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함·보온성 앞세운 '실속 패션'에 MZ 열광
김장조끼·바부슈카·군밤장수 모자…"힙하다"
꾸민 듯 안 꾸민 듯…'그래놀라 룩'도 확산
"재미와 자기표현 추구하면서도 착용감·가성비 중시"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형광 꽃무늬에 널찍한 조끼, 바람막이 같은 고어텍스 재킷, 턱 아래로 묶는 할머니 모자, 귀를 폭 감싸는 군밤장수 모자까지….
한때 '할머니 장터 룩', '등산 아저씨 룩'으로 불리던 옷들이 올겨울 MZ세대의 '힙'한 아이템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이른바 '김장조끼' 열풍과 함께 헐렁한 플리스의 '그래놀라 룩', 레트로 감성 가득한 방한 모자가 일상 패션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겉치레보다 보온성과 편안함이라는 옷의 본질에 주목해 실리를 챙기는 MZ세대의 소비 경향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타고 급부상하고 있는 아이템은 '김장조끼'다.
누빔(퀄팅) 소재에 알록달록한 꽃무늬가 특징이다. 조끼 형태라 활동성이 좋고, 눈에 띄는 색상 때문에 위에 걸치기만 해도 포인트가 된다.
과거 촌스럽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최근 여자 아이돌 착용 사례가 잇따르며 긍정적 이미지가 빠르게 확산했다.
9일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김장조끼' 키워드에 대한 관심도는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한 지난달 9~15일께부터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해 현재 관심도 최대치(100)에 도달했다. 구글 트렌드는 검색 빈도가 가장 높은 검색어를 100으로 해서 특정 키워드에 대한 유튜브 시청자의 관심도를 수치로 표현한다.
키워드 분석 플랫폼 블랙키위에 따르면 '김장조끼' 검색량은 지난 11월 한 달간 전달 대비 약 699% 늘었다.
관심에 비례해 관련 상품도 많이 검색된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에서 '김장조끼'를 검색하면 현재 약 1만2천530개의 관련 상품이 뜬다.
이러한 레트로 감성을 담은 브랜드 제품도 완판 행렬이다.
지난 3월 출시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X 리버티 퀄티드 재킷'은 '김장조끼'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시장에서 파는 몇천원짜리 '할머니 조끼'와 달리 정가(아디다스 온라인 몰)가 무려 15만9천 원이다. 그럼에도 이 제품은 지난 8일 기준 전 사이즈가 모두 품절 상태다.
이런 인기는 걸그룹 스타들이 쏘아 올렸다.
에스파의 카리나는 지난해 6월 SNS에 김장조끼를 입은 사진을 올렸고, 같은 해 12월에는 블랙핑크의 제니가 겨울 캠핑 룩으로 김장조끼를 선보였다.
이어 올해 7월에는 소녀시대의 태연이 체크 셔츠에 김장조끼를 덧입은 패션을 선보였다.
유튜브에는 '제니·카리나·장원영도 입었다'는 제목의 누빔조끼 소개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며 '김장조끼 열풍'을 부채질했다.
누리꾼들은 "이쁜 건 사실이야. 우리의 인식 때문이지 객관적으로 이쁨"(유튜브 이용자 'SUR***'), "저게 은근 따뜻함. 가볍고 은은하게 따뜻해서 일하다 쌀쌀할 때 입어보면 못 벗음"('ksi***'), "요즘 길거리에서 자주 봄"('you***') 등의 반응을 남기고 있다.
SNS에는 김장조끼 구매 인증 글이나 착용 후기가 쏟아진다.
엑스(X·옛 트위터) 이용자 'for***'는 분홍색 김장조끼 사진과 함께 "나도 최근에 김장조끼를 샀다"고, 'kat***'는 "김장할 때는 김장조끼 입어 줘야 한다고 하니까 할머니가 시장에서 사 줬어"라고 적어 올렸다.
남성 이용자들이 입는다는 '증언'도 올라온다.
유튜브 이용자 'koo***'는 "우리 회사에 오늘 김장조끼랑 김장바지 입고 온 남직원 있어서 한참을 봤네요"라고, '올뺌***'는 "울 아들도 사왔어요"라고 썼다.
그런가 하면 '그래놀라 룩'도 젊은 세대를 파고들었다. 그래놀라 룩은 '그래놀라(곡물과 시럽, 식물성 기름을 섞어 오븐에 구운 아침 식사)를 먹을 것 같은 건강한 사람'에서 유래한 패션 스타일이다.
헐렁한 플리스, 고어텍스 재킷, 넉넉한 팬츠 등 투박한 아웃도어 실루엣을 '자연스러움'으로 승화시킨 스타일이다.
겉보기엔 막 입은 듯하지만 전체적으로 색감·핏·소재가 정갈해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느낌을 만드는 것이 특징이다.
스레드 이용자 'imw***'는 "요즘 다시 뜬다는 그래놀라 걸 에스테틱. 소박하고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 히피 스타일"이라며 그래놀라 룩을 소개했다.
여기에 "편한 거 좋아하는 나한테는 완벽한 스타일"(이용자 'nxv***'), "나의 요즘 추구미야. 근데 진짜 편하기도 편해"('hi_***'), "나 이것 보고 힐링받는다…한국 패션 문화 가끔 벅차"('swe***') 등 호응이 잇달았다.
러시아식 헤드 스카프인 '바부슈카'도 인기를 끌고 있다. 바부슈카(Babushka)는 러시아어로 '할머니'를 뜻하는 말로, 얼굴 외곽을 둘러 턱 아래에서 꼬아 묶는 것이 정통 스타일이다.
바람을 막아 주는 실용성과 얼굴선을 감싸 주는 포근한 분위기가 강조되면서 힙한 아이템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지드래곤 등 패션을 선도하는 스타들이 바부슈카를 스타일링에 활용하면서 '할머니 룩도 멋일 수 있다'는 인식을 남겼다.
엑스 이용자 'poc***'는 "바부슈카 귀여워. 심플하고 실용적이야"라고, 스레드 이용자 'won***'는 "바부슈카? 이게 유행이라면서 나도 한번 따라 가보려고!"라고 썼다.
직접 코바늘로 뜬 바부슈카를 소개하거나, 코트·패딩과 매치하는 스타일링 팁을 공유하는 게시물도 줄을 잇는다. 바부슈카를 직접 만들어보는 DIY 영상도 있다.
'군밤장수 모자'로 불리는 방한모 역시 눈길을 끌고 있다.
패딩, 숏무스탕 등 겨울 아우터와 함께 스타일링한 사진이 SNS에 넘쳐난다.
레드·카멜·아이보리 등 다양한 색상에 귀를 완전히 덮는 디자인이 주류를 이루며, 밍크털처럼 풍성한 디테일을 살린 제품도 등장했다.
이처럼 방한 기능은 기본, 개성 있는 스타일 연출까지 가능한 아이템으로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몰이 중이다.
이 게시물에는 "느좋(느낌 좋다)이다"(인스타그램 이용자 'imu***'), "겨울철 필수… 완전 감다살(감 다 살았다)"('aen***')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최근에는 대세 남자 아이돌들이 군밤장수 모자 열풍에 가세했다.
코르티스 멤버 주훈은 귀를 완전히 덮는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장난스럽게 포즈를 취한 사진을, 엔시티 위시 멤버 리쿠는 투톤 컬러의 군밤장수 모자를 쓰고 릴스 영상을 올렸다.
SNS에는 이들이 착용한 모자 제품명을 정리한 정보 글까지 올라오며 유행이 더욱 번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을 실용 중심 가치관의 부상과 온라인 '공유 문화' 확산이 맞물린 결과로 보고 있다.
김우혁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생활성이 돋보이는 아이템을 재발견하는 트렌드가 이어지고 있다"며 "MZ세대는 재미와 자기표현을 추구하면서도 편안함과 합리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결국 구매를 결정하는 힘은 착용감과 가격 대비 효용"이라고 말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레트로 감성과 가성비가 인기 요인"이라며 "후기 공유를 통해 경험 욕구가 자극되고, 동조 현상도 함께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haemong@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