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가 베트남 정부에 한국산 철강 제품에 대한 반덤핑 조사와 조치 적용에 대해 '신중한 검토'를 공식 요청했다. 한국 기업의 對베트남 수출 품목 가운데 핵심 비중을 차지하는 철강 제품이 현지에서 잇따라 규제 논의 대상에 오르면서 정부 차원의 대응이 강화되는 모습이다.
산업부는 9일(현지시간) 베트남 다낭에서 '제9차 한·베트남 무역구제 협력회의'와 '제10차 한·베트남 자유무역협정(FTA) 무역구제위원회'를 통합 개최했다고 밝혔다. 두 회의가 통합 개최된 것은 그만큼 양국 간 무역구제 현안이 누적됐고, 복합적인 조율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지난 2015년 한·베 FTA 발효 이후 매년 정례적으로 회의를 이어왔으며, 2018년에는 무역구제기관 간 협력 확대 양해각서(MOU)를 체결해 협력 범위를 제도·기술·조사 관련 이슈까지 넓혀왔다. 최근 글로벌 공급망 불확실성, 주요국의 보조금·보호무역 조치 강화 등 통상 환경 변동성이 커지면서, 양국 간 협력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이번 회의에서는 특히 양국의 '수입 규제 현황' 공유가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한국과 베트남은 현재 서로 상대국을 대상으로 총 4건씩의 무역구제 조치를 적용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한국산 철강 제품을 중심으로 반덤핑 조사 및 조치가 강화되는 상황은 국내 철강업계의 민감한 사안으로 꼽혀 왔다.
한국 측은 이 자리에서 베트남 정부가 진행 중이거나 검토 중인 반덤핑 조사에 대해 "객관적 근거와 투명한 절차에 기반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직접 전달했다. 특히 현지 산업 보호를 이유로 규제가 확대될 경우 한국산 철강뿐 아니라 양국 간 공급망 전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국은 또한 최근 국제 통상 분야에서 부상하는 '초국경 보조금' 문제, 우회덤핑 판정 기준, 조사 개시 요건과 절차 등 새로운 규범도 폭넓게 논의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가공 무역이 늘어나면서 각국이 보다 정교한 규제 체계를 갖추려는 움직임과 맞닿아 있다.
한국 정부는 베트남과의 무역구제 협력이 단순한 분쟁 조정 기능을 넘어,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투자·수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는 안전망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무역구제 조치는 국가 간 신뢰가 전제돼야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며 "양 기관은 앞으로도 조사 절차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고, 우회덤핑 등 신통상 이슈에서도 공조를 확대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회의는 한국의 對베트남 투자 규모가 꾸준히 증가하고, 베트남이 한국의 3대 교역국으로 자리잡은 시점에서 열렸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특히 베트남 정부가 최근 철강·화학·플라스틱 등 특정 산업에서 수입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이면서 한국 기업들의 불확실성도 커져 왔다. 반덤핑 조치는 현지 시장 점유율·수출 물량·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어, 업계는 정부간 협의를 통한 조기 안정화를 기대하고 있다.
산업부는 회의 결과를 토대로 국내 기업이 베트남 규제 대응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후속 절차도 함께 검토할 계획이다. 기업별 컨설팅 확대, 조사 대응 매뉴얼 정비, 현지 법률 지원 연계 등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은 내년에도 정례 협의를 이어가기로 하고, 기술적 논의가 필요한 이슈는 실무진 채널을 통해 수시로 교환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년간 축적된 협력 체계가 무역구제 갈등을 최소화하고 양국 교역 확대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지고 있다.
베트남은 한국이 가장 활발하게 투자하는 동남아 거점 국가로, 제조업 공급망의 핵심 축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신남방 정책' 이후 양국 간 경제 협력은 에너지·제조·ICT·소비재 등으로 영역이 확장돼 왔다. 따라서 양국 정부의 무역구제 협력 강화는 단순 현안 조정을 넘어, 장기적 경제 파트너십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도 나온다.
산업부는 "무역구제 회의는 정부 차원의 공식 의사소통 창구로서, 분쟁 소지를 사전에 조율하고 기업 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앞으로도 한국 기업의 정당한 권익 보호와 공정한 시장 환경 조성을 위해 베트남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폴리뉴스 이상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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