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實錄조조] 소설 연재 안내
본 소설은 현 정세의 사건들을 조조, 손권 등의 인물과 탁류파, 청류파 등의 가상 정치 세력으로 치환하여 재구성한 팩션(Faction)물입니다.
서라, 짐짓 '대의를 앞세우나' 실은 사사로운 이익과 권력을 좇는 자들을 탁류파(濁流派)라 칭하고, 그 반대편에서 '청명한 정치를 부르짖으나' 실은 권문세족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들을 청류파(淸流派)라 부르노라. 현재 탁류파는 여당인 민주당, 청류파는 야당인 국민의힘이니라. 조조(曹操)는 탁류파의 우두머리이자 대선을 통하여 대권을 잡은 당대 제일의 웅걸 명재이 대통령이다. 조조의 대적이자 청류파가 밀던 인물은 곧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던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이었다.
때는 대한(大韓)의 정국이 극심한 혼란과 갈등에 휩싸인 시절이었다. 야당인 청류파(淸流派)와 여당인 탁류파(濁流派)는 사소한 일에도 대립하며 천하의 민생을 돌보지 않았다. 특히 청류파의 지지를 받았던 전직 대장군 손권(孫權, 열석윤 전 대통령에 빗댐)이 물러난 이후, 탁류파의 수장이자 천하의 실권을 쥔 위공(魏公) 조조(曹操, 명재이)의 권세는 하늘을 찌를 듯하였으나, 내부의 불만과 외부의 견제 또한 만만치 않았다.
조조는 일찍이 성남군(城南郡, 성남시)의 태수(太守, 시장)로 재직할 당시, 백성들에게 8할이 넘는(80.6%) 만족도를 얻어 그 능력을 천하에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치적은 종종 과감함과 독단으로 비판받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난세 속, 위공 조조의 귀에 뜻밖의 경이로운 소식이 전해졌다. 성동군(成東郡, 성동구)의 현 군수(郡守, 구청장) 오원정이 백성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구정 만족도 조사에서 무려 ‘아홉 할을 상회하는’ 경이로운 치적을 기록했다는 내용이었다.
조조의 찬사: 9할 3푼의 무형의 힘
서기 2024년 12월 8일, 조조가 그의 집무실에서 보고를 받았다. 최근 공신력 있는 기관(한국리서치)이 성동군 주민 1,5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군정(郡政)에 대한 만족도가 ‘92.9%’에 달했다는 것이다. 이는 조조가 천하를 호령한 이래, 그 어떤 지방관도 쉽게 이루지 못한 신화적인 수치였다.
오원정 군수가 이룬 치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은, 40여 년간 성동군 중앙을 가로막고 있던 흉물, ‘삼표 주사(三標朱砂) 공장’(삼표레미콘 공장)을 설득과 협상의 힘으로 마침내 철거하여 군민들의 숙원을 해소하고, 그 땅을 비단결 같은 숲과 물길로 돌려준 일이었다. 또한, 도성 곳곳에 ‘지혜의 정자’(스마트 쉼터)를 세워 미세먼지와 위험으로부터 군민을 보호하고, 문자 민원(민원 서비스)으로 민생의 불편함을 즉시 해결해 준 일이었다. 백성 열 명 중 일곱 명(71.3%)이 “군에 이야기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답할 정도로, 성동군의 행정은 신뢰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조조는 이 보고서를 읽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즉시 자신의 서신을 작성하여 천하의 이목이 집중되는 창구(SNS)에 직접 게시할 것을 명했다.
“오원정 군수, 그는 실로 일을 잘하는 자로다. 짐이 과거 성남군의 태수로 재직할 때 얻었던 만족도(80.6%) 또한 적지 않았으나 , 정 군수의 이 옥패(玉牌) 같은 치적 앞에서는 감히 짐의 명함(名銜)조차 내밀 수 없겠구나.”
이는 단순한 칭찬이 아니었다. 조조는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치적’을 기준으로 삼아 오원정을 천하에 공인하고, 그를 잠재적인 후계자로 격상시키는 고도의 전략을 펼친 것이다. 이로써 오원정은 일개 군수를 넘어, 조조의 인정을 받은 탁류파의 ‘검증된 재목’으로 순식간에 탈바꿈하였다.
청류파의 시기와 조조의 복선: 당겼으나 쏘지 않은 화살
조조의 공개적인 찬사는 천하를 진동시켰다. 청류파 진영에서는 즉각 비난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년에 있을 경사(京師, 서울)의 대도독(大都督, 시장) 선거를 앞두고, 조조가 사적인 감정을 공적으로 내세워 특정 인물을 편애하고 당파의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라고 질타하였다. 청류파의 수장 격인 손권(孫權)의 막하 참모들 역시 “위공께서 사심을 드러내어 천하의 공정을 해쳤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조조의 막하에서 관리를 총괄하는 장수(대통령실 관계자)는 재빨리 해명에 나섰다.
“위공께서 어찌 사사로운 선거에 뜻을 두시겠는가? 다만 오원정 군수의 훌륭한 치적을 보시고, 자신의 젊은 시절 성남 태수였을 때를 회상하며 격려하셨을 뿐이다. 이는 경사 선거와는 무관한 일이다. 또한, 앞으로 공을 세운 다른 군수들에게도 마땅히 격려의 뜻을 전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이 해명은 바로 조조가 즐겨 쓰는 ‘복선전략(伏線戰略)’이었다. 조조는 공개적으로 오원정을 치켜세워 그의 위상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공식적인 입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워 논란을 회피하는 ‘말을 아끼고 뜻은 드러내는’ 방식을 취했다. 과연 조조다운 화법이라는 지적도 있다. 남을 칭찬하면서도 자화자찬까지 끼워 넣는 간웅다운 화술. 일부 우매한 백성들이 그를 교조적인 우상으로 삼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군사 전략가들은 이 행보를 두고 “조조가 이미 경사 대도독 선거를 위한 궁을 힘껏 당겼으나, 아직 화살을 쏘지는 않았다(引弓不發)”고 평했다. 오원정 군수는 이제 탁류파의 잠재적 선봉장으로서, 청류파의 기존 강자들(훈세오 시장, 원경나 의원 등)과 맞설 수 있는 강력한 자산, 즉 ‘9할 3푼의 치적’을 등에 업고 전장에 나설 채비를 갖춘 것이다.
치적의 교훈: 지도자의 덕목과 군민의 신뢰
실록 조조의 기록은 이처럼 위공의 전략적 격려를 통해 새로운 난세의 영웅이 탄생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교훈: 군수 오원정의 92.9% 만족도는 단순히 행정의 효율성을 넘어, '만족도(效能感)가 곧 민심(民心)이며, 민심이 곧 천하의 패권(覇權)을 좌우한다'는 진리를 다시금 천하에 각인시켰다. 조조는 이념이나 당파의 논리 대신, 백성들의 삶의 질을 직접적으로 개선하는 '치적'이야말로 난세를 종식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임을 알고 있었다. 오원정이 이룩한 성과는 미래 지도자들이 취해야 할 첫 번째 덕목, 즉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한 실용적 행정력'의 중요성을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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