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12년 전 컨디션 관리 실패로 낭패를 맛봤던 홍명보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이 제대로 명예회복할 기회를 잡았다. 이번 월드컵도 각종 변수로 인해 컨디션 관리가 핵심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지난 6일(한국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진행된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추첨 결과 한국은 모든 조별리그 경기를 멕시코에서 치르게 됐다. A조 첫 경기는 12일 과달라하라에서 유럽 플레이오프 D패스 승자와 갖는다. 2차전은 19일 같은 경기장에서 개최국 멕시코를 상대한다. 3차전은 몬테레이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만난다.
이번 월드컵은 과거 어느 대회보다도 컨디션 변수가 커졌다. 늘어난 참가팀, 늘어난 경기 숫자, 광활한 북중미의 다양한 시간대와 환경에서 벌어진다는 점 등에서 그렇다. 바로 전 대회인 2022 카타르 월드컵이 역대 가장 짧은 이동거리, 가장 안락한 훈련 환경에서 진행됐던 것과 하늘과 땅 차이다.
한국은 조별리그 1, 2차전 장소 과달라하라가 해발 1,571m에 위치해 있어 고지대 적응이 큰 변수로 떠올랐다. 게다가 조별리그만 통과하면 고작 32강, 토너먼트까지 한 경기 이겨내야 16강이라는 이번 대회의 변화를 감안한다면 조별리그 3경기만 준비할 순 없다. 만에 하나 한국이 조 1위로 통과한다면 32강전은 고도가 더 올라가는 해발 2,240m 멕시코 시티에서 치러야 한다. 훈련과 경기 환경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두고 준비할 필요가있 다.
환경 변화로 인한 컨디션 관리는 한국뿐 아니라 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팀의 큰 과제다. 고지대를 배정받지 않은 팀들은 긴 이동거리에 따른 시차 문제, 미국 무더위로 인한 체력 문제를 겪을 수 있다. 홍 감독은 지난 1994 미국 월드컵 당시 선수로 참가해 역대 가장 더운 월드컵 중 하나로 꼽혔던 미국 환경을 직접 느낀 바 있다. 지난 32년 동안 기후 온난화가 진행돼 이번 월드컵은 더 더울 가능성이 높다.
홍 감독은 자신의 과거와 정면승부한다. 첫 월드컵 사령탑이었던 2014 브라질 월드컵 감독 당시, 한국은 1무 2패에 그치며 21세기 월드컵 중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당시 한국의 문제는 기량이나 전술보다도 준비 측면에서 부각됐다. 일단 브라질 월드컵 참가를 위해 황열병 예방주사를 맞아야 했는데, 주사 이후 찾아오는 몸살 기운과 그 타이밍을 잘 잡지 못해 타격이 오래 갔다는 분석이 뒤따랐다. 당시에는 황열병 주사의 영향이 어느 정도였는지 의견이 분분했으나 시간이 지난 뒤 이청용, 기성용 등은 “접종 이후 아파서 준비에 차질을 겪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여기에 국민 여론을 스스로 악화시킨 일명 ‘의리 논란’과 ‘알제리전 분석 미흡 논란’ 등, 대회 준비 과정에서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 많았다.
홍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이후 약 2년이 지난 시점에 ‘풋볼리스트’와 인터뷰하면서 “역시 월드컵은 세계 최고 선수들이 나오는 무대다. 얼마나 잘 준비하느냐, 그 과정이 중요하다”며 “내가 감독이 된 이후 2014년 월드컵 준비 과정과 일련의 사태를 보면 (실패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었나”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월드컵은 환경을 잘 분석하고 스케줄을 잘 짠다면 많은 이득을 볼 수 있고, 준비에 실패한다면 브라질 대회 이상으로 큰 손해를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진행된다. 홍 감독은 지도자로서 겪었던 가장 큰 실패를 정면으로 넘어설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홍 감독은 대회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조 추첨식에 참석한 홍 감독은 곧바로 멕시코로 이동해 베이스캠프 사전 조사를 진행했고, 12일 귀국할 예정이다. 좋은 성적을 위해서는 지금부터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사진= 국제축구연맹 홈페이지 캡처,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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