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종전안 수용을 압박하는 가운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핵심 쟁점인 '영토 양보'를 두고 불가 의사를 거듭 밝혔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지난달부터 미국이 작성한 종전안을 두고 협상해왔으나, 영토 문제 등 핵심 사안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한 상태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돈바스 전체에 대한 양보를 주장하면서 우크라이나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포기와 병력 축소를 요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전황상 우크라이나가 열세인 점을 강조하며 지금이라도 종전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유럽 정상들과 회담을 갖고 돈바스 지역 중 우크라이나가 점유하고 있는 영토는 유지하는 것을 골자로 한 수정된 종전안을 미국에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2일 미-러 회동 후 4~6일 미-우크라 종전 협상
젤렌스키 "영토포기 불가" 트럼프 "우크라 지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미국이 중재하는 종전안을 수용하라고 연일 압박하고 있다.
그는 8일 폴리티코와 인터뷰에서 "협상에서 우위에 있는 건 러시아"라며 "그들(우크라이나)은 협조(play ball)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젤렌스키)는 상황 파악을 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해야 할 것"이라며 "그는 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크리스마스까지 우크라이나 종전 합의를 마무리하려고 한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8개 조항으로 구성된 종전안 초안을 작성한 후 우크라이나 측의 의견을 취합해 20개 항목으로 수정된 종전안을 마련했다.
기존 종전안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포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비가입 헌법 명기, 우크라이나 군 축소, 러시아 침공에 대한 책임 면제 등이 들어있었다. 사실상 러시아의 요구를 모두 포함했다는 비판이 일자 내용을 수정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스티브 위트코프 특사 등 미국 대표단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모스크바에서 우크라이나 종전안을 놓고 2일 협상을 진행해 일부 합의에 이르렀다.
이후 미국과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4∼6일 사흘간 종전안을 논의했으나 젤렌스키 대통령은 '영토 포기 불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8일 기자들에게 "러시아는 우리에게 영토를 포기하라고 요구한다"며 "우리는 분명히 어떤 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우크라이나) 법으로든, 국제법으로든, 도덕률로든 우리는 무엇도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도 말했다.
우크라, 유럽 협의 거친 수정 종전안 마련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안 수용 압박이 거세지자 영국·프랑스·독일 정상은 8일 런던 다우닝가의 영국 총리실로 젤렌스키 대통령을 불러 4자 정상회담을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종전 계획과 전후 우크라이나의 안전보장 방안 등을 주요 의제로 약 2시간 30분가량 진행된 이 회담에선 유럽 내 동결 자산을 활용해 러시아를 압박하는 방안도 집중 논의된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 시작 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모두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며 "우크라이나가 계속 저항하고 있고, 러시아 경제가 곤란해지는 등 우리도 손에 많은 카드를 쥐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4자 정상회담 후 벨기에 브뤼셀로 건너가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만났다.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의견이 반영된 수정안을 미국에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9일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우크라이나와 유럽의 (종전을 위한) 구성 요소는 더 발전했고, 이를 미국 측에 제시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모든 것은 러시아가 유혈사태를 멈추고 전쟁을 재점화하지 않도록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자세가 돼 있는지 여부"라며 "가까운 미래에 우리는 다듬은 문건을 미국에 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수정안이 20개 항목으로 구성됐으며 영토 포기와 관련한 문제에서 합의는 아직 도출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어 "미국 측 기류는 기본적으로 타협점을 찾자는 것이지만 영토 문제와 관련한 복잡한 이슈들이 있다"면서 "타협점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수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영토 일부의 포기를 요구한 기존 종전안의 관련 내용을 우크라이나 측에 좀 더 유리하게 바꾼 안이 담겼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우크라이나가 동부 돈바스 지역을 포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 총참모장 전선 시찰…"계속 진격"
한편, 미국이 중재하는 종전안이 논의되는 가운데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은 9일 '특별군사작전' 구역 내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지역에서 작전 중인 중앙전투단을 방문해 목표 이행 상황을 점검했다.
게라시모프 총참모장은 회의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미르노흐라드에 포위된 우크라이나군을 패배시킬 것을 명령했다고 말했다. 또 현재 러시아군이 미르노흐라드 건물의 3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체 전선에서 진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7일 전황 추적 사이트인 딥스테이트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러시아는 지난 11월 한 달간 약 200제곱마일(약 518㎢)의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10월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 면적인 100제곱 마일보다 두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미국의 싱크탱크 전쟁연구소는 러시아의 진격 속도에 대해 "4년 전 우크라이나 침공 후 가장 빠른 속도에 근접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도 돈바스와 노보로시야 지역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4일 인도 방문을 계기로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어떤 수단으로든 돈바스와 노보로시야를 해방할 것이라면서,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이 지역을 차지하겠다고 강조했다.
[폴리뉴스 김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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