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치마를 단속하는 남자 심리
백화점 조명 아래서 몇 번이고 거울을 비춰본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기장, 몸의 선을 따라 흐르는 실루엣. 새로 산 원피스는 꽤 마음에 든다. 오랜만의 데이트라 조금 들뜬 마음으로 향수를 뿌리고 현관을 나선다.
약속 장소에 도착해 그를 만나는 순간이다. 반가움이 스쳐야 할 그의 눈동자가 당신의 눈이 아닌 다리로 향한다. 미간이 찌푸려지고, 입꼬리가 미세하게 내려간다. 공기의 온도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치마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 “지나가는 남자들이 다 쳐다보잖아. 옷이 그게 뭐야.” “가서 갈아입고 오면 안 돼?”
다정했던 분위기는 산산조각 난다. 당신은 당황스럽고 위축된다. 내가 너무 과했나, 그가 나를 아껴서 하는 말인데 내가 기분을 망친 걸까. 스스로의 옷차림을 내려다보며 옷자락을 끌어내리려 애쓴다.
착각하지 마라. 지금 당신이 느끼는 그 불편함은 사랑받는 사람의 설렘이 아니다. 검열당하는 자의 수치심이다. 그의 행동은 보호가 아니다. 당신의 신체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통제 욕구의 발현일 뿐이다.
그는 당신을 보호하는 보디가드가 아니다. 자신의 소유물이 타인의 시선에 닿는 것조차 참지 못하는 불안증에 걸린 교도관에 가깝다. 그들이 내뱉는 “다 너를 위해서야”라는 말은 기만이다.
투사(Projection), 늑대는 누구인가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배우자 지키기(Mate Guarding)’라는 기제로 설명한다. 수컷이 자신의 암컷을 다른 수컷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경계하는 원시적 본능이다.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남기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동굴에서 살지 않는다. 법과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이 본능을 세련되게 다스리지 못하고 날것 그대로 표출하는 것은 그저 사회화가 덜 된 미성숙함의 증거일 뿐이다.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언제나 판에 박힌 듯 똑같다. “나는 남자를 알아. 남자는 다 늑대야.” “나는 널 믿지만 다른 놈들을 못 믿어서 그래.” 이 말은 사실 자기 고백이자 자서전이다.
자신이 길거리를 지나가는 여성의 짧은 치마를 보며 성적인 상상을 하고, 음흉한 시선으로 훑어보았기 때문에, 세상 모든 남자들도 당연히 그럴 것이라 확신하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투사(Projection)’라고 부른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저열한 욕망을 인정하기 싫으니, 그것을 타인에게 덮어씌워 공격한다.
세상을 성욕에 미친 늑대들의 소굴로 설정해 놓아야만, 당신을 통제하는 자신의 행동이 ‘정의로운 보호’로 둔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가상의 적들을 만들어내고, 그들로부터 당신을 지킨다는 명분 하에 당신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 과정에서 그는 도덕적 우월감까지 챙긴다. 자신은 본능을 억제하고 여자를 지켜주는 ‘좋은 남자’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정말 세상이 그토록 위험하다면, 그는 당신의 치마 길이를 늘리라고 명령할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키는 태도를 보였어야 했다.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당신을 보호할 자신이 없으니, 애초에 그런 상황 자체를 소거하려 드는 것이다. 그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왜 당신이 30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긴 바지를 입어야 하는가.
가스라이팅, 취향의 감옥
이런 지적이 반복되면 피해자는 서서히 변해간다. 옷을 고를 때마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는 게 아니라, 그의 찌푸린 표정을 상상하게 된다. ‘이건 싫어하겠지?’, ‘이건 또 싸움이 나겠지.’
자신의 취향과 개성은 뒷전으로 밀려난다. 아름다움의 기준이 ‘내가 보기에 좋은 것’에서 ‘그가 화내지 않을 것’으로 바뀐다. 검열관의 기준에 맞춰 스스로를 편집하고 난도질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초기 단계다. 당신의 심미안을 마비시키고, 오직 그가 허락한 범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게 만든다. 그는 당신이라는 사람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입맛대로 커스터마이징 된 인형을 원한다.
옷차림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다. 자아의 표현이자, 내 기분의 연장선이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입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자신감은 온전히 나만의 영역이며 침범받지 말아야 할 권리다.
그것을 제한하는 행위는 당신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가장 손쉽고도 치명적인 방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의 취향 감옥에 가두려 드는 건 연애가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인형 놀이다.
흥미로운 모순은, 그들이 정작 자신의 연인이 남들에게 ‘매력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것은 또 싫어한다는 점이다. 적당히 예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트로피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동시에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수녀가 되기를 강요한다.
이 이중적인 요구 앞에서 당신은 길을 잃는다. 너무 꾸미면 화를 내고, 너무 안 꾸미면 무심하다고 핀잔을 준다.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몰라 눈치만 늘어간다. 그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상태다. 당신이 끊임없이 그들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는 것.
그가 감당해야 할 것은 당신의 치마 길이가 아니다. 매력적인 연인을 둔 자신의 옹졸하고 불안한 마음이다. 자존감이 높은 남자는 연인의 아름다움을 통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랑스러워한다.
혹여 다른 남자가 쳐다보더라도 위축되지 않는다. “내 여자가 워낙 매력적인 탓이지”라며 어깨를 으쓱할 여유가 있다. 그 시선들이 당신을 닳게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당신이 결국 선택한 것은 자신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옷장이 아닌 사람을 정리하라
반면,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 당신의 빛을 가리려는 사람. 그는 당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소유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당신이라는 전리품을 뺏길까 봐 전전긍긍하는 패잔병의 심리다.
담요로 꽁꽁 싸매는 행동을 다정함으로 포장하지 마라.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도 코트조차 벗지 못하게 하는 건 학대다. “추울까 봐 그래”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남들이 네 살결을 보는 게 싫어”가 진짜 속마음이다. 그의 찌질한 불안까지 당신이 배려해 줄 의무는 없다.
진정한 파트너는 당신이 무엇을 입든 그 모습 자체를 있는 그대로 수용한다. 당신의 패션이 다소 과감하더라도, 그것이 당신을 기분 좋게 만든다면 함께 즐거워해 주는 것이 건강한 관계다.
그러니 옷을 갈아입지 마라. 당신의 그 당당한 태도와 취향을 지적하는 그 사람을 갈아치워라. 옷장은 죄가 없다.
그 옷을 입었을 때 거울 속의 내가 예뻐 보였다면, 그 순간 느꼈던 그 기분 좋음만이 유일한 정답이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으며 안전하게 시들어가는 꽃이 되기보다, 야생의 들판에서 제멋대로 피어나는 잡초가 낫다.
당신의 다리는 걷고, 뛰고, 춤추기 위해 존재한다. 누군가의 허락을 받고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거울 앞에서 주눅 들지 마라. 오늘 당신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현관문을 나설 때의 그 당당했던 걸음걸이를 기억하라. 그 걸음으로 그와의 관계에서 걸어 나와라. 당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지 않는 눈동자는 당신을 담을 자격이 없다.
By. 나만 아는 상담소
더 많은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나만 아는 상담소 프리미엄 콘텐츠 에서 더 깊이 있는 심리학적 조언을 확인하세요.
또한, 나만 아는 상담소 네이버 블로그 에서도 다양한 주제의 심리 칼럼을 만나보세요.
- -
짧은 치마를 단속하는 남자, 심리는 보호가 아니라 ‘검열’이다
짧은 치마를 단속하는 남자 심리 백화점 조명 아래서 몇 번이고 거울을 비춰본다. 무릎 위로 올라오는 기장, 몸의 선을 따라 흐르는 실루엣. 새로 산 원피스는 꽤 마음에 든다. 오랜만의 데이트라 조금… 자세히 보기: 짧은 치마를 단속하는 남자, 심리는 보호가 아니라 ‘검열’이다
- -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명령들
“다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걱정속에 숨겨진 칼날 새벽 1시, 테이블 위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 화면에 익숙한 이름이 떠오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낮고 차분하며, 얼핏 듣기에는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듯하다…. 자세히 보기: 너를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라는 서두로 시작되는 명령들
- -
목숨을 건 이별은 없다: 안전 이별을 위한 실질적 지침
당신은 아마 수없이 상상했을 것이다.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을. 카페에서 마주 앉아 차분하게 서로의 안녕을 빌어주는 장면을 꿈꿨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왔던, 연인들이 나누는 마지막 예의이자 이별의 정석이기… 자세히 보기: 목숨을 건 이별은 없다: 안전 이별을 위한 실질적 지침
- -
그의 휴대폰에 내 사생활은 없다, 디지털 프라이버시 지키기
당신의 손에 들린 스마트폰을 한번 내려다보라. 차가운 금속과 강화유리로 덮인 이 작은 직사각형 기계. 이것은 현대인에게 단순한 통신 도구가 아니다. 이것은 당신의 기억을 저장한 외부 뇌이며, 당신의 인간관계를 기록한 지도이고,… 자세히 보기: 그의 휴대폰에 내 사생활은 없다, 디지털 프라이버시 지키기
- -
‘몸캠 피싱’ 부터 ‘지인 능욕’ 까지, 신종 디지털 교제폭력 유형
이전과 달라진 폭력, 몸캠 피싱, 지인 능욕 사랑의 풍경이 바뀌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랑을 가장한 폭력의 풍경이 진화했다. 과거의 폭력이 주먹이나 고성, 깨진 접시 파편처럼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형태였다면, 지금의 폭력은… 자세히 보기: ‘몸캠 피싱’ 부터 ‘지인 능욕’ 까지, 신종 디지털 교제폭력 유형
The post 짧은 치마를 단속하는 남자, 심리는 보호가 아니라 ‘검열’이다 appeared first on 나만 아는 상담소.
Copyright ⓒ 나만아는상담소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