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만근 무겁고 소화도 안 되는데 병원 검사 결과는 ‘정상’이란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답답함이다. 그동안 주류 의학은 엑스레이나 혈액 검사상 명확한 ‘구멍’이 보여야 치료를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의료계 판도가 꿈틀거리고 있다. 질병이라는 불이 나기 전에 연기만 보고도 원인을 찾아 끄겠다는 시도, 바로 ‘기능의학(Functional Medicine)’이다.
기능의학이 최근 스타트업 및 헬스케어 업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이유는 명확하다. 단순히 아픈 증상을 없애는 대증요법의 한계를 인정하고, 환자의 식습관부터 유전자, 환경 독소까지 샅샅이 뒤져 ‘왜’ 아픈지를 묻기 때문이다.
◇ ‘나무’ 아닌 ‘숲’을 보는 진료… 뷰티·항노화 시장과 만나다
기존 병원이 “머리가 아프면 진통제를 준다”는 식이었다면, 기능의학은 “왜 머리가 아픈가?”를 파고든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 때문인지, 중금속 중독인지, 아니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호르몬 교란인지를 찾아낸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분야가 단순 치료를 넘어 ‘안티에이징’이라는 거대 시장과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미학성형외과의 첨단 안티에이징 클리닉랩 ‘HM CelleX’ 김동환 박사는 “기능의학은 나무(질병)만 보는 게 아니라 숲(사람 전체)을 보는 학문”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최근 강남 일대의 클리닉들은 미용 시술에 기능의학적 접근을 더해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주름만 펴는 게 아니라, 속부터 늙지 않게 관리해 준다는 ‘건강 기반 케어’ 모델이다. 건강관리에 아낌없이 지갑을 여는 ‘영포티(Young Forty)’와 고령층의 니즈를 정확히 관통했다.
◇ 상담 → 검사 → 맵핑… ‘나만의 몸 사용설명서’ 만든다
기능의학 병원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진료 풍경부터 사뭇 다르다. 3분 진료는 없다. 환자의 태어난 과정부터 현재 식사 습관까지 묻는 긴 상담이 이어진다.
이후 진행되는 검사들도 낯설다. 유전자 검사, 대사 유기산 검사, 면역세포 활성 검사 등 개인의 생화학적 대사 과정을 낱낱이 파헤친다. 의료진은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자의 몸 상태를 지도로 그리듯 ‘원인맵’을 작성한다. 처방전에는 약 대신 ‘글루텐 끊기’, ‘수면 패턴 바꾸기’, ‘특정 영양소 보충’ 같은 생활 밀착형 지시가 빼곡히 적힌다.
주로 만성 피로, 원인 불명의 통증, 대사 질환(당뇨·비만), 자가면역 질환 등을 앓는 환자들이 주 고객층이다. 병원 문턱이 닳도록 다녀도 차도가 없던 이들에게는 분명 매력적인 대안이다.
◇ “비싼 검사비·영양제 강매 주의”… 맹신은 금물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기능의학이 ‘만병통치약’처럼 포장되는 현상은 경계해야 한다. 김동환 박사 역시 “기능의학이 모든 난치성 질환을 즉시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망가진 기능을 되돌리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며, 환자 본인의 피나는 노력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일부 의료기관의 상술이다. 치료 계획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 고가의 검사를 남발하거나, 검증되지 않은 고가의 해외 보충제를 무더기로 처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의료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 검사가 내 치료에 반드시 필요한가?”를 깐깐하게 따져물어야 한다.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시술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기능의학은 기존 주류 의학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빈틈을 메워주는 ‘보완재’로 활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 유행 넘어 ‘제도권 의학’으로 자리 잡으려면
기능의학이 단순한 ‘웰니스 트렌드’를 넘어 의료 서비스의 한 축으로 자리 잡으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표준화된 진료 가이드라인이 시급하다. 병원마다, 의사마다 진단과 처방이 천차만별이라면 신뢰를 얻기 힘들다.
장기적인 관찰 연구 데이터 축적도 필수다. 보험 적용 논의 또한 이 데이터가 쌓여야 가능하다. 현재로서는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라 환자의 진입 장벽이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의학이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병이 생긴 뒤’가 아니라 ‘병이 생기기 전’을 보라는 것. 자신의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주도적으로 건강을 관리하려는 환자들에게 기능의학은 훌륭한 나침반이 될 수 있다.
이제 공은 의료계와 환자 모두에게 넘어갔다. 상술로 변질되지 않고, 진정한 의미의 ‘전인적 치료’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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