹기 안으로 더 많은 햇볕을 받아 장이 익을 수 있도록 입구가 넓습니다.”

 

소나무의 송진을 모으던 용기 ‘송진독’은 식민지 시기 일제의 자원 수탈을 보여주는 특이한 유물이다. 두 팔을 벌린 모양의 간수통은 보기 드문 유물이다. 천일염을 이 간수통에 넣어 두면 간수가 나오는데 이 간수로 두부를 해 먹었다. 호롱불을 등잔에 넣었던 부엌등 같은 유물도 정겨운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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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금사면에 위치한 큰 가마를 축소한 모형. 홍기웅기자

 

■ 옹기, 흙으로 빚어 불로 만든 그릇

기획전이 열리는 2층에서 독불장군을 만난다. 5월에 개관한 기획전 ‘독불장군, 흙으로 빚어 불로 만든 그릇’은 박물관의 정성과 노력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콧수염을 기르고 상투를 튼 ‘이대장’과 더벅머리 청년 ‘박건아’가 반겨준다. 기획전의 등장인물 캐릭터는 최 학예사가 직접 그린 작품이다. 전주는 옹기 제작의 물적 지원을 담당하는 인물, 옹기대장은 옹기를 빚을 줄 아는 전문기술자로 옹기를 만들고 가마에 서리며 굽는 사람, 건아꾼은 옹기대장의 보조기술자로 흙 준비, 옹기 말리기, 시유, 옹기 보수, 운반 등 제작 전반의 일을 담당하는 사람이다. 최 학예사는 전통가마 모형을 만들기 위해 경기 여주시 금사면 ‘오부자옹기’를 찾고 제96호 국가문화유산 김창호 옹기장에게 직접 들은 전통 가마와 근현대 옹기장들에 관한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들려준다.

 

“아주 오래전부터 사람들은 흙으로 그릇을 빚어 사용해 왔습니다. 흙은 점성이 있어 조물조물 무엇이든 만들기 좋은 재료이지만 마르고 난 후 쉽게 부서집니다. 그러나 이런 흙에 열을 가하면 훨씬 가볍고 단단한 물질이 됩니다.” 인류가 고온의 불을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전에 없이 뜨거운 불을 만난 흙은 비로소 온전한 그릇이 됐다.

 

“불의 온도가 높아질수록, 불을 다루는 장인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그릇은 더욱 견고하고 아름다워졌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의 도기와 자기, 즉 도자기입니다.” 전통 방식으로 만들어진 옹기들은 우리 할머니와 어머니가 사용하던 생활용품이었다. 이 옹기들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누구와 함께 살다 여기까지 온 건지 각각의 옹기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려준다. 박물관에 있는 옹기들이 태어나던 시기, 한창 옹기 수요가 급증하던 1900년대를 전후한 그 시절 옹기를 만들던 사람들을 만나 그때 그 이야기들을 차분히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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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키링 색칠 및 제작 체험이 가능한 파주 한향림옹기박물관. 홍기웅기자

 

관람객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의 치열한 노력은 어떤 평가를 받았을까. 제11회 ‘자랑스러운 경기도 박물관인상’ 큐레이터상 수상(2015년)과 제17회 ‘자랑스러운 경기도 박물관인상’ 관장부문 수상(2021년)은 이를 대변하는 성과물이다. 국고지원사업 우수 박물관상을 수상하고 경기도 박물관미술관 활성화 유공표창을 받기도 했다. 관람객들의 마음을 사기 위한 한향림옹기박물관의 고민과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권산(한국병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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