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를 돌아보면 기쁨이 아닌 다른 감정들이 더 오래 마음에 남아 있음을 발견한다. 웃기보다 울 때가 더 많았고 감사보다 근심과 걱정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으며 만남보다 이별이, 열매보다 상실이 더 가까이 있었다.
그 자리는 마치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그루터기’(이사야 11, 1)와 같다. 잎도 꽃도 열매도 사라진 자리 말이다. 한때 풍성했던 삶의 흔적만 남겨둔 채 베어진 밑동처럼 적막하게 남은 자리 말이다. 우리는 그곳에서 종종 이렇게 말한다. ‘이제 끝이구나.’ 그리고 그 끝에서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과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아주 작은, 그러나 전혀 새로운 희망을 건넨다. 그루터기에서 새싹(이사야 11, 1)이 돋아난다고 말이다. 하느님은 모든 것이 멈춘 듯 보이는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신다. 적막한 절망이 드리워져 있던 곳에서, 끝이라 여겨졌던 곳에서 미세한 생명의 싹이 일어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그 새싹이자 우리의 눈물자리와 같은 그루터기에서 움튼 햇순이다. 그분은 조용히 말씀하신다. ‘네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끝처럼 보이는 이 자리에서 나는 다시 시작한다.’
우리는 종종 기쁨을 거창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은 새싹 한 줄기의 침묵 같은 기쁨, 아픔 속에서 잔잔히 스며드는 위로의 기쁨이다. 어느새 마음을 다시 일으키는 힘이다. “튼튼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태 9, 12).” 예수 그리스도의 이 말씀은 기쁨이 완벽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부족하고 마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먼저 찾아오는 은총, 곧 선물임을 알려준다.
가장 높으신 분이 가장 낮은 우리의 눈물 앞에 오신 까닭은 우리의 그루터기 같은 마음을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다.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다. 성탄은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라고 말하는 새로운 구원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세계 곳곳에서 이 노랫말 가사를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힘차게 외쳐 부른다. “기쁘다, 구세주 오셨네.”
기쁨은 멀리 있지 않다. 그루터기 같은 내 삶의 눈물자리 한가운데, 이미 와 계신 그분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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