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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은 10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청심홀에서 2일차 ‘국민을 위한 사법제도 개편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는 ‘상고제도 개편’과 ‘대법관 증원안’을 중심으로 다양한 전문가 의견을 청취했다. 두 세션 토론자와 발표자 상당수는 대법원의 고질적인 업무 부담은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대법관 증원은 보조적 수단에 불과하다’는 공통된 의견을 내놨다.
세션5에서 발표자로 나선 오용규 변호사(사법연수원 28기)는 세계 주요국의 상고제도를 비교하며 한국 대법원이 사실상 모든 상고 사건을 직접 심리하는 구조를 가장 큰 문제로 지적했다. 독일·프랑스 등은 최고법원이 법률 해석 통일과 같은 핵심 기능에만 집중하도록 상고허가제·파기원 제도를 두고 있는 반면, 한국은 수천 건의 사건이 대법원으로 올라오면서 오히려 법리 발전 기능이 약화됐다는 것이다. 실제 해외 주요국의 상고심 처리 건수는 연간 수백건에 불과하지만 우리나라는 2024년 기준 본안사건 기준 3568건이 접수되고 3478건이 처리됐다. 다만 이들 국가에는 허가제로 상고심이 운영돼 단순비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오 변호사는 “1심 재판이 충실해야 상소를 제한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며, 하급심 충실화가 상고제 개선에 앞서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또 그는 한국형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민사 배심제 도입 등 구조적 재설계를 통해 상고심이 다뤄야 할 사건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자들도 상고제도 전반의 개편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도형 수원지법 부장판사(연수원 33기)는 “대법관 증원은 상고제도 개선의 한 수단일 수는 있으나, 절대적 해법이 아니고 반드시 상고심 구조 개편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상고사건 적체의 근본적 원인은 대법원이 너무 많은 사건을 다루는 구조에 있으므로, 상고심사제 도입 등 구조적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연심 민변 법원개혁소위원장(연수원 36기)은 “본격적인 개편을 위해서는 현재 대법원 심판의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면서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보연 대한변협 법제위원(변호사시험 1회)은 “상고이유에 대한 심사를 통해 상고심 사건을 일정 부분 걸러내는 장치가 필요하다”면서도 “상고심 불송부결정을 할 경우 당사자에게 이유를 고지해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션6에서는 ‘대법관 증원안’을 놓고 보다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다. 발표자로 나선 김 부장판사는 대법관 증원 논의를 반대할 필요는 없다면서도 “심리불속행 기각 제도의 개선 문제는 대법관만을 2배 증원해 해결할 수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여당이 추진하는 14명에서 26명으로 증원하는 안이 단기적으로 사건 처리 능력을 높일 수는 있지만, 상고심 구조 자체가 변하지 않는다면 사건 적체는 되풀이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특히 현재 여당이 추진 중인 3년간 매년 4명 증원안에 대해서는 “법관 증원 및 임명과정에서 사법부가 정치권에 예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대법관의 과반수 또는 절대다수를 일시에 임명함에 따른 정치적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고, 이러한 논란은 이들의 후임 대법관을 임명할 때마다 반복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우려했다. 이에 14명의 대법관을 늘리더라도 1년 또는 2년에 1명 또는 2명씩 순차로 증원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어 발표한 여 위원장은 “대법원 증원이 상고제도 개편 논의의 종착점이 된다고 보지는 않는다”며 “대법원이 법령 해석의 통일성과 정책 법원의 기능 역시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도록 상고심 제도 개편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대법원 심리를 ‘국민의 사법적 권리’로 인식하는 현실 때문에 허가제 등 상고제도 개편 논의가 힘을 받기 어려웠다며 증원만으로는 접근권과 권리구제 측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참석한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법원의 위상과 정체성은 소수정예 구성에 기반한 법리 통일성과 최고법원으로서의 상징적 권위에 있다”며 “대규모 증원은 소부 확대·연합부 도입·전원합의체 감소 등으로 이어져 법리 통일 기능을 약화시키고, 결과적으로 헌정 질서 내 견제·균형 기능을 훼손할 수 있는 점에서 증원 논의는 신중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다만 이 법제위원은 “대법관 증원 논의가 2025년에 갑자기 떠오른 문제가 아니다”라며 “대법관 수를 늘려 심리 부담을 분산하면 국민의 헌법상 재판받을 권리가 두텁게 보호되고, 대법관 구성의 다양성까지 확대하는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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