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기자가 모든 영포티에게 전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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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기자가 모든 영포티에게 전하는 말

엘르 2025-12-09 22:54:41 신고

내 나이 앞자리가 ‘3’에서 ‘4’로 바뀔 무렵, 벌써 몇 년 전의 일화다. 필사적으로 최신 K팝을 찾아 들었다. 내 플레이리스트가 15년 넘게 페퍼톤스와 브로콜리 너마저의 자장 안에서 맴돌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고인 물’이 되고 싶지 않았다. 평소 하던 ‘홈트’ 시간에 유산소운동하는 셈치고 뉴진스의 ‘Hype boy’ 안무를 연습했다. 후배들과 회식하려면 최신 노래 정도는 꿰고 있어야지! 걸 그룹 노래를 모르는 언니를 초딩 조카들과 함께 타박하며 은근히 으스대기도 했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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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막상 후배들과 노래방에 가자 흘러나온 노래는 ‘UP’의 ‘뿌요뿌요’였다. 20대 후배들이 HOT, 핑클, GOD 등(아마도 나를 배려해서)의 노래를 줄줄이 선곡했다. 회식 때마다 탬버린을 집어 들고 ‘나성에 가면’부터 눌렀던 20대의 내가 떠올랐다. 그래도 연습한 게 아까워 꿋꿋하게 ‘Hype boy’를 불렀다. 역시 수십 년 전, 저연차 기자이던 시절 2NE1의 ‘I don’t care’를 트로트 창법으로 구성지게 부르던 중년의 부장이 겹쳐 보였다. 이렇게 역사는 되풀이되는구나. 눈에서 땀이 났다. 이후로 회식을 해도 노래방은 가지 않았다(그렇다. 회식은 포기할 수 없었다. 나는 K중년이다).


최근 ‘영포티’를 조롱하는 밈이 자주 눈에 띈다. 원래는 단순히 ‘트렌드에 민감한 40대’를 칭하는 중립적인 마케팅 용어였는데, 이제는 ‘억지로 젊은 세대를 흉내 내면서 깨어 있는 척하는 40대’를 가리킨다고 한다. 내 얘긴가? 솔직히 긁힌다. 그래서 좀 더 찾아봤다. 출처는 일부 남초 커뮤니티다. 아이폰 등등 구체적인 브랜드화 함께 각종 밈으로 소비되고 있는 조롱의 중심에는 ‘스위트 영포티’가 있다. 진보 성향의 중년 남성들이 고가의 아이템을 걸치고 입으로는 개방적인 말을 쏟아내며, 나이 차 많이 나는 2030 여성들에게 과하게 친근하게 구는 모습을 비트는 식이다. 핵심은 ‘깨어 있는 척, 열려 있는 척’하는 게 재수 없다는 것이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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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증이 일었다. 안 그래도 나이 먹고 서러운 40대를 굳이 이렇게 정성껏 비아냥댈 일인가? 라떼는 말이야, 2030에게 40대는 ‘아오안(아웃 오브 안중)’이었다고. 그러다 문득 매번 선거철마다 극명하게 갈렸던 여론조사 데이터가 떠올랐다. 4050은 남녀 모두 진보 성향이 강하지만 젊은 세대, 특히 20대는 남녀의 진보 · 보수 성향이 모래시계 뒤집어놓은 것처럼 갈린다. 젊은 남성들의 보수 성향은 6070 세대까지 올라가야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주변 선배나 여성 동년배들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그러니 온라인에서 서로 뭉쳐 여성들은 ‘한녀’라고, 윗세대는 ‘영포티’라고 조롱 섞인 단어를 만들며 자기들끼리 위안을 삼는 건지도 모른다.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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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소비 패턴을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이해는 된다. 1970년대생들은 IMF를, 1980년대생들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었고, 그때마다 취업난이 사상 최대라고 했지만, 그럼에도 지금 세대에 비하면 취업 기회가 많았다. 부동산 가격 상승기에 큰 폭으로 자산이 불어난 사람들도 있다. 젊은 세대의 눈에는 상대적으로 손쉽게 안정과 여유를 얻은 윗세대가 고깝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긁히지 않기로 했다. 오죽 사는 게 폭폭하고 힘들면 이런 밈에 웃고 자기 위안을 하며 버틸까. 이미 마흔 줄에 접어든 기성세대로서 약간의 책임감도 느낀다. 젊음 그 자체로 가장 빛나고 찬란한 20대가 그 에너지를 온전히 자신에게 집중해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쓸 수 있기를, ‘영포티’ 밈에 제대로 긁혔던 한 40대가 진심으로 응원한다.



심수미

제48회 한국기자상 대상과 제14회 올해의 여기자상을 수상한 JTBC 기자. 30여 년간 인권 사각지대를 취재한 수 로이드 로버츠의 〈여자 전쟁〉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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