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르노코리아가 11월 판매를 끝으로 중형 세단 SM6와 중형 SUV QM6의 생산 종료를 공식화했다. 두 모델의 동시 단종은 단순한 라인업 조정이나 사업 효율화의 결과가 아니다. 이는 사실상 르노코리아 내수 사업 구조 전체가 붕괴 국면으로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에 가깝다.
업계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생존을 위한 축소가 아니라,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밀려난 후퇴"라는 평가까지 나올 정도로 상황을 심각하게 바라본다.
르노코리아 CI. ⓒ 르노코리아
무엇보다 이번 단종이 갖는 의미는 숫자 이상의 것이다. SM6 생산 종료는 브랜드 세단 라인업의 완전 소멸을 의미하고, QM6까지 사라지면서 구조적으로는 이미 기능적 붕괴가 시작된 상태에 가깝다.
지난 10년간 브랜드 인지도를 지탱해온 핵심 모델들이 연달아 빠져나가면서 전체 라인업은 사실상 최소 존속 수준으로 축소됐다. 이는 정상적인 완성차 브랜드에서 기대되는 기본적인 포트폴리오 구성으로 보기 어렵다.
◆세단 역사 마침표…혼자 버티는 그랑 콜레오스
SM6 단종은 이미 예견된 흐름이었다. SUV 중심으로 이동한 시장구조 속에서 르노코리아의 세단 라인업은 몇 년 전부터 빠르게 힘을 잃고 있었다. SM3, SM5, SM7이 차례로 사라진데 이어 SM6마저 후속모델 없이 퇴장하면서, 르노코리아는 세단 시장에서 완전히 발을 뗐다.
이는 단순한 판매 부진의 결과를 넘어선다. '세단 시장을 유지할 역량이나 투자 여력이 더는 없다'는 해석을 피하기 어렵고, 이는 곧 브랜드 구조 그 자체가 무너지고 있음을 드러낸다. SM6의 종료가 '세단 철수'가 아니라 '사업 기반 축소의 상징적 사건'인 것이다.
SM6 2.0 LPe. ⓒ 르노코리아
QM6 단종도 충격의 또 다른 층위를 형성한다. QM6는 LPG 모델이라는 독특한 포지션을 통해 장기간 꾸준한 수요를 창출해온 차종이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효자 모델로서 브랜드 내수 실적을 안정적으로 지탱해왔다. 이 QM6가 사라진다는 것은 르노코리아가 그나마 붙잡고 있던 마지막 고정 수요 기반마저 내려놓는 것과 다름없다.
결국 SM6·QM6 동시 단종은 르노코리아가 스스로 전략 선택지를 줄여가는 과정이라기보다,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자체가 사라지면서 밀려난 결과라는 진단에 힘이 실린다.
현재 내수판매를 떠받치는 모델은 그랑 콜레오스 뿐이다. 그랑 콜레오스는 올해 1~11월 누적판매(3만7398대) 기준 전년 대비 135% 증가라는 성장세를 기록하며 명실상부한 브랜드 볼륨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랑 콜레오스+아르카나라는 좁은 포트폴리오로는 정상적인 완성차 사업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은 변함없다.
현대차·기아가 각각 10종이 넘는 내수 라인업을 운영하고, 한국GM·KG 모빌리티도 5개 이상의 주요 차종을 보유하는 것과 비교하면 이런 구조는 지나치게 취약하다. 특정모델의 판매 주기나 경쟁사 출시 전략에 따라 실적 변동성이 급격하게 커질 수밖에 없다.
도넛탱크는 르노코리아가 LPG 협회와 함께 2년 동안 200억원을 투자해 개발한 연료탱크다. ⓒ 르노코리아
실제로 르노코리아의 최근 10년은 '단일 모델 구조'의 취약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시간이었다. SM6→QM6→XM3→그랑 콜레오스까지, 매번 한 개 신차에만 실적 반등을 의존해왔고, 이 구조는 성장세보다 급락 위험이 더 높은 형태다.
◆오로라2에 쏠리는 시선…사실상 유일한 승부 카드
SM6와 QM6가 빠져나간 자리를 채울 만한 전동화 라인업과 신규 모델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르노코리아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요소다.
물론 그랑 콜레오스 하이브리드와 전기 SUV 세닉 E-테크 일렉트릭이 포트폴리오 보완 역할을 하고 있지만, 국내 시장 전체의 전동화 속도와 비교하면 여전히 수비적 수준에 머문다. 국내 시장은 이미 전동화(하이브리드+전기)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지만, 르노코리아는 이 흐름을 선도하기에는 라인업 폭도, 투자 여력도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내년 출시를 앞둔 '오로라 프로젝트2(오로라2)'에 업계의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집중되고 있다. 오로라2는 준대형급 하이브리드 SUV로 알려져 있으며, 르노코리아가 내수 포트폴리오 정상화와 브랜드 존재감 복원을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승부 카드'다.
QM6 주행 모습. ⓒ 르노코리아
오로라2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첫째는 국내에서 그랑 콜레오스와 더불어 내수 포트폴리오의 최소 정상선을 만들어내는 볼륨 모델 역할, 둘째는 르노코리아가 전동화 전환 흐름 속에서도 살아남을 브랜드라는 메시지를 시장에 각인시키는 상징 모델 역할이다.
문제는 오로라2가 그랑 콜레오스의 단순 형제차 수준에 그친다면, 시장을 반전시킬 동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국내 SUV 시장은 이미 전동화·첨단 안전기술·소프트웨어 경험 등 다양한 비교 요소가 기준선으로 작동하는 치열한 전장이다.
SM6과 QM6 단종은 르노코리아에게 냉혹한 현실을 다시 확인시켰다. 한때 브랜드의 존재감을 지탱했던 모델들이 시장 변화와 투자 공백 속에서 잇따라 사라졌고, 남은 것은 그랑 콜레오스와 아르카나 그리고 아직 베일을 벗지 않은 오로라2뿐이다.
이 라인업으로는 시장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기 어렵다. 소비자는 선택지가 적은 브랜드를 점점 후순위로 밀어내기 마련이며, 한 번 잃은 브랜드 충성도는 단기간에 회복되지 않는다. 내수 존재감 약화→단종 확대→투자 우선순위 하락→라인업 축소라는 악순환이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 르노코리아의 가장 시급한 과제다.
그랑 콜레오스는 함께 타는 가족구성원 각자의 다양한 취향과 요구를 세심하게 고려한 패밀리 SUV다. ⓒ 르노코리아
결국 르노코리아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오로라2를 중심으로 최소 정상 포트폴리오를 회복하고, 그랑 콜레오오스의 성장세를 단발적 반짝 실적으로 끝내지 않는 장기 구조로 가져가며, 르노 그룹으로부터 '한국시장과 부산공장은 여전히 투자 가치가 있는 거점'이라는 판단을 이끌어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SM6와 QM6의 공백은 앞으로 수년간 르노코리아의 방향성을 지속해서 시험할 것이다"라며 "이번 단종이 조용한 퇴장이 아니라 위기를 직시한 뒤 다시 전략을 짜는 전환점이 될지 여부는 결국 르노코리아의 다음 선택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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