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 도착 시간과 연락 시간을 대조하는 소름 돋는 꼼꼼함

내비게이션 도착 시간과 연락 시간을 대조하는 꼼꼼함

자동차의 엔진 소리가 잦아들고 주차장에 정적이 흐른다. 안전벨트를 풀기도 전에 휴대전화 화면이 밝게 빛난다. 마치 어딘가에 숨겨진 카메라로 지켜보고 있었던 것처럼 정확한 타이밍이다. 액정에 뜬 이름을 확인하고 통화 버튼을 누른다.

“도착했어?”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평온하다. 당신은 별생각 없이 “응, 방금 주차했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상대방의 다음 대사는 당신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든다.

“아까 출발할 때 내비 찍어보니까 45분 도착 예정이던데, 지금 52분이네. 7분 정도 늦었네? 차 많이 막혔어?” 그는 당신이 운전하는 동안 자신의 휴대전화로 동일한 경로를 검색하고 있었다. 도로의 정체 상황과 신호 대기 시간까지 계산된 기계의 예측 시간과 당신의 실제 도착 시간을 대조하기 위해서다.

이 소름 끼치는 꼼꼼함은 사랑이 아니다. 당신의 안전을 확인하려는 배려도 아니다. 그것은 당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오차 없이 통제하려는 병적인 집착이자, 당신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수사 기법이다.

현대의 기술은 편리함을 주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더 정교한 감옥을 지을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내비게이션의 도착 예정 시간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진리가 된다. 그 시간에서 벗어난 1분 1초는 모두 해명해야 할 ‘혐의’가 된다.

7분의 공백, 의심의 꽃이 피는 시간

7분의 오차. 누군가에게는 주차 자리를 찾느라 지하 3층까지 내려간 시간일 수 있다. 신호가 유난히 길었거나, 잠시 멍하니 좋아하는 노래를 끝까지 들었던 시간일 수도 있다. 하지만 통제광들에게 이 공백은 견딜 수 없는 의심의 씨앗이다.

그 7분 동안 당신이 누군가와 통화를 했을지도 모른다. 차를 세우고 다른 사람을 태웠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상상력은 언제나 최악의 시나리오를 향해 질주한다. 보이지 않는 시간은 곧 배신의 시간이 된다.

이런 심리를 가진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대상 영속성이 결여되어 있다.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대상이 변하지 않고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지 못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증해야만 안심한다. 그들에게 당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피의자다.

처음에는 그저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를 걱정해서 시간을 체크해 주는 것이라 착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검증 작업이 반복될수록 당신의 일상은 지옥으로 변해간다. 도로 위의 모든 변수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부터 당신은 긴장한다. 차가 막히면 내비게이션 화면을 캡처해서 전송한다. “지금 사고 나서 차가 밀려.”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내며 알리바이를 만든다.

신호에 걸려 멈춰 있을 때도 불안하다. 예정 시간보다 늦어지면 그가 또 추궁할까 봐 조바심이 난다. 안전하게 운전하는 것보다, 시간에 맞춰 도착하는 것이 더 중요한 미션이 된다. 이것은 연애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전자 발찌를 차고 사는 수감 생활이다.

자발적 피의자가 된 당신

더욱 끔찍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이 ‘대화’의 형식을 빌려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들은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 아주 차분하고 논리적인 척 묻는다. “아니,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궁금해서 그래. 길이 막혔으면 막혔다고 말을 해주면 되잖아.”

이 말에 당신은 말려든다.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 자신의 잘못처럼 느껴진다. 다음부터는 더 상세하게 보고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 당신은 스스로를 감시하는 간수가 되어간다.

자신의 무고함을 증명하기 위해 블랙박스 영상을 보내는 지경에 이른다. 그가 요구하지 않아도 먼저 사진을 찍어 보낸다. 나중에는 영상 통화로 주변을 360도 비추어 보여준다. “봐, 아무도 없잖아. 나 혼자잖아.”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당신이 아무리 완벽한 증거를 들이밀어도 그들의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비게이션 시간 다음에는 주행 거리를 체크할 것이다. 주행 거리 다음에는 하이패스 기록을 요구할 것이다.

그들의 불안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당신의 노력으로 채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 당신이 자신의 통제 하에 완벽하게 종속되어 있다는 확인이다.

당신이 그들의 기준에 맞춰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비뚤어진 안도감과 우월감을 느낀다. 이 관계에서 신뢰는 이미 깨진 지 오래다. 아니,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신뢰란 보이지 않는 순간을 믿어주는 힘이다. 증거를 요구하고 알리바이를 대조하는 관계는 비즈니스 계약 관계에서도 무례한 짓이다. 하물며 사랑하는 사이에서 이런 검열이 일상화되었다면, 그것은 폭력이다.

설명할 의무가 없는 자유

당신에게는 설명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차가 왜 늦었는지, 5분 동안 무엇을 했는지 일일이 보고하지 않아도 될 자유가 있다. 그 짧은 공백은 당신의 사생활이며,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다.

사랑은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지, 일상을 감시하고 보고받는 것이 아니다. 공유는 자발적인 즐거움이지만, 보고는 강제적인 의무다.

당신이 운전하는 동안 느꼈던 바람, 라디오에서 나온 노래, 스쳐 지나간 풍경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신 도착 시간을 맞추기 위해 엑셀을 밟아야 한다면 그 관계는 끝난 것이다.

내비게이션은 길을 안내하는 도구일 뿐이다. 그것이 당신의 정직함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기계의 알고리즘보다 당신의 말을 더 믿지 못하는 사람. 데이터의 오차 범위를 당신의 부정행위로 간주하는 사람.

그런 사람의 조수석에는 당신의 자리가 없다. 그의 꼼꼼함에 감탄하지 마라. 그것은 섬세함이 아니라 편집증이다.

당신을 숨 막히게 하는 그 치밀한 계산은 결국 당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족쇄가 될 것이다. 당신이 10분을 늦든, 30분을 늦든 “오느라 고생했어, 별일 없었어?”라고 물어봐 주는 여유.

그것이 정상적인 연인의 반응이다. 왜 늦었느냐고 따져 묻기 전에, 오는 길에 사고는 없었는지 걱정하는 마음. 그것이 진짜 사랑이다.

지금 당신의 연인이 도착 시간을 분 단위로 체크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 오차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면 당장 그 차를 돌려라.

그가 기다리는 목적지는 따뜻한 집이 아니라, 당신을 심문하기 위해 불을 켜두고 기다리는 취조실이다. 그 취조실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지 마라.

당신의 시간은 온전히 당신의 것이다. 중간에 어딘가로 샐 수도 있고, 잠시 멈춰 설 수도 있다. 그 자유로운 궤적을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인생을 맡기기에는, 당신은 너무나 존엄한 존재다.

전화를 끊어라. 그리고 내비게이션을 꺼라. 목적지 없이, 시간 제한 없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그저 달리고 싶은 곳으로 핸들을 꺾어라.

그때 비로소 당신은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그 해방감이 당신에게 말해줄 것이다. 그동안 당신이 얼마나 좁은 감옥 속에 갇혀 있었는지를.

By. 나만 아는 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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